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초유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주도세력=종북’ 논리는 보수언론이 줄기차게 주장하던 논조와도 흡사하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라는 점을 해산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그동안 공당으로서 당내 북한 추종세력들의 활동을 묵인하고, 때로는 장려하기도 했으며, 외부로부터의 비판이 제기될 때에는 그들의 이념과 활동의 정당성을 옹호해왔다”고 했다. 

헌재 판결에 따르면, 헌재가 지목한 종북세력이란 과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사건 연루자, ‘RO사건’ 관련자 등을 말한다. 

헌재는 판결문에서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 5명 중 3명인 이석기, 이상규, 김미희는 민혁당 또는 민혁당이 지도하는 조직의 구성원”이라며 “국회의원 오병윤과 전 국회의원 김선동은 민혁당 조직원인 장원섭이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한 광주전남연합 출신”이라고 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19일 헌법재판소의 해산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당 주도세력이 과거 민혁당 등에 뿌리는 둔 종북세력이라는 헌재의 판단은 통합진보당을 공격하는 보수언론의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동아일보는 이 전 의원 등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직후 2012년 5월9일 1면 머리기사 <“종북 민혁당, 하영옥 주도로 조직 재건>에서 ”당국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인 이석기 통진당 비례대표 당선자도 민혁당 조직 재건에 가담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영옥씨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허위소설“이라고 일축했다. 

조선일보도 이 전 의원이 2012년 총선에서 당선되자 그해 5월12일 4면 기사 <간첩단 관련자들 진보당 주요 당직 장악>에서 주요 당직자들의 민혁당 전력을 언급했다. 

   
▲ 조선일보 2012년 5월12일자 4면 기사
 

통합진보당을 ‘종북’ 소용돌이로 본격적으로 끌고 들어간 이른바 ‘RO모임’ 사건때도 ‘민혁당’이 거론됐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8월30일자 4면 기사 <이석기 이어 조양원도 민혁당 출신… 드러나는 RO의 실체>에서 “민혁당과 통진당, 그리고 이번 내란음로 사건의 핵심조직으로 알려진 RO의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RO의 지하당이 있다’는 근거 없는 보도도 나왔다. ‘제2의 민혁당이 있다’는 것이다. TV조선은 지난해 9월 2일 <뉴스7>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이끄는 RO를 지도하는 이른바 지하당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면서 “이 지하당은 북한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보수언론은 과거 민혁당 인사들을 통합진보당 비판에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민혁당을 조직했던 김영환씨는 지난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52) 의원의 RO는 민혁당 RO와 조직이나 구성 방식이 판박이”라고 했고, 10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통합진보당은 폭력 혁명과 종북(從北) 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했다. 

   
▲ 중앙일보 2월19일자 12면 기사
 

헌재는 통합진보당의 궁극적인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주도세력 역시 앞서 본 바와 같이 변혁의 주체, 그 범위와 변혁의 대상을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게 설정하고 있다”고 했다. 

헌재는 “북한의 핵실험, 북한 인권문제와 3대 세습에 대해서도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일관되게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북한에게 책임 있음이 명백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등에 관해서도 오히려 그 책임을 대한민국 정부에 돌리고 있다”고 했다. 

보수언론은 일찌감치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다’, ‘북한과 생각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통합진보당을 종북세력으로 비판해왔다. 문화일보는 2012년 6월1일자 5면 기사 <이석기-北조평통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 똑같다>에서 “마치 ‘메아리’ 같다. 같아도 너무 같다. 종북 논란을 빚은 이석기 통합진보당(진보당) 의원의 발언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주장이 그렇다”고 했다. 

   
▲ 문화일보 2012년 6월1일자 5면 기사
 

채널A도 지난해 8월29일 <종합뉴스>에서 “북의 핵 보유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기존 해법은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는 이 의원을 발언을 두고 “이 의원의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북한의 자세와 유사”는 색깔론을 폈다. 

통합진보당이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비판하자 역시 종북 프레임으로 비판했다. 국민일보는 지난해 3월8일자 5면 기사 <통합진보 ‘종북 성향’ 드러내나… 안보리 대북제재 유감 표명>에서 “통합진보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종북’ 성향을 또다시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통합진보당의 ‘남쪽 정부’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월3일자 10면 기사 <통진당 또 “남쪽 정부”>에서 “통합진보당의 종북(從北)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민 대변인이 ‘대한민국 정부’ 대신 ‘남쪽 정부’로, ‘국민 생활’ 대신 ‘인민 생활’이란 북한식 용어를 쓴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말이 많다”고 전했다. MBC도 <뉴스데스크>에서 이 발언을 보도했다.  

   
▲ 조선일보 2011년 12월21일자 사설
 

“나아가 애국가를 부정하거나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등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또 다른 모습”는 헌재의 판단 역시 이 전 의원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발언을 융단폭격한 보수언론의 보도와 다르지 않다. 

통합진보당 해산 주장도 보수언론에서 먼저 나왔다. 동아일보는 2012년 5월14일 사설 <통합진보당 이 정도면 ‘정당 해산’ 요건 된다>에서 “통진당 당권파가 주사파 세력의 숙주(宿主)로 활동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서 “통진당의 이런 종북적 행태가 당권파의 치밀한 사전 기획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012년 5월14일자 사설
 

조선일보도 2012년 7월30일자 사설에서 “진보당이 옛 도면을 고집하는 주사파에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선 그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면서 “상황이 이렇다면 통합진보당은 당 간판을 내리고 해산해 새 길을 찾는 것이 맞다”고 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위헌정당·단체 관련 TF를 구성했고, 지난해 11월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헌재는 지난 19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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