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헌법재판소가 8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 이슈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에 이어 연말 정국의 또 하나의 변수로 등장하게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진보당 해산, 새정치연합 전당대회 새로운 변수되나

통합진보당 해산은 전당대회를 앞둔 새정치민주연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주도했던 친노계가 ‘책임론’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고, 당 대표 후보자  ‘빅3’ 중 한 명인 문재인 의원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노계 김영환 의원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왜 우리는 종북의 의심을 받는 정당과 그토록 연대에 목말라하고 통합을 애걸했으며 우리 후보는 대선 내내 이정희 후보에게 끌려 다녔는가”라며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다시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과 세력이 전면에 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연대’ 이슈는 당장 내년 4월 재보선에 재점화 될 수 있다. 새정치연합 후보자가 출마하고, 통합진보당이 연대세력과 함께 ‘해산 반대’를 이슈화하며 출마할 경우 또 다시 야권연대가 이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난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에 합의한 한명숙(사진 오른쪽)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사진=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출마를 앞두고 있는 박지원 의원은 진보당 사태가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야권연대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은 22일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광주 서구, 관악, 성남 중원이 전통적으로 우리가 강한 곳인데 단일화 과정에서 (진보당에) 양보했다”며 “(이번 재보궐에서) 통진당 의원의 무소속 출마가 가능하고, 내년 2월 8일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시민사회 등에서 양보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의원은 “(이러한 요구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이러한 요구가 있을 때 대권 주자들은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지난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200만 표 받았다. 200만 표가 (눈앞에) 어른거리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박 의원이 당 대표가 될 경우 야권연대가 없다고 선언한 셈이다. 박 의원은 2012년 6월 진보당을 일컬어 “애국가를 거부하는 세력과 연대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진보당 해산, ‘정윤회 게이트’ 돌파구?

정부와 여당이 해산 후폭풍을 계기로 ‘정윤회 국정개입의혹’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주말 사이 주요 언론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대신 진보당 해산사태로 뉴스를 채웠다.

진보당 해산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추세도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이어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40%에서 취임 후 최저인 31~37%까지 추락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일간 지지율은 15일(월) 39.8%로 시작, 16일(화) 38.8%를 거쳐, 17일(수)에는 주간 최저치인 37.8%로 떨어졌다.

하지만 같은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통합진보당이 해산을 앞둔 지난 18일 38.8%, 해산 선고가 내려진 19일에는 42.6%로 반등했다. 박 대통령의 전통 지지층의 17일, 19일 일간 지지율을 비교해보자. 대구·경북은 46.5%에서 63.9%로 17.4%p, 보수층은 60.6%에서 72.1%로 11.5%p, 50대는 43.3%에서 54.3%로 상승했다. 리얼미터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대구·경북과 보수층, 50세 이상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 지지층을 재결집시킨 것”이라고 해석했다.

여론조사 역시 해산 결정에 동의하는 응답이 더 많다. MBN이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진보당 해산이 올바른 결정이라는 응답이 60.7%였고 무리한 결정이라는 응답은 28.0%에 그쳤다. ‘휴먼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당연한 결정이라는 응답이 54.6%, 무리한 결정이라는 응답이 35.5%였다. 정부와 여당이 여론을 믿고 진보당 해산을 더 이슈화하면서 야당 등을 압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19일 해산 결정 이후 안국역 래미안갤러리 앞에서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헌재 결정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실제로 새누리당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을 겨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 19일 현안 브리핑에서 “야당은 선거연대를 통해 위헌세력이 국회에 진출하는 판을 깔아주었다. 야권 연대란 화려한 색깔의 독버섯에 혹해서 종북 숙주 노릇을 하는 정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통합진보당과 선거연대를 꾀했던 정당과, 추진 핵심세력들은 통렬히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집권만을 위해서 통합진보당과 연대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제 종북 헌법파괴를 일삼는 낡은 진보세력들과 절연을 선언해야한다”고 말했다. 이군현 사무총장도 “구 통합진보당의 국회진출에 큰 역할을 한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구 민주통합당의 당시 지도부는 한마디 책임 있는 사과나 반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서영교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21일 오전 브리핑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두고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하려는 정부여당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된다”며 “국회 운영위원회 소집을 통한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은 뒤로한 채 진부한 '민주당-진보당' 연대책임론을 거론하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대변인은 이어 “아무리 '종북'논란이 거세게 불어도 비선실세들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 권력암투를 밝혀야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면과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진보당 해산 후폭풍, ‘공안정국’으로 이어지나

진보당 해산사태로 종북몰이를 통해 공안정국이 조성될 가능성도 있다. 해산 직후 보수단체는 통합진보당 당원 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지난 20일 수사에 착수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이 사건을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산에 반대했던 진보정당들도 향후의 공안정국을 우려하고 있다. 정의당은 지난 19일 브리핑을 통해 “일부 주도세력에 의해 주도된 정치행위를 정당 전체가 한 것으로 여긴다면 한국사회 어떤 정당이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라며 “적대와 증오의 정치,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정치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당도 같은 날 논평을 통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을 빌미로 종북 여론몰이가 공세적으로 벌어지고 통합진보당과 관련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노동당의 강령과 활동에 대해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산시킬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법적 대응 예고했으나…

한편 통합진보당 입장에서는 해산결정 이후 대응할 방법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통합진보당은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상실 결정은 ‘권한 없는 자의 법률행위’로서 당연무효”라고 주장했다. 정당해산 시 소속 의원들이 의원직을 상실하는지 여부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는 이유였다. 통합진보당 전 의원들은 행정법원에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 통합진보당 당원 등 시민 2000여명이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수호 국민대회’ 집회에 참가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행정법원이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따라서 진보당의 법적 대응은 ‘여론전’ 성격이 짙다. 해산결정이 난 19일과 다음날인 20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규탄하는 내용의 집회가 열렸다.

4월 재보선 출마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상규 전 의원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출마 여부에 관해 어떤 것도 논의된 바가 없다”면서도 “선관위가 발표한 것처럼 내년 4월 보궐선거에 저희가 모두 출마할 수가 있다. 우리는 어떤 범법행위도 저지르지 않았고 어떤 피선거권의 제약도 없다. 내년 4월 출마해서 저희는 국민의 선택에 의해 다시 당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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