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에 대한 정부의 정당해산심판청구를 인용한 헌재의 결정을 보면서 머릿 속에 자연스럽게 연상된 건 후삼국 시대의 '궁예'였다. 궁예는 살아있는 미륵(彌勒)을 자처하며 관심법(觀心法)을 사용했는데 관심법은 말 그대로 타인의 마음을 보는 능력이다. 궁예는 관심법을 사용해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물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 리 만무다.

통진당에 대한 사형선고라 할 정당해산을 결정한 헌법재판소의 8인의 재판관들은 궁예처럼 관심법을 사용했다. 통진당의 강령과 활동에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숨은 목적'이 있다는 게 관심법의 사용이 아니고 무엇인가 말이다. '숨은 목적'을 입증할 책임이 청구인인 박근혜 정부에 있고 그 입증에 실패했다면 헌재는 당연히 이를 기각시켜야 한다. 그런데 헌재 재판관 8인은 합리적인 증거와 입증 없이 '숨은 목적'을 인용하고 승인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헌재 재판관 8인의 눈에는 보이는 모양인데 이쯤되면 이들을 관심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던 궁예의 재림으로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석기 등이 통진당을 주도했고, 이들이 국가기간시설 파괴, 무기 제조 및 탈취 등의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궁극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이 고스란히 귀속되는 통진당은 해산되어야 한다는 헌재 재판관 8인의 논리도 기상천외하다. 이미 이석기 등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내란음모가 없었다는 말은 내란을 음모할 조직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석기 등은 고작해야 내란선동 부분에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내란을 선동한 이석기 등이 처벌받으면 족하다. 게다가 이석기 등이 통진당을 주도했다는 증거도 없다.

   
▲ 지난 1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판결 후 이정희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결국 헌재의 8인의 재판관들은 이석기 등을 통진당과 동일시하고, 이석기 등이 폭력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 했다고 상상하는 논리적 곡예를 용감하게 감행한 것인데, 이런 비약과 생략이 대한민국 최고법원의 재판관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놀랍다. 한편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헌재의 8인의 재판관들은 정당해산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고, 해산으로 얻는 이익이 비용 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

정당제도와 해산에 관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민주주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for Democracy through Law, 일명 베니스위원회)은 정당의 강제해산과 설립금지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들을 마련한 바 있다. 베니스위원회의 지침에 따르면 정당의 금지나 해산은 원칙적으로 발동되어서는 안 되는 장치이며, 설사 발동되더라도 극히 예외적으로 발동되어야 하고, 발동되는 경우 합법성과 비례성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즉 특정 정당(정당원 일부가 아니라 당 전체)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이 보장한 자유와 권리를 명확히 위태롭게 하고, 이를 폭력(계획 및 실행 모두를 포함)을 통해 달성하려 하며, 그럴 경우에도 정당해산 이외의 대안들이 전혀 없는 경우에 한해 정당해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베니스위원회가 정당해산에 대해 이렇듯 엄격한 이유는 '정당'이 현대민주주의의 핵심기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재의 8인의 재판관들은 정당해산에 관해 베니스위원회가 규정한 지침 중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통진당을 해산시켜버렸다. 궁예의 관심법과 비범한 상상력을 결합해.   

본디 다수결의 횡포 및 폭민정치의 해악을 통제하기 위해 사법(법원과 헌법재판소)이 필요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를 인용함으로써 헌법이 헌법재판소에 부여한 사명을 결정적으로 위반했다. 헌법을 수호하라고 만든 기관이 헌법을 파괴하는 이 기묘한 역설! 법치주의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헌재가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인민재판의 호민관 역할을 하는 퇴행적 참극!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결정 선고에 앞서 "부디 오늘 이 결정이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종식시키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희망을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관련기사 : 뉴스핌 “통진당 해산, 헌정사상 첫 사례…민주주의 논쟁 격화 전망”) 어리석거나 뻔뻔한 주문이다. 헌재의 결정으로 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 다원주의 및 소수자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들이 결정적으로 위축될 것이다.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 없이도 살 수 있다. 직업을 갖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고, 소비를 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게 인간의 삶인가? 그건 배부른 돼지의 삶이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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