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해산심판 선고를 앞둔 통합진보당이 정치, 종교, 법조,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함께 정당해산이 받아들여질 경우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통합진보당은 17일 오후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2차 원탁회의’를 열고 “민주주의 암흑시대를 막아내는 일에 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17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선고기일을 19일 오전 10시로 확정해 심판 청구인인 법무부와 피청구인인 통합진보당에 통보했다. 2차 원탁회의는 헌재의 선고를 앞두고 긴급하게 제안됐다. 시민사회·종교계·언론계·학계·법조계·정치권 인사 11명이 공동명의로 2차 원탁회의를 제안했고 이에 호응한 200여명의 각계 인사들이 연명했다.

원탁회의 참가자들은 갑작스러운 선고 결정을 두고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이창복 6.15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서두르고 있다. 서두르는 의도가 뭘까”라며 “그 의도는 다 알고 있다. 이 정권의 위기를 탈출하려는 의도가 도사려 있다”고 비판했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이 정당해산심판은 국정원 불법대선개입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부의 위기국면에서 시작됐다. 이제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부가 집권 이래 최대 위기국면에서 이 사건을 마감하려 한다”며 “지금 백척간두에 선 것은 통합진보당의 운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라고 밝혔다.

   
▲ 통합진보당 의원과 당원들이 정부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 대상이 된 지난해 11월 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승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역시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했고, 부정선거로 박근혜 정부가 당선됐다. 그 이후 계속 2년간의 실정이 이어졌다”며 “박근혜 정부의 위기는 결코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19일 헌정 사상 최초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릴까. 원탁회의 참가자들은 해산 결정을 내릴 경우 헌법재판소가 해산될 사유라고 입을 모았다. 

정당해산심판 관련해 통합진보당 측 변호를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는 “1년 간 17만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를 심리했으나 정부의 주장은 전혀 근거없는 소설이었다. 헌재는 만장일치로 당연히 기각해야 한다”며 “만약 해산을 선고한다면 헌재의 존립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스스로 해체선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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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염 전 교황청 대사는 “이미 공안당국이 통합진보당을 간첩으로 만들어 죽였다. 관제언론의 비판도 이어졌다”며 “마지막 숨통을 끊는 일만 헌재에 맡긴 것이다. 사법살인으로 헌재 자신의 위치를 추락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재화 변호사는 1956년 독일공산당이 해산된 이후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이 변호사는 “공산당 해산 이후 25만 명이 압수수색을 받았고 20만 명이 수사대상에 올랐다”며 “통합진보당이 해산된다면 당원이었거나 당원이었던 이들이 국보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 출신 정치인들은 위헌정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탁회의는 선언문을 통해 “통합진보당이 헌법재판을 통해 해산당하고 나면 박근혜 정부는 비슷한 논리로 다른 진보정당으로 탄압을 확대시킬 것이고 진보적 지향을 가진 시민사회단체를 표적삼아 탄압을 화대시킬 위험이 농후하다”며 “북한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금기어가 됐듯이 ‘자주’ ‘민주’ ‘통일’ ‘일하는 사람’ ‘민중’과 같은 표현도 새로운 금기어가 될지도 모른다. 백색테러를 불사하는 극우세력의 준동마저 가세한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25일 오후 2시께 헌법재판소 재판정에 출석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최종공개변론을 준비하고 있다.
 

원탁회의를 제안했던 함세웅 신부는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면 더 큰 부활의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함 신부는 “헌재는 마땅히 기각해야 하지만 더 좋은 결정은 해산이다. 죽어야 살고 밀알이 땅에 묻혀야 열매를 맺는다”며 “이런 암울한 시대에 통합진보당은 해체되어야 한다. 그래서 헌재가 헌법 살인의 당사자고 불법정권의 하수인임을 입증하고, 국민들이 깨어나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갖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 신부는 이어 “19일에 혹시 우리의 염원과 다른 결정이 난다해도 그것이 통합진보당에게 은총과 부활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원탁회의는 선고결정이 나올 예정인 19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앞에 모여 선고 결과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시청광장에서 열릴 집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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