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연일 신문의 주요기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이 지난 16일, 종합일간지·경제지·스포츠지 등 30여개 주요 신문의 1면에 이번 사건과 관련한 ‘사죄’ 광고를 일제히 냈다.

“그 어떤 사죄의 말씀도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제목) 최근 대한항공의 일들로 국민여러분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커다란 사랑을 주신 여러분께 큰 상처를 드렸습니다. 그 어떤 사죄의 말로도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국민 여러분의 질책과 나무람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다시금 사랑받고 신뢰받는 대한항공이 되도록 환골탈태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새로운 대한항공이 되겠습니다.”

   
 
 

대한항공의 이 광고는 경영상황이 어려운 언론사들 입장에서야 일종의 광고특수로 환영할 일이지만, 사죄를 하는 대한항공이나 사죄를 받는 국민들 입장에서 과연 적절한 ‘광고’인지 따져봐야 할 점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사죄’의 주체 문제다. 이번 광고의 집행주체는 대한항공이다. 따져보자. 이번 사건이 대한항공이란 회사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인가 아니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개인의 잘못된 언행에서 비롯된 것인가. 현재까지 보도된 내용과 대한항공 측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사건 내부의 디테일을 떠나 명백히 ‘조현아 전 부사장’ 개인의 잘못이다. 그래서 조현아 부사장의 부친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기자회견에서 “여식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죄광고의 주체가 잘못됐다. 대한항공이 아니라 조현아 개인이 사죄광고를 해야할 일이다. 대한항공 법인도 오히려 조현아 부사장 사건의 피해자다. 피해자가 사죄를 하는 셈이다. 앞뒤가 맞지 않다. ‘오너’의 일족을 회사와 동일시 하는 잘못된 전근대적인 조직 문화를 또 한번 드러내 주는 광고인 것이다. 더욱이 대한항공의 이번 광고 집행은 경영진의 ‘배임’행위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16일 집행한 대한항공의 신문 광고 액수가 대략 7~8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했다. 7~8억 원의 회사 돈으로, 오너 일가의 잘못을 사죄하는 광고를 회사가 대신 집행하는 셈이다.

“그래도 부사장이었는데...”라는 관점에서 한발 짝 뒤로 물러나서 보자. 조현아 전 부사장이 대한항공의 ‘일원’이었기에 대한항공이 조직원을 대신해 사죄의 주체가 되었다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번 땅콩사건에서 보여준 조 사장의 행동과 달리 대한항공이 회사 구성원의 큰 잘못도 감싸주는 그런 똘레랑스가 넘치는 기업문화를 가진 가족같은 조직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사죄광고문에는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지않다. 사죄문으로서 진정성이 없다. 그냥 사건에 대한 설명은 “대한항공의 일”일 뿐이다. 그래도 사과한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조현아 부사장’이 친 사고다. 그런데 조현아 전 부사장이란 이름도 없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 행위에 대한 설명도 빠진 채 그냥 사죄문이다. 진정한 사죄문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 사죄광고는 진정한 사죄를 위한 용도가 아니라 ‘언론’에게 잘 봐달라고 찔러주는 ‘촌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광고다. 물론 이 광고의 집행으로 언론의 비판 방향과 횟수가 바뀔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신문사 조직도 바보가 아닌 이상, 국토부의 조치와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금방 ‘안테나’를 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항공의 ‘광고약발’이 생각한 만큼 효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홍보 관점에서도 ‘광고집행’ 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다른 대형사건이 터지거나 독자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면,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언론사들부터 우선 ‘광고’ 약값을 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면서 재벌3세의 일탈행위는 차츰 잊어져 갈 것이고 제대로 단죄되지 않게 될 우려가 있다. 이번 대한항공 광고의 언론 ‘약발’은 독자들에게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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