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촌’에서 일반인 남녀가 만나 6박7일 동안 서로의 짝을 찾는다는 독특한 콘셉트로 시작된 SBS 프로그램 <짝>은 남규홍 PD의 일상적인 관찰 습관에서 시작됐다.
남 PD는 대학 시절, 법대 공부가 힘들면 도서관 난관이나 벤치에 자리잡고 앉아 사람 구경을 실컷 했다. 본능적으로 여자를 좀 더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선배, 친구들과 품평회(?)를 가졌다고. 남 PD는 아직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을 관찰한다.
사람을 들여다보니 인간의 욕망이 보였다. 남 PD는 <짝>, <인터뷰게임>의 탄생과 제작과정을 담은 저서
그 중 ‘제2의 욕망’은 정규프로그램 <짝>으로 이어졌다. 오락성이 더해졌지만 여전히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다는 특성은 그대로다. 남 PD는 “‘짝’은 존재했던 대한민구 방송 프로그램 중에 가장 스케일이 큰 인문·사회 분야 인간 탐구 프로그램”이라고 자평했다.
프로그램 타이틀과 구성 곳곳에는 인간에 대한 남 PD의 인문학적 시각이 녹아있다. 애정촌 ‘짝’ 간판 뒤에는 ‘ㅉ’이 아닌 ‘ㅶ’으로 시작되는 짝의 고어가 찍혀 있다. 남 PD는 ‘ㅂ’과 ‘ㅈ’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남녀의 상징을 강조하는 에로틱한 결합을 한 글자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상상했다. 만약 그렇다면 짝은 ‘ㅶ’이 ‘ㅉ’으로 변하면서 속궁합(본질)보다는 겉궁합(형식)을 강조하는 것으로 변화를 겪었다는 재미있는 해석을 내리는 것이다.
▲ SBS 프로그램 <짝> | ||
애정촌에서 이뤄지는 ‘도시락 선택’ 놀이도 마찬가지다. 남 PD는 “우리시대의 밥은 무엇을 먹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먹는가를 종종 묻고 있다. 오늘의 메뉴가 아닌 오늘의 파트너를 찾아 사람들은 정치를 하고 또 다른 차원의 생존, 다시 말해 생물학적인 생존이 아니라 사회적인 생존을 한다”고 했다. 애정촌에서의 혼자 도시락 식사가 고독을 넘어 공포로 다가오는 이유다.
사람을 만나고 관찰하는 일을 좋아하는 남 PD는 그렇게 1000일 동안 애정촌에서 살며 약 6000명을 인터뷰해서 60기수를 촬영하고 약 677명의 출연자를 만났다. 남 PD는 인간의 욕망을 따라갔고, 출연자들은 욕망에 충실했다. 남 PD는 애정촌 8기 연출 당시 “남자1호와 도시락 식사를 하고 싶은 여자는 물을 건너가 주세요. 선택을 하든 안 하든 자유입니다”라고 말했다. 남자와 도시락 식사를 하고 싶은 여자들이 첨벙첨벙 옷을 입은 채 수영장에 뛰어들어 물을 건넜다. 그렇게 ‘의자왕’의 전설이 만들어졌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남 PD가 지닌 인문학적 감수성의 보고가 사람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남 PD는 “그 프로그램(<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 일정은 촘촘하고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그런 빡빡한 생활 속에서도 기적처럼 연간 백 권이 넘는 책을 틈틈이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도 식히고 아이템도 잡고 구상도 하고 기획도 한다”고 했다.
▲ 책 <방송기획, 생각대로 된다> | ||
한국PD대상에서 ‘실험정신상’을 수상한 <인터뷰게임>은 사내 기획 공모부터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입길에 올랐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이 자신의 가족, 연인을 알기 위해 마이크를 가지고 그대로 기자처럼 인터뷰를 한다는, 가장 소중한 사람과 소통을 한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시청률도 14.5%까지 올라갔지만 아쉽게도 28회 때 폐지됐다.
<인터뷰게임> <짝> 등 ‘진입자’류의 프로그램을 만든 남 PD는 “PD의 화두는 창조고 지금 세상의 화두도 창조”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송 환경에 쓴 소리도 했다. 남 PD는 “방송 현장에서는 창의력 이전에 좋은 기획을 통과시키는 처세술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어찌됐든, 방송환경 뿐만 아니라 신규 프로그램 제작 자체가 PD에게 엄청난 모험이다. 잘 나가는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관리’하는 것이 출세에도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남 PD는 “그래도 지금 바위틈을 비집고 나오는 무모한 풀 한 포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남 PD는 그러면서 ‘창조를 위한 창조’는 거부했다. 그는 “창의성이라는 인간의 능력도 인간을 위해 존재할 때 위대하다”면서 “창의력보다 더 중요한 방송인의 자질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능력 그리고 일반 시민으로서의 상식과 양심”이라고 했다. 어쩌면 남 PD가 말하는 방송기획의 핵심은 인간성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의 사람 관찰과 인문학적 감수성의 출발도 ‘사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