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찬바람 부는 날, 오랜만에 전화 연락을 해 온 지인이 안부인사고 뭐고 다 건너뛰고는 다짜고짜 물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관객 백만은 들 것 같아?”

픽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3백만은 충분히 넘을 걸? 그 강이 그렇게 작지 않아요.”

그러자 그 지인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안 써?”

다시 대답했다.

“당연히 잘 될 줄 알았으니까. 백만 넘는 날 축하인사로 쓰려고 했지.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마침 오늘 확인했고.”

전화를 걸어온 지인은 류지원 방송콘텐츠진흥재단(BCPF) 전 이사였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개봉하기 딱 1년 전인 지난해 11월20일부터 12월1일까지 열린 2013 IDFA(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당시 제작 진행 중인 한국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는 국제 피칭 행사인 코리아 피칭 데이(Korea Pitching Day)를 마련했다고 뿌듯해하던 사람이었다. 그 지인 덕분에 마침 급하게 그 영화제에 출장이 잡힌 상황에서 전세계 다큐멘터리 관계자들로 항공편이며 숙소 잡기 어려웠던 암스테르담에서 BCPF의 지원으로 국제 피칭에 참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프로듀서들과 같이 움직이고 한 숙소에 묵게 되었다.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포스터

 

 

국내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이 단체로 국제 다큐멘터리 전문가들 앞에서 제작 지원과 투자, 배급을 위한 행사인 피칭에 나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상 시장이 지구촌 규모로 확대되고 상영 플랫폼이 극장에서 모바일 디바이스까지 다양화되고 있는 오늘날, 세계 유력영화제들은 그저 작품성과 예술성을 선보이는 축제일 뿐 아니라 국제 규모의 영화와 방송 콘텐츠 마켓이다.

수많은 국제영화제 가운데 IDFA는 다큐멘터리로는 으뜸으로 꼽히는 영화제이고, 2010년, 박봉남 감독의 중편 <아이언 크로우즈>가 국내 다큐멘터리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이래, 고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 등이 그곳에서 주목을 받으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수준을 세계에 펼쳐 보이는 장이 된 곳이다.

상업적 투자배급 시스템의 지원을 받는 극영화에 비해 제작비 마련부터 배급까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환경에서 독립 프로젝트로 어렵사리 작품을 만들어온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진모영 감독과 한경수 PD를 비롯한 다큐멘터리스트들은 그런 자리에서 작품을 소개하게 된 자부심과 긴장으로 한 주일을 보냈다. 아침저녁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자리에 있었던 감독들의 작품이 완성되기를, 그리고 부디 극장에서 제대로 개봉되기를 기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백만 관객을 넘어 ‘신드롬’으로 일컬어지는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참으로 짜릿하고 고맙다.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스틸컷

 

 

전화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백만은 넘겠느냐고 물어온 지인은 열악한 한국다큐멘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대부분의 공공 기관에서 전시행정으로 마련한 일회성에 그치는 제작비 지원만이 아닌 공정한 심사 선발과 국제 시장을 겨냥한 피칭 행사, 완성작에 대한 마케팅까지 두루 함께 하는 체계적 지원이 있으면 이미 작가들의 자세와 수준은 세계적이기 때문에 한국 다큐멘터리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 해를 거치며 그런 믿음은 현실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관객이 백만이 되기까지 기다리며 확인하고픈 것은 관객의 마음이었다. 이미 영화제를 통해 작품의 예술성은 보았고, 감독과 PD를 만나 제작진의 진실성도 겪었지만, 노부부의 평생에 걸친 사랑 이야기, 이미 방송에서 여러 차례 소개된 인물들의 모습과 사연이 스크린을 통해 극장에서 영화로 펼쳐질 때, 관객이 배급을 움직여줄 수 있을까? 진모영 감독은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한 이후, 개봉에 이르는 동안 SNS를 통해 몇 안 되는 개봉관을 열심히 알리고, 그러다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포스팅을 했다고 정지를 당하기까지 해가며 애써왔지만, 작품을 본 관객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래서 작품을 보려는 관객이 ‘엄청나게’ 몰리지 않으면 독립 다큐멘터리는 상업 자본의 위세에 밀려나는 상황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래서 대학에서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본 사람?”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학기 중에 개봉된 흥행작 가운데 천팔백만 관객이 들었던 <명량>이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였던 <인터스텔라>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벌써 이 영화를 보았다고 했다. <명량>이나 <인터스텔라>가 평소 극장을 자주 찾지 않던 중장년층 관객을 불러들였다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청년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스틸컷

 

 

삼포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젊은 학생들에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어쩌면 판타지일 것이다. <우리 결혼했어요>, <님과 함께>같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을 보는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진심’과 ‘현실’을 젊은 세대들이 알아본 것이다. 맞벌이가 늘어난 성장배경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 경우가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의 사랑은 그저 희한한 볼거리가 아니라 애틋한 현실이지만, 두 분의 사랑은 어떤 동화보다 이루기 힘든 기적과도 같은 현실이다.

올 하반기에도 <나를 찾아줘>(데이빗 핀처 감독)나 <무드 인디고>(미셸 공드리 감독) 같은 영화들이 죄다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는 냉소와 절망을 펼쳐 보이는 가운데, ‘결혼은 연애로 완성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서로 애틋하게 평생을 함께 하시면서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못내 쑥스러워 하시는 부모님 모시고 다시 이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두 분도 이 어른들 못지않아요, 그러니 마음껏 표현하세요, 라고 말씀도 드리고.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