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장기화되면서 초기에 주춤했던 정부와 여당이 공세를 퍼붓고 있다. 청와대는 이 사건을 문건유출로 규정하며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렸고, 여당은 “정치공세를 중단하라”는 역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들의 총공세 앞에서 야당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5-16일 진행된 국회 긴급현안질의 최대 쟁점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예상대로 이번 사건의 진위 여부와 검찰 수사 진행상황, 청와대의 태도 등을 따져 물었다.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지만 별다른 실속은 없었다.

야당 의원들은 현안질의 첫째 날인 15일 정홍원 국무총리와 황교안 법무부장관에게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던진 것 아니냐’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나’ 등을 따져 물었다. 이에 정 총리와 황 장관은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 지난 11월 28일자 세계일보 보도 내용
 

구체적인 의혹제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안민석 의원 등은 김종덕 문화체육부 장관을 상대로 정윤회씨가 승마협회와 문체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이에 김종덕 장관은 “사실이 아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최민희 의원이 한모 경위에 대한 청와대의 회유 의혹에 대해 물었으나 정홍원 총리와 황교안 장관은 “회유나 협박, 확인 된 것 없다”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관련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현안 질의는 언론이 제기한 팩트에 대한 확인 차원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씨의 승마협회 인사개입 의혹은 한겨레와 조선일보 보도로, 한모 경위가 청와대 회유를 받았다는 내용은 JTBC 보도로 알려졌다.

한 가지 새로 제기된 것이 있다면 박범계 의원이 공개한 문건 유출 경위서다. 박 의원은 15일 현안질의에서 청와대 문건이 두 차례(행정관 비위동향 문건, 박지만 문건) 유출된 이후 문건 유출을 조심하라는 내용의 유출경위서가 작성됐으나 정호성 비서관에 의해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박범계 “정호성 비서관, 청와대 유출경위서 묵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은 국정 전반을 흔들고 있는 거대한 이슈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마저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하락했다. 더욱이 현안질의 와중에 ‘청와대가 회유를 시도했다’는 한 경위의 폭로가 나왔고, 검찰이 문건 수사로 사건을 마무리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하지만 야당은 언론에 제기된 문제들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선에서 현안질의를 끝내고 말았다.

이러한 야당의 무기력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제기됐던 초기부터 이어져왔다. 세계일보의 11월 28일 보도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진상조사단’을 꾸렸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또 다른 카드가 있다”고 말했으나 새로운 카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야당의 대응은 언론이 새로운 팩트를 제기하면 논평이나 성명을 내놓는 데 그쳤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사건에서 새로운 팩트를 제시하며 여론을 이끌었던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 박범계 진상조사단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진상조사단 1차 회의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러는 사이 여당은 야당의 의혹제기를 ‘정치공세’로 치부하며 색깔론까지 펼치고 있다. 이학재 새누리당 의원은 15일 현안질의에서 “시중의 풍문을 모은 문건 하나로 정치공세가 시작됐고 국정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고, 같은 당 이장우 의원 역시 “한낮 전단지에 의해 정치적 혼동과 국민적 동요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또 거짓 선동”이라며 “새정치연합은 정윤회씨가 이석기, 신은미, 황선보다 더 잘못했다는 거냐”라고 비난했다.

현안질의에서 정홍원 총리와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믿어달라고 했던 ‘검찰 수사’는 어떨까? 단순 문건유출 사건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16일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서 문건을 반출했고, 한모 경위가 문건을 복사한 것을 최모 경위가 유포했다며 권력암투 배경이나 청와대 비선권력 실체는 사실상 없다고 결론을 지은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정윤회 문건 최모 경위가 주범이라고? “유출 동기가 뭔데?”>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새정치연합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말이라는 시기적인 조건 때문인지 대치정국을 만들어내는 것에 조심스러운 것 같다”며 “이 문제에 올인 하거나 공격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창선 평론가는 또한 “이 사건의 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나 혼돈을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며 “야당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사안인데도 야당의 대응이 미진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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