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일요일이 좋다 -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 시즌 4>에 응모한 싱어송라이터 이진아가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11월 23일 시작해 12월 16일 현재까지 4번의 방송을 마친 지금 이진아는 (개인적으로 완전히 동의하기 힘든)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한 몸에 받으며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지난 12월 14일 방송분에서 ‘마음대로’라는 자작곡을 부른 이진아는 심사위원 박진영에게 “음악 관둘게요. 진짜 음악 못 하겠다. 정말 숨고 싶다. 정신을 잃었다.”라는 등의 격찬을 끌어냈으며, 유희열에게서는 “지금까지 2~300곡을 작곡했는데 이진아보다 좋은 곡이 없는 것 같다”라는 호평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진아의 12월 14일 출연 영상은 유튜브에서 이틀만에 31만에 달하는 조회수를 보이고 있다. 지난 방송분에서 먼저 불렀던 노래 ‘시간아 천천히’는 40만의 조회수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 정도면 스타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지난해 10월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했지만 50여장밖에 팔지 못했고, 서울 홍익대학교 앞 라이브 클럽과 카페 등에서 꾸준히 활동했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는데 두 번의 TV출연만으로 많은 이들이 알아보는 스타가 된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한 두 번이 아니다. 최근에 끝난 Mnet <슈퍼스타K 6>에서 우승한 곽진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진아와 마찬가지로 홍대에서 활동했을 때는 무명에 가까웠던 그가 방송을 통해 금세 유명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를 통해 스타가 된 울랄라세션과 장재인, <탑밴드>를 통해 스타가 된 장미여관의 예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례를 만나게 되면 늘 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들이 있다. TV의 힘 말이다. 그동안 홍대 앞에서 활동할 때는 알아주지도 않더니 TV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금세 유명해지는 것을 보면 역시 TV의 힘이 막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홍대 앞에서, 아니 어디에서든 힘들게 음악 하는 이들이 어떻게든 TV에 한 번이라도 출연하려고 애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리라. 흔히 하는 말로 라이브 콘서트 100번 하는 것보다 <무한도전> 한 번 출연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주고 받는 것은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 SBS <일요일이 좋다 - 서바이벌 오디션 K팝스타 시즌 4>에 출연한 싱어송라이터 이진아

 

 

이러한 현실인식은 곧장 TV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왜 TV에서 다양한 음악들을 소개하지 않는지, 홍대 안팎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뮤지션들이 정말 많은데 왜 찾아서 소개하지 않는지 말이다. 실제로 음악을 다양하게 들어온 이라면 최근 화제가 된 이진아나 곽진언 정도의 실력을 갖춘 보컬이나 싱어송라이터는 홍대 앞에 부지기수라는 것을 안다.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난 뮤지션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안다. 누구라고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TV는 그들을 주목해주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이런 음악을 하는 이가 나타났는지 모르겠다"는 호들갑과 함께 말이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케이블 채널, 종편 등이 등장하면서 매체 환경이 다변화되었고, 공연 시장도 성장했지만 여전히 TV에 출연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홍보방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TV 음악프로그램이나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장르의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두루 소개해야 한다는 의견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TV에 출연한다고 금세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가령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꾸준히 소개했던 MBC의 <음악여행 라라라>에 출연했던 뮤지션들은 그다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들은 음악을 단지 음악으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음악을 음악만으로 감상하지 않고 뮤지션의 캐릭터와 스토리 등과 함께 소비한다. 또한 오디션이라는 프로그램이 만드는 드라마의 긴장감과 함께 소비한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임재범이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것도 단지 노래만 잘했기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2009년부터 방송되어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이끈 <슈퍼스타K>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오디션이라는 포맷 덕분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 모두 마찬가지이다. 음악을 음악으로만 보여주지 않고 오디션이라는 방식을 가미해서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을 때 비로소 화제가 되고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물론 그 프로그램들을 통해 뛰어난 가창력과 연주력, 색다른 음악을 보여주었다는 것도 성공의 원인이 되었지만 이미 그렇게 하고 있던 다른 프로그램들이 그만한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오디션이라는 형식의 효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디션이라는 치열한 경쟁 형식 앞에서 자신의 절박함과 개인적인 사연들을 내보이며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든 이들이 성공한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음악 자체의 위상이 하락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더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고, 음악보다 더 화려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늘어나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확실히 덜 소중하고 덜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온전히 음악에만 더 집중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칼라 텔레비전과 뮤직 비디오의 등장 이후 음악에서 시각적인 부분은 계속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이제는 가사와 멜로디, 사운드 등의 음악적인 요소와 시각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음악과 뮤지션이 만들어내는 스토리와 캐릭터의 재미와 감동이 없이는 음악을 소비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것은 인터넷과 케이블을 비롯한 미디어가 다양해지고,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컨텐츠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시대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사회로 전면개편된 한국사회 전반의 자기 계발 열풍과 완벽한 적자 생존 체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슈퍼스타K>가 등장한 것도 바로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진 2009년이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음악에 맘 편히 집중할 수 없고, 귀만 만족시키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음악이 BGM으로 소비되고, 음악을 더 자극적이고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포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음악들이 모두 음악만으로 성공하지 않았다는 것도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진아의 노래부터가 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심사위원들의 과찬을 얻은 뒤에야 화제가 되었다. 걸그룹 엑시드(EXID)의 노래 ‘위아래’는 팬이 직접 찍은 공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 화제가 되면서 뒤늦게 차트에서 역주행했다. 걸스데이는 멤버 혜리가 <진짜사나이>에서 잠깐 보여준 애교스런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인기가 상승했다. 엠씨 몽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어떻게든 화제가 되지 않으면 인기를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외모에서든, 사적인 사연에서든, 노래에서든 화제가 되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서태지가 복귀작에서 아이유와 함께 한 ‘소격동’을 먼저 내세운 것도 바로 그 같은 변화를 포착한 때문일 것이다. 화제가 되어야 음악을 듣고 차트에 오르며 차트에 올라야 TV에 출연할 수 있다.

   

▲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 임재범

 

 

이러한 상황에서는 TV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일한 판단이다. 채널이 늘어나고 매체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TV의 영향력은 축소되는 면이 없지 않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 증거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TV의 힘은 상대적으로는 가장 강력하다. 이진아, 곽진언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이 화제가 되는 것도 사실 그동안 TV에서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을 거의 보여주지 않아서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지도록 만든 덕분이기 때문 아닌가. 그래서 비주류 장르의 뮤지션들은 홍대 앞을 중심으로 인디라는 별도의 신을 만들어 활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자신들이 소외시킨 새로움마저 차용해서 쓰면서 금세 스타로 만드는 것 역시 역설적으로 TV라는 매체의 힘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이렇게 TV의 영향력을 이어가는 대응방식은 얄밉기도 하지만 동시에 TV의 위기감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기존의 방식이나 컨텐츠와는 다른 것들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그들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뮤지션과 제작자들 역시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TV를 통하지 않고도 음악을 알릴 수 있지만 TV를 통하지 않고서는 더 빠르고 강력하게 알릴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어떻게든 TV에 나가 뭐든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TV만 믿고 있을 수도 없다. TV 이외의 것들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음악만으로, 잘 만든 음악만으로는 인기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음악도 잘 만들고 자신의 모든 것을 상품으로 내세워야 하는 것이다. 예쁜 외모건, 독특한 스타일이건, 특별한 사연이건 모두 내세워서 화제가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뮤직비디오도 잘 만들고 SNS도 잘 활용해야 한다. 어디서 얻어걸릴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겨우 인기를 얻고 뮤지션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음악만 잘 만들면 알아주겠지’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세상 모르는 자뻑이 되어 버렸다. 음악 외적인 매력 하나 갖지 않은 뮤지션이 인기를 얻기를 바라는 것도 갈수록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워낙 TV에서 들려오는 음악들이 인기를 끌다보니 흔히 들을 수 없는 음악을 하는 이들의 음악은 대중들에게 들려지더라도 그 매력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이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홍대 출신의 뮤지션이 인기를 끈다고 인디음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음반을 내거나 공연을 하고 TV에 나가는 것 말고도 음악을 알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많아졌다고도 할 수 있다. 뮤지션과 제작자가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음악인 혼자서는 결코 헤쳐 나갈 수 없고, 좋은 회사의 마케팅 지원을 받아야만 하고, 음악을 만든 후에도 음악을 알리기 위해 뭐든 해야 하는 시대, 그래도 뮤지션으로 살기 힘든 시대가 과연 음악하기 좋은 시대일까. 이제는 이러한 현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쉽게 말하기 어려워져버렸다. 양현석은 이진아의 노래를 두고 “음악의 힘” 운운했지만 그의 말이 부질없게 들리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그 자신뿐인 것 같다. "음악의 힘"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음악의 힘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뮤지션들은 지금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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