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래피티(graffiti·길거리 벽화)를 그린 한 미술전공 대학생이 검찰에 기소됐다. 

15일 당사자 김아무개씨(22)와 대구중부경찰서에 따르면, 김씨가 지난 10월 말경 대구 지하철 반월당역과 박근혜 대통령 생가터 인근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닭과 합성한 그림을 그린 것에 대해 경찰이 재물손괴죄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지난 12일 김씨에게 대구지방법원에 벌금형(200만 원)으로 기소했다고 통보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김씨가 반월당역 부근 벽과 박 대통령 생가터 안내판 등 5곳에 그린 그림은 박정희 전 대통령 얼굴 일부를 닭의 부리로 묘사한 벽화로, 그림 하단에는 ‘PAPA CHICKEN’(아빠 닭)이라고 쓰여 있다.

김씨가 그린 이 벽화는 하루 만에 모두 지워졌지만, 공공조형물을 관리하는 대구중구청 등에서 박 전 대통령을 비하했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대구중부서는 11월 초 김씨를 불러 조사 후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해 대구지검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 미대생 김아무개씨가 대구 지하철 반월당역 부근 벽에 그린 그래피티(graffiti·길거리 벽화).

 

김씨는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중구청에서는 박 전 대통령 비하죄로 신고했다고 들었는데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가보니 재물손괴죄로 넘어가 있었다”며 “재물손괴라면 내 행위 자체만 조사하면 될 텐데 경찰 조사관은 대구에서 그림을 그린 의도와 그림의 의미 등을 계속해서 물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대구에서 박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벽화를 그린 이유에 대해 “나는 미술대를 다니는 그림 그리는 학생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로 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그려서 하는 게 더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며 “내 그림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갤러리나 전시공간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래피티 같은 서브컬처(subculture)는 모든 벽이 갤러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작가는 그림을 그린 의도가 있지만 보는 이들에게 작가의 의미를 주입하는 것은 예술이 아닌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며 “대구를 돌아다녀 보면 지하도 등 공공기물에도 그래피티가 상당히 많은데 왜 내 그림만 문제 삼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대구중부서 지능범죄수사팀 관계자는 “시내 곳곳에 그래피티가 있지만 크게 신고가 들어온 경우가 없었고,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그림도 아니었다”며 “김씨는 집중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구청에서 관리하는 조형물과 공공시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특정하는 그림을 그려 신고가 들어와 조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재물손괴 혐의임에도 공안사건을 담당하는 지능팀에서 이 사건을 수사한 이유에 대해 “처음에 중구청에서 전 대통령 비하로 신고가 들어왔고, 공안사건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해 지능팀에 배정한 것 같다”며 “사자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려워 재물손괴로 조사했고 통상적 절차에 따라 기소의견으로 넘겼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검찰의 벌금형 기소 처분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혀, 김씨의 예술 행위가 재물손괴죄 위반인지 여부는 재판을 통해 가려질 예정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