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OOO은 제가 좋아했던 기자인데, 조선에서 저를 문건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가 너무 힘들게 됐습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의 정윤회 국정개입의혹 문건 유출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최 아무개 경위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에 이처럼 ‘조선일보’를 원망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5일자 지면에서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최 경위 유서의 일부 내용이 자사에 부담스럽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14일 일부 언론에 관련 보도가 나오자 “최 경위 유서의 전체를 파악하지 않은 채 유서에도 없는 단어와 내용을 짜깁기해 보도하는 것은 고인의 유서를 왜곡해 혼란을 초래하는 동시에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유서 전체가 공개되기 이전에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거두절미한 채 왜곡 보도해 본지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반론’대로 유서전체의 내용을 보면, 자살의 이유로 조선일보만을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최 경위가 조선일보를 원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유서의 상당 부분이 언론에 대한 원망과 언론의 저널리즘 회복을 당부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고인이 된 최 경위가 죽음을 앞두고 조선일보를 특정해 원망한 것은 다분히 심리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 보인다. 왜 최 경위는 그런 마음을 가졌을까? 유서의 내용대로 단지 좋아했던 기자의 소속사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썼기 때문이다? 납득되지 않는 ‘원망’이자 ‘배신감’의 토로다. 죽음을 앞두고 저널리즘의 회복을 거론한 최 경위는 언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인물이다. 단순히 ‘호불호’의 감정에서 한 언론사를 자신의 유서에서 원망할 그런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서의 ‘텍스트’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는 원망의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먼저 최 경위의 말대로 그동안 조선일보 보도를 살펴보도록 하자. 조선일보가 유서의 내용대로 정말 그를 문건 유출의 주범으로 몰고 갔는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정윤회 비선의혹 문건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 전반을 살펴봐야 한다.

조선일보는 세계일보가 문건을 보도한 이후, 주요한 후속 보도들을 잇따라 터뜨리며 사건이 전개되는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보도가 ‘조응천 전공직비서관’과 ‘유진룡 전 문화관광체육부 장관’ 인터뷰 기사였다. 전자는 이재만 비서관과 연락을 취한 바 있으면서도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고 한 정윤회씨의 거짓말을 밝혀냈고, 후자는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 딸의 국가대표선발 특혜의혹을 조사했던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장과 과장에 대해 직접 인사교체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밝혀낸 것이었다. 이 보도들은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불거진 비선국정농단 실체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한 보도들이었다. 문건 내용에 초점을 맞춘 이런 조선일보 보도들은 최 경위의 ’원망을 살 내용들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문건 유출’사건으로 몰아가고 싶어한 청와대의 의도에 반하는 보도들이었다.

   
조선일보 11월 29일자 3면 기사 
 

하지만 이런 보도들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직후에는 ‘문건 내용’보다 ‘문건유출’을 색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청와대 의도와 일치하는 듯한 보도였다. 세계일보가 문건을 보도한 지난 11월28일의 다음날인 29일, 조선일보는 박 경정이 들고 나온 청와대 문건을 서울청 경찰관 2~3명이 유출했다고 1면 머리기사와 3면 해설기사에서 보도했다. 비선의 국정개입의혹이란 ‘문건내용’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유출경위’에만 보도초점을 맞추면서, 단박에 특정 정보경찰관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한 경찰관계자의 말을 인용 “정보분실 소속 일부 경찰관이 복사한 문건이 일부 언론에 유출되었으며 해당 언론이 이 문건을 근거로 관련 보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후 12월 4일자에서는 검찰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자 최 경위를 실명으로 문서 유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보도를 했다. 이 같은 일련의 보도들에 대해 최 경위는 조선일보가 자신을 사건의 희생양으로 만들어갔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검경을 상대로 취재한 내용을 보도한 것 자체를 두고 최 경위가 특정언론사에 원망까지 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최 경위의 원망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게 무엇일까?

최 경위가 조선일보를 원망한 진짜 이유가 될 만한 단서는 12월 2일자 조선일보의 A4면 하단의 작은 상자기사 <서울경찰청 경찰들, 靑보고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자신들도 세계일보와 마찬가지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을 다수 입수했다는 사실을 살짝 드러낸다. 바로 조선일보를 원망한 최 경위의 이유가 감지되는 기사다. 물론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가 입수한 문서는 세계일보와 동일 문서인지 여부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사의 사례로 든 문건들의 제목을 보면 공직기강비서실이 작성한 다른 문건 내용들이다. 또한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문건입수일자를 12월 1일이라고 특정했지만 입수 출처가 특정되지 않아, 입수일자가 내부인지 외부인지가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이 기사가 말해주는 분명한 사실은 조선일보도 공직기강비서실 문건을 이미 입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12월 2일자 4면 기사 
 

바로 이 지점에서 조선일보가 입수했다는 문서가 최 경위로부터 최 경위가 좋아했다는 조선일보의 ○○○기자에게 건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조선일보는 문건이 세계일보에 의해 보도된 직후인 11월 29일자 보도에서 바로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경찰관들을 지목했다. 경찰관계자로부터 입수한 정보라고 하지만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보도 하루 만에 단정해서 보도하기는 쉽지 않은 신속한 보도였다. 조선일보 기자 역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을 최 경위 등으로부터 입수하고 있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12월 10일자 ‘뉴스1’의 기사 <檢, 체포 경찰관 2명 조선일보에도 '靑 문건' 유출 확인>에 따르면 이 추론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검찰이 최 경위와 한 경위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통화내역과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세계일보 기자 외에도 조선일보 ○모 기자에게도 박 경정이 유출한 다수의 청와대 문건을 넘긴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조선일보에 대한 최 경위의 원망의 이유는 자연스레 풀린다. ○기자로부터 개인적으로 ‘배신감’을 느꼈거나 아니면, ○기자로부터 보고를 받았지만 이를 배려하지 않은 조선일보 편집진에 대한 원망인 것이다. 최 경위에게 ○기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고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기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취재원으로써 신뢰를 하고 위험한 정보를 건넨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하자 조선일보는 취재원인 자신을 보호해 주지는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서 제공받은 문건을 바탕으로 자신을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해 자신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최 경위가 조선일보를 원망한 것이라면, 조선일보는 과연 잘못한 것일까?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비록 최 경위의 원망이 있었다 하더라도 알고 있으면 성역을 가리지 않고 써야 하는 것이 언론이라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보도가 무조건 잘못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가 입수한 청와대 공직기강실의 문건들이 최 경위로부터 입수한 것이 사실이라면, 세계일보의 문건유출자를 최 경위 등으로 지목한 것은 타 언론사가 알지 못한 단독보도이자 ‘팩트’가 상당한 보도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12월 4일자 4면 기사 
 

하지만 사건 초기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에 초점을 맞춰 보도해야 할 시기에 이런 방향으로 보도 초점을 맞췄어야 했는지, 더구나 이런 보도를 위해 기자의 취재원을 고발하는 보도를 감행했어야 했는지 논란의 여지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자살한 최 경위로부터 조선일보가 공직기강 비서실의 문건을 제공받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취재원들로부터 조선일보 기자들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다. 취재원을 보호하지 않는 기자를 어떻게 믿고 정보를 주겠는가 하는 문제다. 또한 만약에 조선일보가 최 경위로부터 입수한 공직기강실 문건들 중에 보도가치가 있었던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도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조선일보가 청와대 ‘문건’을 보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를 원망하는 고 최 경위의 유서 내용은 이래저래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전 언론계 기자 사회에 적지않은 논쟁거리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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