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박원순 서울시장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박원순 서울시장
박 시장이 말하는 ‘시민’은 누구인지 대답해야 할 때

 박원순 서울시장은 ‘행운아’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붙여 승부수를 띄웠지만 투표율이 미달돼 투표함을 열기도 전에 사퇴했다. 2011년 10. 26 재보궐선거 배경부터 무상급식이라는 ‘순풍’을 등에 업은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대 지지율을 보였던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부터 양보를 얻어낼 때도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과의 대결에서도 범야권의 화력을 지원받아 결국 ‘시민의 시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는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지만 오히려 맞불을 놓지 않고 호기롭게 서울시정의 미래를 강조하면서 재당선됐다.

기존 시민사회운동가들이 정치권에 진출해 기존 정치권으로 흡수되거나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계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박 시장을 두고선 시민사회운동의 성장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인권헌장 폐기 논란을 겪으면서 ‘박 시장 역시 현실 정치인’이라는 냉소가 나오고 진보개혁진영의 지지 철회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학계와 정치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박 시장의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박 시장의 정치적 포지션은 진보진영에서 비판적 지지, 개혁진영에서 적극 지지를 얻으면서 중도파를 공략하는 전략 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인권헌장에 대한 서울시의 대응을 보고 진보진영의 지지철회, 개혁진영의 비판, 중도파의 실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치지향적인 인권의 문제에 대해 ‘인권변호사’ 박 시장이 스스로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 모습에 지지세력이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박 시장 캠프의 공보를 담당했던 윤태곤 의제와 전략연구소 이사는 “이번 문제는 정치적으로 박 시장이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신뢰성 부분에 대해 훼손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시장은 진보개혁 정치권 인사 중 기대주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박 시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이번 사태가 부메랑이 되면서 정치력을 발휘할 때가 온 것”라고 말했다.

인권단체 입장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는 양보 불가능한 사항인데도 서울시가 ‘거버넌스’(협치) 과정으로 보고 인권헌장에 대해 만장일치의 합의를 기계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시민운동의 실용노선을 강조해왔던 박 시장 입장에서 인권헌장은 예산이 투입되거나 특별한 시정 변화를 가져오는 이슈가 아니라고 소홀히 생각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김경미 정치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성소수자 문제는 다양한 정치적 그룹 중 호불호가 갈리는 핫이슈”라면서 “이번 문제는 박 시장이 그동안 특정 계층이나 이념이 아닌 착한 이미지만을 전체 시민으로 설정해놓으면서 갈등이 생기자 혼돈 속으로 빠져버린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박 시장을 두고 착한 불도저, 진보계의 MB(이명박)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노동 문제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로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었던 시민들이 분노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박 시장이 말하는 시민의 시장이 어떤 시민인지 질문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및무지개농성단이 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요구를 담은 현수막을 내걸다가 경찰과 승강이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김유리 기자
 

김 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갈등이 증폭될 때 대중 앞에서 설명과 연설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꿨듯이 이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따라 박 시장이 재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대)는 “성소수자 문제는 범지지세력에 반하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의 관점에서 볼 때 너무 많은 상처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줬다는 점에서 오판이고 실책”이라며 “이번 일 뿐 아니라 앞으로 지지세력에 반하는 결정을 수없이 내려야 하는데 매번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면 정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에게도 정치적 시련이 닥친 셈”이라고 말했다.

당장 서울시청에서 박 시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나흘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인권단체에 대해 서울시가 퇴거 및 부착물 철거요청 공문을 발송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성소수자를 무시하는 행태가 농성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소한의 조력도 없는 상태로 선전물 철거가 이뤄지고 시설보호 상황과 위협적인 상황이 발생되지 않았는데도 채증이 이뤄지고 있다”며 “서울시는 농성과정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서도 시설관리팀의 문제라며 모른체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박원순 시장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하는 인권단체들 사이에서 서울시의 답변을 지켜보고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서울시가 인권헌장 제정 권한을 위임해놓고 합의를 요구한 것은 일종의 주류의 입장이고 과도한 개입을 한 것이다"면서도 “다만 우리도 소수일 때 합의를 요구한 경우도 있었고 일부 단체에서는 표결을 강행했어야 했나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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