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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기만한 TV조선과 MBN
어린이를 기만한 TV조선과 MBN
[기자수첩] 어린이프로그램 새벽 편성으로 종편 방송평가 1,2위 차지한 TV조선과 MBN

새벽 3시 50분. 머리가 ‘둥 둥 둥’ 울린다. TV를 켰다. TV조선 어린이프로그램 <금비공주와 호야의 천자무공>을 보기 위해서다. 모두들 잠든 새벽 4시, 아이를 깨울 수 없었다. 아이의 평균 수면시간을 고려했을 때 새벽 4시에 정상적으로 깨우려면 오후 6시에 재워야 한다. 아이가 깰 까봐 TV를 켜고 소리를 줄인 뒤 숨죽여 봤다. 주인공들이 갑자기 사자성어를 외치고 한자로 변신하며 싸운다. <머털도사>와 <마법천자문>을 합쳐놓은 느낌이다. 

무슨 정신으로 만화를 봤는지 모르겠다. 새벽 4시 15분, 다른 채널을 돌려봤다. 맙소사! MBN에서 어린이프로그램 <응까 소나타>를 방송하고 있다. 언제부터 새벽 4시가 어린이 시청시간대였을까. TV조선과 MBN은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시간대에 뉴스‧시사를 편성하고 새벽시간에 어린이프로그램을 편성해왔다. 두 방송사는 이 같은 ‘꼼수 편성’에 힘입어 2013년도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방송평가에서 각각 15점과 11.25점이란 어린이편성점수를 기록하며 나란히 종편채널 1,2위를 기록했다. 

   
▲ TV조선 어린이프로그램 '금비공주와 호야의 천자무공'의 한 장면. ⓒ정철운 기자
 
   
▲ MBN 어린이프로그램 '응까 소나타'의 한 장면. ⓒ정철운 기자
 

2013년 종편채널 방송평가 3위를 기록한 JTBC는 현재 새벽에 어린이프로그램을 편성하지 않은 탓인지 어린이 편성점수에서 5.63점에 그쳤다. JTBC의 총평가점수는 534.72점이다. TV조선이 543.48점, MBN은 540.01점이다. JTBC가 어린이프로그램을 새벽 4시에 꾸준히 편성하며 TV조선과 비슷한 어린이 편성점수를 받았다면 이번 방송평가 1위는 JTBC였을 가능성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어린이가 깰 까봐 조심하며 봐야 하는 어린이프로그램 편성을 두고 두 종편사에 높은 점수를 준 셈이다.

방통위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부끄러웠는지 2014년 방송평가부터는 어린이가 시청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22시부터 7시까지 편성된 어린이프로그램은 평가척도에서 제외한다는 수정안을 냈다. 하지만 한 발 늦었다. TV조선은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종편부분 1등을 차지했다”며 홍보에 나서고 있다. 금비공주와 전국의 어린이를 ‘기만’한 결과다. TV조선 <금비공주와 호야의 천자무공>은 9일 편성을 끝으로 편성표에서 빠졌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의 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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