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의 자회사나 지역방송사 등 특수관계자가 제작한 프로그램 편성 제한 폐지를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이 영세한 외주제작사들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조해진 새누리당 의원 대표발의)을 보면, 방송사업자나 특수관계자가 아닌 외주제작사들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을 ‘순수외주제작’으로 보고 특수관계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의 편성 제한을 폐지한다고 나와 있다.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전체 프로그램의 40% 이내에서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또한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편성할 때 특수관계자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이 일정 비율을 넘어서도 안 된다. 외주 의무비율이 35%인 MBC와 SBS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의 자회사와 지역방송사 등 특수관계자에게 허용되는 편성 비율은 7.35%이다.

조해진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 편성 의무화에 따라 다양한 독립제작사가 등장해 지상파 독과점을 막고 제작 주체가 다양화되고 있으나, 방송사업자 제작 역량 약화 등의 한계도 노출되고 있다”며 “특수관계자 방송프로그램 편성비율의 제한은 외주제작이 활성화되기 이전에 도입된 것으로, 외주제작 비율이 50%에 이를 정도로 활성화된 현재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 의원은 “방송사업자의 외주제작 편성의무는 유지하되, 특수관계자 방송프로그램 편성비율 제한 규정은 삭제하자는 것”이라며 “방송사업자 규제 완화로 투자 확대와 국내 및 해외 시장을 선도할 콘텐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홈페이지 메인 

 

 

하지만 조 의원의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당초 입법 취지에 어긋나고 독립·드라마제작사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외주제작사들도 “외주제작사를 말살하려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은 “원래 외주제작 비율을 법적으로 할당한 것은 콘텐츠제작업체를 활성화시켜 콘텐츠 산업 자체를 육성하자는 목적”이라며 “방송국 특수관계자의 외주제작 비율을 폐지하는 문제가 과연 애초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느냐에 이견이 있어 신중히 검토할 필요 있다”고 말했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지상파 차원에서는 이런 법안이 나올 수 있는데 독립제작사와 드라마제작사 측에서 볼 때 우려가 있다”며 “법안 심사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서 상정된 방송법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다시 전체회의에 회부될 수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지난 1일 성명을 내어 “조 의원은 한류 콘텐츠 제작의 핵심이었던 외주제작사를 말살하고 방송사의 부른 배를 더욱 불리기 위해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조 의원은 현재 외주사의 편성 비율이 50% 이상이긴 하지만 외주사가 영상제작자로서 저작권을 소유하는 방송프로그램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규제 완화라는 미명하에 외주사 말살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협회는 외주제작 의무편성 비율 때문에 방송사의 제작 역량이 약화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방송사가 외주사 간의 과다한 경쟁을 부추기면서도 외주사의 기획력과 경쟁하기보다는 외주사의 창의적인 기획력을 강탈할 수 있는 편성권이라는 절대 권력 안에서 안주해 온 관행 때문에 자초한 문제임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MBC 책임프로듀서 출신 한 언론계 인사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현재 방송법은 방송사가 가진 자체 프로덕션보다 외주제작사들의 편성을 강제해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늘리겠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라며 “특수관계자 편성비율 규제를 풀면 MBC의 경우 MBC 계열의 프로덕션에서 만든 프로그램 위주로 편성함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외주사들은 더 죽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방송법 개정 의도는 재벌들이 자회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식으로 자체 프로덕션을 수직계열화하겠다는 것”이라며 “방송사 프로덕션에는 본사에서 파견 보낸 제작진들도 많고 MBC의 경우 아침드라마는 MBC 프로덕션에서 만들어 외주사는 손도 못 대고 있는데, 규제가 없어지면 이런 독점이 전체 프로그램으로 확대될 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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