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 <달에 홀린 피에로> (Pierro Lunair) http://youtu.be/bd2cBUJmDr8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바꿔가려는 작은 노력을 누군가 하고 있는 한 함부로 희망 없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다.” - 김선우의 빨강 <소리쳐 불러본다>, 한겨레 11월 18일

시인의 한 마디가 따끔하다. 희망 없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해 왔다. 막장으로 질주하는 자본, 개념 없는 대통령, 돌아오지 않는 세월호의 아이들…. 실낱같은 희망도 찾기 힘든 요즘이지만, 그래도 시인의 말에 정신을 차려 본다. 

음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음악은 죽었다”, 이 말을 너무 쉽게 입에 올렸다. 대중들의 ‘클래식 울렁증’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클래식 음악은 영원한, 지고지순한 예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싶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취지였다. “스트라빈스키가 리듬을 파괴하고 쇤베르크가 조성을 해체하고 존 케이지가 악기를 내버리면서 현대 음악은 대중과 멀어져 왔다. 일부 작곡가들은 영화 음악, 뮤지컬, 다양한 팝 음악으로 흩어지며 활로를 모색했다. 클래식 음악도 역사 속에서 태어나 진화하고 소멸하는 유기체와 같다.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음악일 뿐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며 소통하려고 애쓰는 음악가들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이 분들에겐 무척 예의 없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자기는 아무 것도 창조하지 못한 주제에 다른 사람이 이룬 것을 모두 파괴하려 들다니, 무척 오만한 말이었다. 

11월 26일, 아주 소중한 음악회가 KU시네마테크에서 열렸다. “동시대 예술의 최전선을 만난다”는 취지로 프로듀서 김정호와 디자이너 한경훈이 기획한 <컨템포러리 웬스데이>, 피아니스트 김미나의 해설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1912)가 한국 초연됐다. 지휘자 정나라, 연극배우 이승비, 그리고 6명의 연주자가 8개의 악기로 연주했다. 21편의 시로 된 이 작품은 “달에 취해 눈으로 들이키는 술”을 노래하며 시작, ‘그 시절 옛 향기’에 취하여 축복받은 해방을 꿈꾸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시는 7편씩 세 묶음으로 돼 있다. 첫 부분은 사랑 · 섹스 · 종교를, 둘째 부분은 폭력 · 범죄 · 신성모독을 이야기하고, 마지막 부분은 고향 베르가모에 대한 그리움과 귀향을 노래한다. 

이 작품은 역설로 가득하다. 피에로는 영웅이지만 바보이며, 남자 캐릭터지만 여자가 연기한다. 기악 연주자들은 솔로인 동시에 오케스트라며, 보이스(Voice)는 노래인 동시에 연설이다. 이 날 한국 초연은 보이스를 연극 대사로 처리하여 음악의 완성도가 떨어진 게 아쉬웠지만 시를 한국말로 번역하여 의미를 잘 전달한 것은 훌륭했다. 무척 정성스레 준비한 연주회라는 느낌을 주었다.  

40분 가량의 연주가 끝난 뒤 대담이 이어졌다. 무대에 오른 하지현 교수는 “음악을 잘 모르고, 쇤베르크 음악은 더군다나 모른다”고 전제한 뒤 질문했다. “음악의 조성(調性, tonality)은 인간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까?” 피아니스트 김미나씨가 대답했다. “서양 음악이 처음부터 조성 음악은 아니었어요.” 이 질문과 대답이 쇤베르크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는 조성 체계는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확립됐으니,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 음악의 역사에서 조성 없는 음악이 훨씬 더 오래된 게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에 쇤베르크가 시도한 무조 음악도 얼마든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 진화를 거듭해 온 음악이 일정한 시점에서 조성음악으로 정착됐다면 그것 또한 인간 본성이 자연스레 발현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쇤베르크의 궁극적인 고민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쇤베르크는 무조음악을 시도했고, “언젠가 평범한 사람들이 내 음악을 흥얼거릴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 날은 아직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인류가 초인(Übermensch)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이 조성을 갖고 진화할 때 작곡가들은 음악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었다. 쇤베르크를 아낀 구스타프 말러는 “나의 시대는 올 것”이라고 했는데, 그 예언은 실현됐다. 그의 교향곡은 이제 베토벤만큼 자주 연주되며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쇤베르크의 운명은 달라 보인다. 그는 무조음악을 시도했지만 그것을 규범(canon)으로 고집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20세기의 후배 음악가들은 대부분 그의 선례를 따랐다. 쇤베르크는 만년에 자신의 무조음악이 조성음악의 발전을 저해한 게 아닐까 회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역사 속의 음악은 그 시대에는 모두 ‘현대음악’이었다. 16세기부터 20세기초까지 ‘현대음악’은 발표하는 즉시 받아들여졌고, 좀 어렵더라도 얼마 뒤엔 이해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현대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100년 전에 생겨난 과거의 음악인데도 여전히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음악’이 ‘이해할 수 없는 음악’과 동의어가 돼 버린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대담 말미에 나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질문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꼴이 됐고, 이 자리를 마련한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 자꾸 튀어나왔다. 질문의 요지는 이랬다. 

조성음악의 해체를 ‘세기말’(fin de ciècle)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엄밀히 말해 퇴폐와 허무주의의 ‘세기말’은 19세기말 하나뿐이었다. 모차르트가 활약하고 베토벤이 등장한 18세기말에는 새로운 시대가 동트고 있었다. 이 때 시작된 산업혁명과 시민민주주의 혁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분기’(great divergence)로 인한 빈부격차와 계급투쟁은 19세기 내내 악화일로를 걸었지만, 그 시대의 첫걸음을 내딛은 18세기말에는 일말의 낙관주의가 있었다. 그로부터 100년, ‘세기말’의 우울과 피로와 염세주의가 유럽을 덮쳤다. 그리고 20세기, 나아진 게 있는가? ‘세기말’이 예고한 비극과 재앙이 인류를 강타하지 않았는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쇤베르크의 현악사중주곡 2번 - 무조 음악의 첫 대표작 - 이 나온 게 1913년이었으니 1차 세계대전 전야였다. 현대음악의 선구자들은 어두운 시대를 예언한 ‘동굴 속의 카나리아’였을까? 이들이 추구한 음악의 혁신은 파국의 시대를 미리 보여준 파국의 음악 아니었을까? 이건용 선생이 <현대음악 강의>를 모차르트에서 시작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그렇다면 현대음악의 역사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차곡차곡 몰락해 온 역사가 아닐까?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 현대음악의 선구자들은 불가능에 도전한 비극적 영웅들 아닐까? 

   
▲ 아놀드 쉰베르크
 

또 100년이 흘러 21세기가 됐다. 빙하에 부딛쳐 침몰하는 타이타닉처럼 세계 자본은 마지막 파국을 향해 매순간 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100년 전 음악이 여전히 ‘현대음악’이라 불리는 이상한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대담을 진행한 김미나씨는 “20세기의 모든 작곡가들이 새로운 음악을 모색했지만, 쇤베르크만큼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20세기 음악의 최전선에 있는 대표적 작곡가’로 쇤베르크를 선정한 취지라고 할 수 있었다. 쇤베르크의 치열한 고민에 공감하면 그를 사랑하기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를 제대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쇤베르크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Schönberg?)” 아직 흔쾌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현대음악의 미래는 낙관을 허용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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