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윤회는 최태민의 사위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은 좀 모호한 관계였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과 박지만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속고 있는 언니가 불쌍하다”며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씨의 손아귀에서 건져주십시오”라고 애원한다. “진정코 저희 언니는 최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편지의 최씨가 바로 최태민이다.

탄원서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최씨는 아버님 재직시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우리 언니인 박근혜의 비호 아래 치부하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최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습니다.”

박지만은 그해 12월 우먼센스와 인터뷰에서 “큰 누나와 최씨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 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태민은 목사라고 불렸지만 한때 불교 승려 행세를 하기도 했고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름이 7개나 되고 부인이 6명에 3남6녀를 두고 있다. 최태민이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죽고 난 뒤 최태민이 꿈에서 육영수 여사를 만났다는 편지를 보내면서부터라고 알려졌으나 최태민과 박 대통령은 이른바 현몽설을 부정한 바 있다.

   
왼쪽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최태민.
 

여러 기록을 되짚어보면 박 대통령은 최태민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은 박 대통령이 설립한 구국봉사단에서 명예총재로 행세하면서 기업인들을 운영위원으로 위촉해 찬조비나 운영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1977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최태민을 불러다 ‘친국’을 한 사실도 기록에 남아있다. 박 대통령이 “내가 그간 최태민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의 항소 이유서에도 최태민의 이야기가 나온다.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 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박 대통령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최태민과의 관계를 밝힌 적 있다. “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 목사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 아무런 관계가 없다.”

2004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그분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면서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돌아가신 지가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면서 “정권이 몇번 바뀌는 동안 친척까지 이 잡듯이 뒤지고 조사도 많이 했지만 아무 것도 드러난 것이 없지 않느냐”고 옹호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1991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느껴서 그분과 같이 일하게 됐다”고 말한 적 있다. 조선일보 2002년 인터뷰에서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정식 기독교 목사였고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면 상대도 안 했을 것”이라며 “나도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최태민은 12·12 직후 사기 및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끝내 최태민과 딸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고 최태민은 육영재단 고문을 맡으면서 이권 사업에 개입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회가 등장한 것은 최태민이 1994년 죽고 난 뒤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입문하면서부터다. 정윤회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내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가 되면서 잠깐 물러났다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국회 입법보조원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정윤회가 여전히 비선라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루머는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던 의문의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정윤회를 만났다는 루머가 나돌 정도였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청와대 정윤회 감찰 문건이 공개됐다. 이 문건에는 정윤회가 문고리 3인방과 함께 그림자 권력 행세를 하고 있으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을 의도적으로 퍼뜨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만약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박근혜-최태민의 질기고 오랜 인연이 그의 사위 정윤회로 이어져 초법적으로 국정을 농락하는 지경에 이르고 한때 “누나를 최씨에게 떼어놓아야 한다”던 동생 박지만이 가세해 최씨의 사위와 권력 다툼을 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문건의 작성자로 거론되는 박아무개 경정은 “박지만 회장이 나서서 문고리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 논객, 조갑제는 2005년 10월 월간조선에 쓴 칼럼에서 박근혜-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박근혜 대표가 1970년대 후반기에 최태민이란 이상한 사람을 구국봉사단 총재로 썼다가 최씨가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켜도 그를 끝까지 감쌌던 적이 있다. 박 대표는 한번 믿어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안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이 최태민에게 의지했던 것처럼 그의 사위 정윤회에게 의지하고 있다면 조갑제의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김기춘도 정윤회 손바닥?
정윤회 미스터리, 청와대는 문건 보고 받고 왜 작성자들을 경질했나

만약 정윤회 문건이 사실이라면 정윤회는 왜 김기춘을 교체하려고 했을까.

세계일보 보도와 시사저널 보도를 종합하면 퍼즐의 상당 부분을 맞출 수 있다.

지난 3월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정윤회가 사람을 시켜 박지만을 미행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지만이 김기춘에게 항의를 했다. 박지만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간부 ㄱ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ㄱ씨는 ㄴ씨에게 내사를 지시했으나 대통령 측근의 지시로 중단되고 경찰 파견 직원이었던 ㄴ씨는 경찰로 돌아가게 된다.

시사저널은 1일 ㄴ씨로 추정되는 박아무개 경정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박 경정은 박지만 미행사건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좌천은 맞다”면서 “문고리 3인방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겪은 것은 맞다”고 거듭 확인했다. 박 경정은 “박지만 회장은 영부인과 맞먹는 위치에 있다”면서 “박지만 회장이 나서서 문고리 권력들을 견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일보가 공개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에 따르면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해 이른바 십상시는 정윤회가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박 경정은 “민정(수석실) 내부에서도 문고리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조응천과 나 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박 경정의 말이 맞다면 시사저널의 ㄱ씨는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고 이들이 박지만을 내세워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하려다 축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문건이 작성된 건 올해 1월이고 박지만 미행 사건은 지난해 12월이다. 그리고 박 경정이 좌천된 건 올해 2월, 조응천이 청와대를 떠난 건 4월이다.

드러난 정황을 기초로 가능한 추론은 다음과 같다. 박 경정의 주장이 맞다면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이 청와대를 장악하고 있고 박지만이 조응천과 박 경정 등의 도움을 받아서 또는 조응천과 박경정이 박지만을 내세워 정윤회 패거리를 몰아내려고 만든 게 이번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박지만이 등장하지 않지만 정윤회 라인과 박지만 라인의 대결에서 박지만 라인이 축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문건은 누구를 위해서 만들었으며 또 어떤 경로로 유출된 것일까. 김기춘 축출설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 문건은 박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는 김기춘을 흔들고 박 대통령을 움직여 정윤회 세력을 압박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지만 라인의 작품일 수도 있지만 정윤회 세력을 견제하려는 청와대 내부의 또 다른 누군가일 수도 있다.

청와대가 문건의 진위를 밝히거나 해명하기 보다는 엉뚱하게도 문건 유출 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나선 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문건을 언론에 흘렸다고 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윤회와 박지만의 대립이 온 천하에 드러났는데 이를 수습하기 보다는 누가 정윤회의 등에 칼을 꽂았는지를 밝히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문건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국정의 주도권을 박지만이 아니라 정윤회가 쥐고 있는 건 분명하다.

실제로 조응천은 조선일보와 2일 인터뷰에서 “정윤회씨가 건 전화를 받지 않은 그 다음주 화요일 홍경식 민정수석이 갑자기 불러서 갔더니 ‘그동안 수고했다’며 그만두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조응천은 “문건 내용은 실제 모임에 참석해서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한 것이었다”면서 신빙성이 “6할 이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가 조사를 하라는 지시는 없었고 대신 얼마 뒤 박 경장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정윤회와 박지만의 중간에 낀 김기춘의 모호한 태도도 눈길을 끈다. 김기춘은 문건을 보고 받고 정윤회를 내치기 보다는 문건의 작성자들을 내쳤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치는 걸 방관 또는 용인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 과정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을 수도 있고 정윤회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정이 맞다면 결국 김기춘 역시 정윤회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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