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안경환 위원장)가 표결을 통해 채택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최종안을 서울시가 수용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시민위원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며 “서울시가 비상식·비민주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효관 서울시 서울혁신기획관은 30일 서울시청에서 연 기자설명회에서 “서울시는 긴 시간을 두더라도 시민위원회 합의를 촉구했지만 투표로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며 “미합의 사항을 빼고 인권헌장을 발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다음 달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춰 인권헌장을 발표하려던 당초 계획이 사실상 무산돼 인권헌장 역시 자연스럽게 폐기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서울시의 입장에 대해 시민위원회 측은 “서울시는 애초의 약속대로 시민이 만든 인권헌장을 선포하고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인권헌장을 선포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 20일 오후에 열리기로 예정됐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 사진=강성원 기자
 

시민위는 이날 오후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에 대한 입장’을 내고 “시민위는 지난 28일 시민이 참여하여 만든 역사적인 인권헌장을 확정했다”며 “지난 6차 회의에서 헌장 제정이 무산됐다는 보도는 명백한 오보”라고 반박했다.

시민위는 “제6차 회의에서 50개 조에 달하는 인권헌장최종안 중 45개 조항은 참석자 전원 일치로 통과됐고, 나머지 5개 조항은 대표토론을 거쳐 표결한 결과 압도적으로 원안이 채택됐다”고 설명했다.

시민위와 서울시와 입장이 갈리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5개 조항과 관련한 의결 방식이다. 특히 서울시는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제1장 제4조)의 채택 여부를 놓고 제정위원들과 의견 다툼을 벌였다.

시민위는 “서울시가 발언을 요청하고 ‘만장일치가 아니면 인권헌장을 선포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했다”며 “시는 이후에도 총 4차례의 발언을 통해 투표로 결의한 헌장은 시가 수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문경란 시민위 부위원장(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 회의 때 서울시가 입장을 밝혔는데 거기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자체 의사결정 방법으로 정할 것인지도 표결했다”며 “표결로 정하자는 안과 만장일치 합의, 미합의 조항 제외 등을 표결한 결과 압도적 다수가 의결 절차를 스스로 정하고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문 부위원장은 이어 “시민위에서 어떻게 통과시킬 것인지는 시민위에서 결정하고 표결하자고 그랬지,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을 해야 의결할 수 있다는 절차를 정한 적이 없다”면서 “어제(29일) 인권위 임시회의 소집 관련해서도 전효관 기획관과 통화를 했지만 오늘 서울시 발표에 대해 우리는 전혀 공식입장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시민·종교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논란이 됐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1장 제4조는 “서울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형태·상황, 인종, 피부색, 양심과 사상,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학력, 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로 최종 확정됐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 전문위원들도 이날 성명을 내어 “서울시는 시민위원들이 표결에 의한 의결 방식을 채택하자 사회자의 마이크를 빼앗고 의사진행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곤란한 태도를 보였다”며 “민주적 원칙에 충실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확정된 인권헌장을 단지 논란이 있고,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용도 폐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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