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전격’ 기자회견이었다. 케이블방송 씨앤앰 장영보 대표는 26일 오전 ‘깜짝’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 대표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지원 아래 ‘3자 협의체’(원청 씨앤앰, 파트너사 협의회, 노동조합)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이날은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그동안 원청이 해고자 109명 문제에 대해 “협력업체 노사 간 문제”라며 발뺌하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태도를 보인 것이다.

   
▲ 포털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씨앤앰 관련 보도. 씨앤앰이 뿌린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각종 매체들이 ‘3자 협의체’ 소식을 바쁘게 전달했다. (네이버)
 
   
▲ SBS 8뉴스 26일자 6번째 꼭지 <“고용 보장” 보름째 고공 농성> (사진 = SBS 화면)
 

기자회견 파급력은 컸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 50여 명이 작성한 것 외에도, 오후 내내 관련 뉴스는 확대 재생산됐다. 씨앤앰이 뿌린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각종 매체들이 ‘3자 협의체’ 소식을 바쁘게 전달했다. 보름 동안 침묵을 지켰던, SBS <8뉴스>도 6번째 꼭지 <“고용 보장” 보름째 고공 농성>을 통해 씨앤앰 노사 문제를 다뤘다.

보름 동안 고공농성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언론이었다. 이날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량과 논조를 보면 분명 ‘청신호’가 켜진 것 같다.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판단은 다를 수 있으나 몇 가지 놓치고 있다.

첫째, 씨앤앰이 자나 깨나 협상 테이블을 요구하던 노조를 건너뛰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장 대표는 “서울지방노동청에서 씨앤앰, 협력업체, 노동조합을 다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협의체 구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당사자들이 긍정적인 사인을 한 것으로 안다. 일정 부분 동의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은 달랐다. 김영수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장은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사측이나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사전에 어떠한 제안도 받지 못했다”며 “되레 협력업체 쪽에서 우리에게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씨앤앰이 노조를 협상의 파트너로 진정 여기고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노조를 협상 대상자로 생각했다면 기자회견에 앞서 노사 대화를 먼저 시도하는 게 수순이기 때문이다.

   
▲ 씨앤앰 장영보 대표이사가 26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사진 = 전국언론노동조합)
 

매체비평지 미디어스는 26일 오후 MBK파트너스 관계자를 인용하며 “실제 씨앤앰은 기자회견 계획을 MBK파트너스 등 주주 쪽에는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대주주 MBK를 향해 거세지는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씨앤앰의 ‘언론플레이’가 아니었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지부장은 “여태 원청에 해고자 복직 문제를 요구했으나 외면했다”며 “노조와 시민사회가 대주주 MBK에 대한 공세를 가하자 갑자기 원청이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노사문제 해결이라는 이미지를 언론에 띄우면서 시선을 돌리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장 대표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프레스센터 20층 기자회견장 정문이 아닌 뒤편 통로로 퇴장했다. 일반적으로 회견 참석자는 잘 이용하지 않는 통로다. 정문에는 피켓을 들고 장 대표와 대화를 하려는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노사 대화를 외면하고 뒤편으로 퇴장한 것일까.

   
▲ 씨앤앰 노동자들이 26일 기자회견장 정문 앞에서 대주주 MBK가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 전국언론노동조합)
 

둘째,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 외에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알맹이가 없었다. 장 대표가 많이 사용했던 단어는 ‘인도’와 ‘도의’였다. 법적인 책임은 없으나 고공농성 노동자에 대한 도의적이고 인도적 차원에서 고용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얘기였다.

기존 입장을 고수한 대표 사례가 고용승계 문제였다. 장 대표는 협력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등을 포함한 노사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고용승계를 위해서는 업무위탁 계약서 내용에 따라 협력업체 경영진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고용승계 관련 단체협약 내용이 원청의 의무 규정이 아닌, 협력업체의 협조사항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단체협약 불이행이 노동법 위반이라는, 반박 주장도 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에서 “노조법 81조에 따르면 부당노동행위”라며 “씨앤앰은 2013년 고용승계 등을 포함한 노사 단체협약을 맺었는데 MBK의 씨앤앰 매각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노사가) 인지해서, 매각과 무관하게 고용승계를 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가 노사 단체협약 준수 대신 ‘인도’, ‘도의’만 내세우는 태도가 못 미더운 이유다.

   
▲ 씨앤앰 장영보 대표이사가 26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3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취재 기자들과 씨앤앰 임원들의 모습. (사진 = 전국언론노동조합)
 

기자회견에 알맹이가 없다는 걸 몇몇 기자들도 지적했다. 기자회견장에서 JTBC 한 기자는 장 대표에게 “법적인 책임이 없다, 관여할 근거가 없다고 하는데 뒤집어 보면 ‘3자 협의체’를 구성해도 협력업체가 경영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본사가 설득을 해야 한다”며 “본사의 하청업체 지원방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오늘 기자회견에는 그 정도 방안도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장 대표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하고, 필요할 때는 전문가 동의를 받아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며 “그동안과 다르게 앞으로는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다. (오늘 자리는) 선언적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씨앤앰의 전격 기자회견은 자본이 언론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런데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원청이 고용문제 해법을 위해 협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결국 오늘의 기자회견보다 향후 언론이 주목해야 하는 사건은 노사가 협상 테이블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김 지부장은 “그래도 해결 의사를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면서도 “논의 결과, 고공농성은 풀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노동자가 땅을 포기하고 하늘에 올라야만 자본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다. 극단에서만 호흡할 수 있는 한국 노동환경의 현주소에서 씨앤앰 사태 해법은 여전히 난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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