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주술(類感呪術). 영국의 한 인류학자가 이론을 만들어서 주장하기 시작한 공감주술(共感呪術)의 한 형태로 모방주술(模倣呪術)이라고도 불린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고, 그 결과는 원인을 닮는다는 유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면 비가 내리고, 돌부처의 코를 떼어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믿는 식이다. 연애를 방해하거나 걸림돌이 되는 사람의 인형을 만들어서 상처를 내고 저주하는 것도 유감주술의 하나다. 옛날 궁중에서는 사람의 형상을 닮은 짚 인형인 제웅을 만들어 방자, 즉 남이 잘못 되거나 재앙을 받도록 귀신에게 빌어서 저주하거나 그런 방술을 쓰는 일이 잦았는데, 이 역시 유감주술에 속한다. 

김만수가 제웅을 이용한 방자로 대한민국의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는 권귀(權貴) 7백명을 저주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치자 송헌 스님의 얼굴엔 수심이 드리워졌다.    

“김 사장님,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방자질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셨지예?”

“혹시 대리 사는 조희진씨 아십니까?”

“그 분은 제가 잘 모르지만 어머니 이춘심씨가 내원암 신도라 잘 알고 있는데예 그 보살님이 이번에 손주하고 참변을 당해 저도 참 마음이 짠한데, 아직 시신은 못찾었지예?”

송헌 스님의 초롱초롱한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네,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는데요. 그 이춘심씨 막내 아드님이 조희옵니다. 이번 참사로 아들을 잃은 그 동생이 그제 위도활빈당을 창립허는데 그러더군요. 임진왜란 때 승군 지도였던 영규 대사랑 금산 전투서 순절한 의병장 조헌이 배천 조씨로 집안의 선조라며 칠백의총에 합장된 칠백의사의 충절을 계승해 이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는 7백명만 몰아낸다면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 정말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 같다구요. 스님도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정치권력을 왕권 같이 행사하며 제왕처럼 국가와 법 위에 군림허는 대통령, 이기심에 찌들고 당리당략에 따라 춤을 추며 국정을 농단허는 국회의원, 족벌체제로 문어발식 경영을 일삼으며 정경유착에 혈안이 돼 있는 재벌, 부패공화국의 고위 관료로 마피아 친척뻘이 되고도 남을 만 헌 관피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쓰레기 같은 기사를 양심의 가책도 없이 써갈겨대는 언론인, 신성한 종교를 지들 욕망을 채우고 치부의 도구로 삼고 있는 종교 지도자, 이들이 이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는 권귀라고 확신허는데, 그 가운데 칠백명만 추려서 몰아낸다면 대한민국을 개조 헐 수 있지 않을까요?”

“7백명 중 단 한 명을 몰아내기도 힘들겠지만 그들을 저주해서 김 사장님의 막힌 운이 트이고, 국운이 융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리 하이소! 근데예…”

송헌 스님이 말꼬리를 흐리며 찻잔을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김만수도 속이 타는지 말문을 닫고 차를 마셨다. 김만수의 빈 찻잔에 주전자의 차를 따르고 나서 송헌 스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김 사장님, 사실 제가 오늘 김 사장님께 유감주술을 알려 드린 건 전직 두 대통령과 이어지고 있는 악연을 당장 끊지 않으면 김 사장님의 상처 받은 영혼에 더 처절한 고통이 따를 것 같아 그런건데예, 갑자기 이 나라 권귀 칠백명에게 방자질을 하겠다고 나서니 어떤 말씀을 해드려야 될지 참 난감하네예.”

“아니 스님, 제 구상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유감주술이란 같은 것끼리는 같은 효과를 낳는다는 원시적 사고방식이라예.”

“스님 덕분에 오늘 저는 그런 주술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요. 글쎄 무슨 말씀을 허실려고 이러십니까?”

“그런 주술을 함부로 부리다가 김 사장님이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어 그러는데예 남을 저주하거나 죽이려면 나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예?”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싸워야 될 대상은 하나 같이 엄청난 권력과 돈줄을 쥐고 있는 무법자들이라 상상을 초월하는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제가 왜 모르것습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가만히 앉어서 그들헌테 당할 순 없는 일 아닙니까? 내 고향 앞바다서 대참사가 발생했고, 내 친척과 이웃이, 그러고 내 고향 선후배들이 이 나라 권귀들의 끝없는 탐욕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남을 죽이려면 내가 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세상 이치를 제가 왜 모르겠냐구요? 사실 저도요, 부양을 해야 될 처자식이 있다 보니 제 몸을 함부로 쓸 수 없구요. 솔직히 두렵고 겁도 납니다. 헌데 제 운명이 천 길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는 듯한데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흐으윽!…”

김만수는 울분을 터뜨렸다. 한 참 뒤, 그의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혀 있던 눈물이 거의 다 마르자 송헌 스님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탱활 그리다보니 부처님의 상호는 물론이고예, 신들의 얼굴, 중생들 얼굴에 늘 관심을 두고 삽니더! 근데예…”

송헌 스님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지 김만수는 답답한 모양이다. 

“제가 김 사장님과 마주 앉아 이래 대활 나누고 있는 건 지난 봄 보살님과 함께 이곳 내원암에 찾아 오셨을 때가 처음이고, 오늘이 두번짼데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한 번 들어 보실라예?… 제가 보기에 김 사장님의 인상은 영락없는 도깨비상이라예!”

“아니 스님, 제 인상이 도깨비상이라고요?”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더!”

“아니 스님, 제 머리에 뿔이 난 것도 아니고, 이빨이 튀어 나온 것도 아닌데 어째서 제 인상이 도깨비상이라고 허십니까?”

김만수가 이렇게 큰 소리로 묻자 송헌 스님은 난처한 듯 씩 웃었다.

“지금 김 사장님이 말씀하신 도깨빈 우리나라 토종 도깨비 형상이 아니고예 중국의 독각귀나 일본의 오니 형상이라예!…”

송헌 스님의 한국 도깨비에 대한 설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미의 설명에 따르면, 민간 신앙으로 전해 오는 초자연적인 존재 중 하나인 한국 도깨비는 귀신도 아니고 요괴도 아닌 엄연한 신이었다. 삼국유사 등 우리나라 고대 문헌으로 살펴볼 때 도깨비 신앙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 도깨비는 보통 남성으로 머리를 산발하고 성질이 거친데 산길이나 들길에서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걸음이 빠른 도깨비는 넓은 들이나 갯벌을 순식간에 이동하고 신출귀몰했다. 그 형체는 다양한데 불을 켜고 다니는 등불 도깨비도 있고, 굴러다니는 달걀 도깨비도 있다. 음귀라서 어두운 밤에 주로 나타나는데, 간혹 궂은비가 부슬부슬 내리거나 안개가 낀 대낮에도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한 밤 중에 밤길을 가다가 도깨비가 나타나 심술을 부리기에 칡넝쿨로 묶어 놓은 뒤 다음 날 찾아갔더니 헌 빗자루 하나가 묶여 있었다고 말한다. 어떤 나그네는 밤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깨어나니 부지깽이 하나를 끌어안고 누워 있었다고 증언한다. 도깨비는 닭이 울고 먼동이 트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는데, 보통 빗자루나 부지깽이 같은 일상의 생활도구로 변했다. 

이렇듯 한국의 도깨비는 사람이 죽어서 생긴 귀신도 아니고, 사람을 해치는 요괴도 아니었다. 이런 한국의 도깨비는 몇가지 두드러진 특징도 갖고 있다. 그 첫 번째 특징은 심술궂은 장난을 매우 즐긴다는 점이다. 한밤중에 만난 사람에게 씨름을 한 판 하자고 요구한 뒤 몇 판을 내리 져도 다시 또 씨름을 하자고 요구를 하는 점 등이다. 두번째는 꾀가 없고 미련하다는 점이며, 세 번째는 건망증이 심한데도 빌린 돈은 꼭 갚을 줄 아는 양심(?)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밖에 영악한 인간에게 연거푸 속아 넘어가는 순진함도 있고, 노래와 춤을 즐기는 풍류의 기질도 갖고 있다. 사람처럼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고 즐거운 일에 몰두했다.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도깨비를 우리 민족은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왔다. 지체가 높아 쉽게 접근을 할 수 없는 존엄한 신이 아니라 위엄이 덜하고 부담스럽지도 않은 평범한 신이었다. 그리고 도깨비는 재물을 모아주는 신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 주는 풍요의 우상이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도깨비불이 뛰어 노는 곳에서 제를 올리며 풍농을 빌었고, 어부들은 도깨비불이 머무는 바다에 그물을 치고 만선을 꿈꾸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민족의 오랜 친구이자 수호신이었던 변화무쌍한 도깨비의 형체가 우리 현대인의 의식 속에 왜곡된 모습으로 들어 앉아 있다. 머리에 뿔이 나고, 어금니가 앞으로 튀어나오고, 원시인 같은 차림으로 손에 도끼나 철퇴를 들고 돌아다니는 일본의 요괴 중 하나인 ‘오니’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강제병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민족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시도했던 식민지 문화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니 근데 스님, 제게 오늘 도깨비 이야길 이렇게 상세하게 들려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송헌 스님의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만수가 이렇게 물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김 사장님은 우리나라 토종 남성 도깨비와 그 형상이 엇비슷해서 그랬구예! 착한 사람들에겐 도움을 주고 나쁜 인간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던 도깨비가 사라지니 근래 들어서 희한한 일들이 참 많이 벌어지는 것 같아서 그런데예. 제 보기엔 1970년대부터 현대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이 땅에서 도깨비가 거의 자췰 감추고 말았는데, 한밤중에 불쑥 나타나고, 사람의 눈에 자주 띄던 도깨비가 사라지니 대신 활개를 치고 다니는 무리들이 누군 줄 아시나예?”

송헌 스님의 질문에 김만수는 어리둥절한 듯이 두 눈만 끔뻑거렸다.

“도깨비가 사라지니 시도 때도 없이 우리들 눈앞에 나타나서 설치고 있는 무리들이 바로 김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금수들인데예, 근데 안타까운 건 그 옛날 도깨비는 사람한테 거의 해꼬질 한적이 없구예, 세상을 어지럽히지도 않았는데예, 요즘 이 나라의 금수들은 사람을 해치고 나랄 망가뜨리고 있으니, 이것 참 큰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예!…” 

다시 말을 이어가는 송헌 스님의 입을 김만수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김 사장님, 이 곳 내원암에 와서예, 대리 띠뱃놀이 행사 때 두 차례 참갈했는데예, 마을 앞 부둣가에서 띠배를 만들 때 둘러보니, 한켠에서는 주민들이 띠배에 실을 제웅을 만들데예. 그래 구경을 해보니, 짚으로 사람 형상을 만든 다음에 한지를 상체 상단에 감고 난 뒤 매직펜으로 사람의 얼굴을 그리던데예 제가 보기엔 그 제웅의 얼굴이 곧 도깨비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더!  친근감 있고 익살스러운 그 얼굴들이 바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얼굴이고, 도깨비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던데예, 일단 대리 띠뱃놀이 행사 때 만드는 제웅으로 이 땅의 권귀 칠백명한테 유감주술을 걸어 보시구예, 그 이후에 여유가 되면 캐릭터나 열쇠고리 같은 문화상품을 만들어서 세상에 널리 뿌려 보시지예. 그래서 위도 도깨비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지면 도깨비가 사라진 뒤 겁 없이 설치고 있는 이 땅의 금수들이 몸을 사리지 않을까 싶네예!…”

송헌 스님의 조언이 반가운 듯 김만수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위도활빈당 창립을 하셨다니 참고가 될 만한 정보를 하나 드릴까 하는데예, 김 사장님, 제가 이곳 내원암에 오기 전에 선운사에 머물렀는데예, 이 내원암이 선운사 말사라는 건 아시지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선운사에 있는 미륵부처님 얘기 들어 보셨는가예?”

“아뇨, 듣지 못했습니다.”

“선운사 도솔암 근처엔 높이가 13m에 이르는 마애미륵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예. 이 선운사 미륵부처님 배꼽엔…”

송헌 스님은 보물 제1200호인 선운사 도솔암으로 오르는 길 옆 절벽에 새겨져 있는 거대한 마애미륵불 이야기를 꺼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이 마애미륵불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의 불상으로 배꼽 부위에 있는 작은 감실(龕室)에 비결(秘訣)이 들어있다고 해서 크게 주목을 받아 왔다. 특히 동학의 대접주로 전봉준 장군과 함께 1895년에 처형당했던 손화중(孫華仲)이 그 비결을 꺼내서 손에 쥐었다고 해서 더욱 주목받았다.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절로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오는 선운사(禪雲寺). 선운사의 ‘선운(禪雲)’은 ‘구름 속에서 참선 한다’는 뜻이다. 선운사를 품어 안고 있는 선운산(禪雲山)은 일명 도솔산(兜率山)이라고도 불린다. 선운산은 본래 도솔산이었다는데,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운산은 새 세상을 꿈꾸는 후천개벽의 땅으로 여겨져 왔고, 구원의 보살인 미륵불이 일찍부터 상주했다.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로 여겨져 온 미륵불이 도솔천궁 선운산에서는 색다른 형태로 존재해 왔다.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애미륵불 배꼽 안에 천년의 비결이 들어 있다고 전해진다. 이 신비한 비결이 마애비륵불 배꼽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하고, 비결에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경고성 전설도 있었다. 그런데 1820년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비결을 꺼냈다가 천둥벼락을 맞았다. 갑자기 내려친 벼락 탓에 힘들게 꺼낸 비결을 읽어보지도 못한 채 다시 감실 안에다 집어넣었는데, 그때 이서구가 얼핏 본 것은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는 문구였다고 한다. 이후 그 누구도 이 비결을 꺼낼 엄두를 못냈지만 1892년 동학 혁명군의 지도자 손화중이 도끼로 부처의 배꼽을 부수고 감실 안에 있던 비결을 꺼냈다. 민중의 분기탱천하는 힘을 한데 모아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발판을 만들려고 손화중은 목숨을 걸고 비결의 탈취를 시도했다. 그런데도 그는 벼락을 맞지 않았다. 하지만 비결이 그의 손에 들어간 뒤에도 앞날의 길흉화복을 적어 놓았다는 그 내용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그 비결의 행방은 아직까지 묘연한 상태다.  

“그 비결의 내용이 궁금하지 않은가예?”

송헌 스님의 질문에 김만수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손화중은 그 비결서에 어떤 글이 적혀 있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일설엔 그 비결의 겉표지에 붓글씨로 쓴 끔직한 한자 두 자가 적혀 있었다고 하던데, 굳셀 무자와 바다 해자라고 하데예!...”

“굳셀 무자와 바다 해자가 적혀 있었다구요?”

김만수는 방바닥에 손으로 ‘굳셀 무(武)’자와 ‘바다 해(海)’를 써 보면서 송헌 스님의 이저지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손화중이 꺼낸 그 비결을 아마 전봉준 장군도 읽어 봤을텐데예, 그 비결에 적힌 굳셀 무자와 바다 해자를 보고 동학혁명을 최선봉에 서서 이끈 그 두 지도자는 어떤 판단을 했는지 알 순 없지만 저는 아마도 앞으로 세상을 바꿀 사람이나 계기는 무자나 해자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예, 김 사장님이 제웅을 활용한 유감주술을 걸 때도 그렇지만 위도활빈당을 이끌어 가실 때도 이 비결을 꼬옥 참고하셨으면 하네예! 어쩌면 선운사에 있던 후천개벽의 기운이 말사인 위도 내원암에 전해졌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예!…”

김만수는 두리번거리면서 송헌 스님의 거처를 가득 채우고 있는 탱화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그는 그저께 밤에 꾼 악몽 속에 그미가 나타나 오늘 내원암에 찾아왔다. 그미에게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꾸려야 될지 몰라 상담받으러 온 것이다. 그미는 인생살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가운데 선운사 마애미륵불의 배꼽에서 손화중이 꺼냈다는 비결이 그의 지친 영혼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그렇지만 머리가 아팠다. ‘무’자와 ‘해’자, 바다에서 떨치고 일어나 무력으로 국가를 전복 시키라는 뜻인지, 바다에서 발생할 어떤 일로 인해서 정권이 붕괴된다는 뜻인지, 그 두 글자의 참뜻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니 김만수의 머릿속은 뒤엉켰다. 선운사 마애미륵불의 비결과 서해훼리호 참사의 연관성을 따져보자니 그의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삐삐가 울렸다. 호출을 한 사람은 이순신 같았다.

“스님, 삐삐가 와서 그러는데요. 저 전화기 좀 잠시 쓸 수 있을까요?”

송헌 스님의 양해를 구한 김만수는 수화기를 들고 파장금 동굴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 순신이 형님, 그게 정말입니까, 최 선장님과 영범이 아버님의 시신이 정말로 객선 통신실서 발견됐냐구요?…”

김만수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생존해서 도주했다는 최 선장과 임사공 등 서해훼리호 여객선 승무원 4명의 주검이 통신실에서 발견돼 인양됐다는 소식에 그는 꽤 흥분한 상태다.

“개새끼들, 청와대, 경찰, 검찰, 언론 이 개새끼들! 이 짐승 같은 새끼들을 어떻게 처치해야 되는 것이여, 응?… 흐으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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