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은 그냥 좋은 음악이다. 멜로디가 어떻고, 화성이 어떻고, 비트가 어떻고, 연주가 어떻고, 앙상블이 어떻다고, 사운드와 가사가 어떻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후일담일뿐이다. 좋은 음악은 그 자체로 좋은 음악이다. 좋은 음악은 그 안에 이미 모든 것들이 다 담겨 있다. 풍부한 감성과 적절한 멜로디, 적확한 사운드가 부족함 없이 담겨 있다. 그래서 좋은 음악은 들으면 안다. 좋은 음악은 짧은 순간 만에 듣는 이들을 그 음악 속으로 초대하고 흡입한다. 듣는 이들이 음악의 정서 속에서 물결치게 한다. 물론 취향과 안목에 따라 좋은 음악의 기준은 박근혜 대통령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만큼 멀고 멀지만 좋은 음악은 취향과 안목마저 종종 뛰어넘는다.

포크 음악은 특히 그렇다.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하는 음악에서 치장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겨우 보컬의 톤과 멜로디, 가사, 전체적인 분위기 정도 아니겠는가. 그렇게 내세울 것이 없는데도 포크 음악은 다른 장르의 음악보다 더 빠르고 깊게 듣는 이들을 물들인다. 악기를 많이 쓰지 않고 사람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악기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포크음악은 더 자연스럽고 진실한 질감을 선사한다. 포크음악을 들으며 흔히 진심을 떠올리고 진정성을 생각하는 이유이다. 사실 음악의 장르와 진심, 진정성 같은 것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말이다. 참 변하지 않는 신화이다.

   

▲싱어송라이터 권나무의 첫 정규 음반 ‘그림’

 

 

그런데도 포크 싱어송라이터 권나무의 첫 정규 음반 ‘그림’을 들으며 진심이나 진정성 같은 가치를 떠올리지 않기도 어렵다. 포크 음악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포크 음악이기 때문이다. 권나무 스스로 가사와 곡을 쓰고 편곡을 하고 기타와 노래까지 맡은 이 음반에서 권나무는 듣는 이들을 아련하게 만드는 순수한 노래들을 들려준다. 총 9곡이 수록된 음반에서 사용된 악기는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뿐이다. 포크 음악들도 이제는 밴드 편성에 기초해서 음반을 만드는 상황에서 흔하지 않게 단출한 편성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출한 편성으로도 권나무는 자신의 음악을 거뜬히 완성하고 있다.

악기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바로 권나무의 보컬이다. 특별히 프로페셔널하게 노래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정도로 매끈하지 않고 어눌하며 수수한 권나무의 보컬은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털어놓는 듯한 소박함과 진실함으로 신뢰감을 준다. 가사가 잘 들리도록 또렷하게 발음하면서 멋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힘을 싣는 보컬은 뚜벅뚜벅 읊조리듯 노래하면서도 힘을 실어야 할 때는 군더더기 없이 치고 올라가면서 여느 보컬에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을 선사한다. 긴장해서 떨리는 듯한 바이브레이션도 순수한 느낌을 더해주는 장점이다. 전문적으로 보컬 훈련을 받아 기교적으로 원숙한 목소리가 아닌 것이 오히려 매력이다.

가령 이 앨범에서 손꼽히는 곡인 ‘노래가 필요할 때’에서 ‘차분한 것이 내 맘에 / 조금씩 차오를 때 / 하나씩 불안한 빈틈을 메워가다 / 햇빛 좋은데 / 무거워만 있을 때 / 즐겁고 싶다는 생각이 / 날 숨막히게 할 때’로 이어지며 열창을 할 때나 ‘내 탓은 아니야’에서 ‘나도 알고 있지만 / 난 아직도 붙잡고 싶은데 / 뜻 없이 여유 없는 시간 속에서 / 답답함이 밀려 올 때’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 우리는 과거 동물원이나 생각의 여름의 음악으로부터 받았던 감동을 다시 전달받으며 순수하고 진실한 청춘의 초상을 떠올리게 된다. 참 고전적이고 울림 깊은 목소리이며 자신의 음악에 최적화된 목소리이다. 이번 음반에서 권나무가 어쿠스틱 기타와 첼로만으로 편곡을 한 것은 분명 이러한 자신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 목소리의 매력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덕분일 것이다. 정확하고 적절한 판단이다.

   

▲ 싱어송라이터 권나무

 

 

음반 ‘그림’에 수록된 노래들 역시 보컬의 순수함과 진지함을 잘 드러내는 노랫말을 갖고 있다. ‘단 하나 오늘은 무얼 하고 놀지 생각’하던 어린 시절을 아련하게 그려낸 ‘어릴 때’가 그 순수함을 가장 잘 담아낸 음악이라면 ‘돈이 없이 산 사람들 / 싱겁게 먹질 못하구요’라면서 냉정한 현실 인식을 보여준 ‘이건 편협한 사고’는 권나무 음악의 양면적 깊이를 보여주는 곡이다. 그는 ‘아름다운 나의 그녀를 찾아’ ‘새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 밤새 휘파람을 불며 / 나무로 된 궁전을 짓겠’다는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순수함만으로 음반을 채우는 뮤지션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과 그 이유가 무엇인지까지 알고 있다. 그런데 그는 그 불가능과 상실 앞에서 여린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감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차별적이다. 그는 슬픔과 분노, 그리움과 열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차분한 것이 내 맘에 / 조금씩 차오를 때’를 응시할 만큼 성숙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태도가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음악의 차분함을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감정의 파고가 높지는 않다. 가사와 음악으로 어떤 감정이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터트리기보다는 그 감정을 지켜보는 자신의 묵묵함과 막막함을 담담하게 드러내는 태도 때문이다. 덕분에 그의 노래는 소년 같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가볍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그의 노래에서 이미 세상을 알아버린 청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노래를 통해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다양한 자아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자아의 면면을 일관된 편곡으로 들려주면서 사운드의 통일감을 주고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 싱어송라이터 권나무

 

 

사실 이 음반의 매력은 결코 개성적이거나 완성도 높은 사운드가 아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의 노래가 노랫말의 지향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가령 ‘차분한 것이 내 맘에 / 조금씩 차오를 때 / 하나씩 불안한 빈틈을 메워가다 / 햇빛 좋은데 / 무거워만 있을 때 / 즐겁고 싶다는 생각이 / 날 숨막히게 할 때’(‘노래가 필요할 때’), ‘집엔 아무도 없지만 우린 다시 보기로 약속하고 / 내일은 거길 가보자 안녕하고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그 시간들이 / 손 인사 한 번에, 그 편지 한 장에, 떠나는 버스 창가에 / 썼다 지웠던 네 이름들이 어디에 있어도 우린 멀어지지 않을 거라던 / 우리 순수하고 어린 시절에 그 맘이 하나로 보였을 때 / 사실 상관없었어 네가 그 편지를 받지 못했더라도 답장을 하지 않아도’(‘어릴 때’), ‘말이 많던 소년도 / 꿈이 많던 소녀도 / 지나온 것들과 / 다가올 것들 사이에 / 그리움이 끝이 없어서 / 내 머리 위로 높은 벽을 쌓아서 / 그리움들이 넘지 못하게 / 혹시 빠져나오더라도 / 바람 속에 맴돌다 / 밤 하늘로 날아가게’(‘밤 하늘로’), ‘나도 알고 있지만 / 난 아직도 붙잡고 싶은데 / 뜻 없이 여유 없는 시간 속에서 / 답답함이 밀려 올 때’(‘내 탓은 아니야’)라고 노래할 때 유별나지 않지만 간절한 목소리와 멜로디의 어울림은 그 자체로 좋은 음악의 가치와 감동을 잘 보여준다. 이 노래들이 울려 퍼지는 순간 듣는 이의 마음도 똑같이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음악에서 이렇게 이심전심의 마음이 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또 있겠는가. 이렇게 이심전심의 마음을 만드는 음악을 들으며 차분한 감동이 맘에 조금씩 차 오를 때 권나무라는 음악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14년의 끝에서 보편적인 음악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여준, 참 좋은 음악, 참 좋은 음악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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