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수학능력시험, 지난 1994년부터 이 시험이 시행된 지 어느 덧 20년째입니다. 대학 입학에 이 시험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매년 11월 수능날만 되면 듣기평가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되고, 관공서나 일부 기업의 경우 출근 시간도 수험과 겹치지 않게 연결됩니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이 시험에 굉장한 무게감을 두는 것이죠.

올해 수능을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쉬워서 변별력을 키우지 못해 ‘물수능’이란 비판도 받았고, 어떤 시험장에서는 듣기평가 도중 감독관의 핸드폰이 울려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복수정답’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4일, 문제 오류 논란이 있었던 생명과학Ⅱ 8번 문항과 영어 25번 문항에 대해 복수정답을 인정했습니다. 생명과학Ⅱ 8번 문항은 정답 4번 외에 2번도 정답, 영어는 4번 외에 5번도 정답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천명의 수험생들이 등급이 오르거나 내려가게 돼, 이에 대한 후속 파문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에는 세계지리 8번 문제가 긴 소송 끝에 복수정답으로 인정되기도 했습니다. 문제의 오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인데,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두 문항이나 오류가 발견된 것이지요. 작년처럼 버티다 소송을 통해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인 걸까요?

하지만 이미 수천명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능의 변별력이 적어 문제 하나 맞추고 틀리는 것에 수험생들의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김성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이 소식이 수험생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을 것 같습니다.

SNS에서는 교육당국의 무능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정말 싫다. 이제 와서 복수 정답을 인정한다면…. 이미 대학교 수시가 끝났는데”, “수능 복수정답 좀 그만 나와라 지겹다 이제” 등과 같은 반응들이 많습니다. “10년 넘는 세월을 수능 하나만 보고 달려온 아이들이 수십·수백만명인데, 걔들 인생을 가를 수 있는 시험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랄 판에 복수정답사태 계속 나는 것 보니 우리나라도 답이 없긴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평가원 출제자 나와, 수능을 몇 년째 보는 건데 이런 오류가 나옴, 문제 출제할 때 검토안하고 출제하나 복수정답 인정되면 진짜 수시 최저 못 맞춘 애들 인생 니들이 책임질래?”라는 토로도 있습니다.

   
▲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상암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CBS 노컷뉴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아닙니다. 1년에 한 번의 시험으로 대입이 결정되는 수능의 특성상 언제든 이런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6번을 검토했는데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올해 수능. 평가원장의 자진사퇴만으로 책임을 벗기는 어렵습니다. 문제의 70%를 EBS교재와 연계하는 것도 그렇고 난이도 조절 실패도 그렇고, 신뢰를 잃은 수능을 대체할 평가모델이 필요한 시점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의당 김종민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단순히 ‘개선’에서 끝낼 일이 아니다. 대학입시제도를 근본부터 혁신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일은 또 반복되고 말 것”이라며 “수능 출제 오류를 통해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 대한 구제는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 학생들에 대해서도 교육당국이 책임 있는 태도로 응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대학’이라는 의미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지요. 어떤 대학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운명이 정해지는, 현재의 대학서열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수능에 대한 지나친 과열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에도 몇몇 수험생들이 수능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이 있었지요.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번 복수정답 논란에 대해 “시험문제를 애들이 공부했나 평가하는게 아니라, 얼마나 문제를 잘 푸냐를 평가하는 용도로 복잡한 함정을 넣으니 생긴 일로 보인다. 교육과 평가에 대한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씨는 어제 트위터에 “어제는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를 했고, 학교에서도 ‘기대’했는데 재수가 없어서 이번 수능을 망쳤고, 재수할 돈은 집에는 없어 내내 울기만 하는 조카를 둔 다른 삼촌을 만나 새벽까지 한숨을 쉬며 술을 마셨다”고 썼습니다. 한 번의 시험에, 우리 청춘들이 이렇게 ‘좌절’을 느끼는 구조가 맞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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