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 미명 아래 나온 낙선을 위한 허위사실 유포는 제한돼야 한다. …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라 해도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공정한 언론인의 모습이었는지 판단해 달라.”

‘박근혜 5촌 살인 사건’ 의혹을 보도한 주진우 시사IN기자에게 11월 17일 검찰이 징역 3년을 요구하며 한 말이다.

시사IN은 2012년 12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의 5촌인 박용철‧박용수 사망사건 의혹을 보도하며 재수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 박지만씨가 기사작성자인 주진우 기자를 형사 고소했다.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등. 검찰은 이 사건과 별개 사건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주 기자의 사자명예훼손을 강조하며 시사IN 보도에 악의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1심은 무죄였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로 2015년 1월 16일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정치적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에 전망은 다소 비관적이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시사IN 보도의 의혹제기가 과연 허위사실이냐는 점이다. 보도에 사실이라 믿을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다면 보도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뤄졌다는 맥락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사라진다. 

결국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중요하다. 1심과 2심 공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측이 사건의 의문점을 두고 공방을 벌이는데 집중한 사실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남긴 의문점을 검토해보면 시사IN 보도내용의 허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보도내용의 허위여부는 검찰에서 문제 삼지 않은 다른 언론사 보도 등을 참고하면 된다. 문제가 된 시사IN의 보도 취지는 “박용철‧박용수가 2011년 9월 6일 사망했는데 경찰 수사결과가 허점투성이라 재수사가 필요하다”이다.

   

▲ 박근혜 대통령 가계도. ⓒ시사IN

 

 

사건의 중심, 박용철은 누구인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보자. 살해당한 박용철은 박지만 EG회장의 측근이자 육영재단 송사의 핵심인물이었다. 동아일보는 2011년 9월 7일자에서 박용철을 두고 “작년(2010년) 9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 씨의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가 ‘나를 중국으로 납치했고 내가 중국에서 마약을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고 지목해 고소했던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2012년 7월 18일자에 따르면 2010년 7월 경 박용철은 육영재단 법무실 간부 이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이야기한 정용희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정용희를 통해 박지만이 살인 청부 비용을 보내준 통장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5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으나 7개월 뒤 박지만 회장 비서실장인 정용희에게 자리를 내주며 권력에서 밀려난 뒤의 행동이었다. 

신동욱씨는 박용철의 주장을 바탕으로 박지만 회장을 살인 교사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신 신씨는 박지만 측으로부터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다. 2011년 8월 23일 신동욱씨 변호인은 구두로 박용철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다음날인 8월 24일, 신동욱씨가 구속됐다. 그리고 9월 6일, 박용철이 살해된 채 발견됐다.  

그는 9월 1일 법정에서 보디가드 4~5명을 데리고 왔다. 신변의 위협을 감지하고 있었다. 2007년 육영재단 강탈사건과 관련해 처음엔 박지만 회장의 지시가 없었다고 했으나 나중에 있었다고 번복하는 등 진술도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2011년 9월 7일자에서 박용철의 죽음을 두고 “신동욱씨로서는 자신의 무죄를 밝혀줄 증인이 사라진 셈이다”라고 보도했다.  

시사저널 2011년 10월 16일자에서 신동욱씨 변호인 조성래 변호사는 “신씨에게 용철씨는 살인 교사 건과 관련해 무고 혐의를 벗겨줄 유일한 증인이었다”며 “9월 말 열린 재판에서 신씨와 용철씨가 주고받은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녹취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서 용철씨를 증인으로 요청해 증인 신문을 준비 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증인이 사망해 매우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의 연설모습. ⓒ 연합뉴스

 

 

박용철 사망사건, 경찰 수사는 얼마나 부실했나 

박용철 사망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인 9월 5일 밤, 박용철은 4촌 관계인 박용수와 자신의 후배 황아무개씨와 셋이서 ‘스텝바’란 강남 압구정동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황씨는 경찰조사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좋은 줄로만 알았고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주진우 측 변호인단은 17일 결심공판에서 황씨의 증인출석을 요구했다. 사건 당일 정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황씨는 2012년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구청은 1차 술자리 장소로 지목된 ‘스텝바’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용철은 6일 오전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수유분소 앞 주차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배가 칼날에 수십 차례 난자되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다. 현장에서 3km 떨어진 야산에선 박용수가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경찰은 두 사람이 금전문제 등으로 다툼이 있었고,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여러 보도에서 경찰 수사과정에서의 허점이 드러났다. 뉴데일리 2011년 9월 7일자는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5일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대리기사를 불러 일산으로 향하던 중 새벽 1시~2시께 북한산 용암문 등산로에 내려 심하게 다툰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툰 것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등산로에 있던 사람은 박용수와 박용철 둘뿐으로 알려졌는데, 목격자가 있었던 걸까. 이 내용을 뉴데일리에 전해준 경찰은 누구로부터 이들이 심하게 다퉜다는 것을 확인한 걸까. 

허점은 또 있다. 같은 날 뉴데일리는 “용수씨는 살해 직후 곧바로 현장을 떠났으나 대리기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쫓겨 달아나다 강북구 우이동 도선사 인근 용암문 탐방센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주진우 기자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용민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경찰이 대리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리기사는 대리운전을 하던 중 뒷좌석에 있던 마른 남성의 요구로 중간에 내렸다고 진술했다. 살해현장에는 없었다. 경찰은 왜 대리운전기사가 신고를 해 박용수가 도망치다 죽었다는 허위내용을 언론에 흘렸을까. 

2011년 9월 7일자에서 박용철 사망사건을 단독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에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강북경찰서에 따르면 근처 주민이 박용철 시체를 발견했다. 강북경찰서 관계자는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기록에는 CCTV 분석기록이 없었다. 강북경찰서가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님 기록이 있는데 빠진 것일까. 

   

▲ 주진우 시사IN기자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사IN의 의혹제기는 타당했나 

강북경찰서는 자살한 용의자 박용수의 상하의에 묻은 혈흔이 피살된 박용철의 유전자와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통보를 받고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6일 살해사건이 일어난 지 5일 만에 수사가 끝났다.

경찰은 박 씨가 △범행 도구를 미리 사놓은 점 △유서를 미리 작성한 점 △범행 당일 박용철씨를 만취시키고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점(부검 결과 박용철은 혈중 알코올농도 0.19%, 박용수씨는 0.05%) △박용수가 평소 박용철을 혼내주겠다고 말했던 점 등을 근거로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결론 냈다. 

그러나 경찰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신동욱씨 증인이었던 육영재단 전 간부인 서아무개씨는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용철씨의 죽음으로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누리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의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박근령씨 역시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사촌지간에 칼부림이 날 정도의 이유가 없다. 좀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사IN의 보도는 이처럼 수사결과의 의문점이 풀리지 않았던 상황에서 등장했다. 시사IN은 죽은 박용수의 유서, 박용철·박용수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감정서, 경찰수사기록을 2012년 10월 단독 입수했다. 경찰 주장이나 관련자 진술에 의존해온 지금까지의 보도내용과 달리 과학적이고 신빙성 있는 자료였다. 시사IN은 이 자료를 토대로 박용수의 자살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과수 부검기록에 따르면 박용수는 사망 30여분 전 설사약을 먹었다. 왜 곧 죽을 사람이 설사약을 먹었을까. 설사약을 먹으면 자살한 사람처럼 용변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국과수 필적감정서는 유서에 나온 필적이 박용수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박용수 가방에 있던 회칼에는 박씨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박용철 혈흔이 나온 다른 칼은 범행 장소에서 60m 떨어진 개천에서 발견됐는데 박용수 지문은 없었다. 두 사람 시체에서 졸피뎀과 디아제팜 성분이 발견됐는데, 필로폰 중독자들이 잠을 자기 위해 복용하는 약이었다. 

무엇보다 박용수의 살해동기가 부족했다. 동아일보는 2011년 9월 8일자 기사에서 “박용철 씨와 살인용의자 박용수 씨 사이에는 약 1억 원의 채무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은 용수 씨가 용철 씨에게 빌린 것으로 용수 씨는 상당 기간 돈을 갚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채무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는 없었다. 김용민 변호사는 “경찰이 계좌전체를 조회했으나 두 사람 사이의 채무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를 비롯해 문화일보에서도 1억이라는 구체적 액수가 나왔다. 누가 어떤 근거로 이 액수를 주장했는지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2011년 9월 9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양측 유족 모두 “살해 동기가 1억 원이라는 건 전혀 증거가 없고, 그런 돈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같은 해 10월 12일자에서 “박용수는 사업에 실패해 사정이 좋지 않았고 사촌동생인 박용철이 자신을 업신여기고 무시한다는 말을 주변사람에게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이유만으로 잔인한 살해를 저질렀다고 납득하기는 어렵다. 

박용수의 시반(시체가 굳는 과정에서 피가 굳은 모습)도 논쟁거리다. 박용수의 시반은 등과 엉덩이에 형성되어 있었다. 보통 목을 매어 자살하면 시반이 하부에 집중된다. 사망 직후 누워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더욱이 박용수 사망사진을 보면 눈과 코에 파리알이 있었다. 파리알은 사망한지 꽤 지나야 생긴다. 무엇보다 자살하러가는 사람이 살해현장에서 3km 떨어진 곳을 가기 위해 험한 산길을 올랐다. 산길을 가며 설사약을 먹었다. 유서에는 화장해달라는 내용밖에 없었다. 

   

▲ 박지만 EG회장(왼쪽)과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노컷뉴스

 

 

박용철 살아있었다면, 누가 제일 불리했을까 

변호인측은 결심공판에서 “박용철은 증언내용을 번복하고 있었다”며 “박용철의 죽음이 증언을 막기 위한 어떤 것이 아닐까라는 것은 기자로서의 합리적 의심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합리적 의심은 주 기자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접한 기자들 대부분이 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경찰은 당시 박용수 통화내역 수사가 필수였지만 임의 삭제가 가능한 휴대폰 통화내역을 촬영한 것이 고작이었다. 실제로 새벽 1시경 통화내역이 최소 3개 이상 삭제되어 비어 있었다는 게 변호인측 주장이다. 살해현장에선 박용철의 핸드폰도 사라졌다. 지갑은 그대로였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박지만에게 불리한 녹음파일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변호인측은 “주진우 기자는 악의성을 가진 게 아니라 심층취재의 결과를 기사화한 것이다. 보도시점은 2012년 10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찰수사기록을 입수했기 때문에 선거 직전 보도 된 것”이라 밝혔다. 시사IN 보도는 국과수 기록 등 신빙성 있는 자료를 통해 박용철·박용수 사망사건의 의문점을 재조명하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진실 추구는 기자의 당연한 의무다. 

박용철 피살 당시 모든 언론이 박용철 사망 기사를 내보냈다. 시사IN 보도는 이미 언론에 공개된 박용철‧박용수 사건의 수사과정이 부실했다며 근거를 가지고 보도한 것이다. 그런데 왜 시사IN 보도만 문제가 되는걸까. 검찰은 “피고인 보도는 수사가 마무리되고 나온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박용철 사망사건을 최초 보도한 동아일보 보도는 “경찰의 판단이 나오기 전에 보도된 것이어서 피고인 보도와 판단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게 검찰 주장이었다. 수사결과가 나온 뒤에는 의문을 제기하면 안 된다는 전형적인 공안논리다.

만약 박용철이 살아있었다면, 누가 제일 불리했을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핵심적인 질문이다. 박용철의 사망으로 누가 제일 유리해졌는지도 따져보자. 검찰은 “피고 주진우는 허위사실을 공표해 대선 당시 특정후보의 가족을 반인륜적으로 묘사해 선거에서 불리하게 하려 했다”며 선거법 위반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 말대로 주진우 기자의 의혹제기는 과연 언론의 자유란 미명 아래 나온 낙선을 위한 허위사실 유포일까. 판단은 시민의 몫이다. 시민들은,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주 기자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2012년 8월 20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는 후보 수락연설문에서 “친인척과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는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해 사전에 강력하게 예방하고, 문제가 생기면 상설특검을 통해 즉각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이 연설을 기억하고 있다면, 검찰의 수사방향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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