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KBS1TV <심야토론>은 ‘유엔 인권결의안 이후 대북정책 어떻게’라는 주제로 100분 간 진행됐다. 진행자 왕상한씨가 소개한 첫 번째 패널은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조명철 의원은 김일성종합대학교수를 지내다 1994년 탈북했다. 공영방송에서 대북정책관련 토론에 편향된 의견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탈북자 정치인을 출연시키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패널보다 적절치 않았던 인물은 진행자였다. 왕상한 진행자는 UN의 북한인권결의안을 두고 북한 측이 “남한이 선동질 했다”고 주장한 것을 언급하며 토론의 첫 질문으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라고 물었다. 그리고 조명철 의원에게 첫 번째 마이크를 넘겼다. 진행자의 다음 질문은 “유엔이 이번에 강도 높은 결의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였다. 역시 첫 번째 답변은 조명철 의원이었다.

조명철 의원은 이날 새누리당 북한인권법안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왕상한 진행자는 조 의원이 혼자서 5분 가까이 관련 주장을 펼쳐도 두 손 모으고 쳐다만 봤다.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은 북한인권보다 대북전단 살포와 기획탈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진행자가 북한인권법의 다양한 논점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다만 “북한인권법안이 완결성 있다”는 주장만 듣고 있었다.

   
▲ KBS '심야토론' 진행자 왕상한씨.
 

왕상한 진행자는 이날 “우리나라에서 제기되는 북한인권법까지도 (북한은) 심각한 도발로 보고 있다”며 “북한 인권법을 어떻게 가져갈지도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22일자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을 만나 북한인권법의 신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결국 이날 <심야토론>은 대통령의 의지에 맞게 법안을 홍보해 준 꼴이 됐다. 

왕상한 진행자는 이날 야당측 인사를 향해 “북한인권법 자체를 반대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듣다보면 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뉘앙스로 읽히는 대목도 있었다. 그의 이 같은 진행 스타일 때문일까. ‘MLBPARK’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왕상한씨 토론 진행 정말 못 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이 글의 첫 번째 댓글은 이렇다. “예. 그러니 KBS에 붙어있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공추위)는 최근 노보를 통해 <심야토론> 정상화를 위해서 진행자 교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왕상한씨는 2010년 5월부터 지금까지 4년 6개월 간 <심야토론> 진행을 맡고 있는 ‘장수MC’다. 공추위는 “왕상한씨가 어떻게 <심야토론> MC가 됐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김인규 사장 때 급조된 MC선정위원회에서 밀실로 결정됐기 때문”이라 밝혔다.

KBS본부 공추위는 “‘종북세력 국회입성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은 황당한 내용이 <심야토론>에서 다뤄지는 등 <심야토론>은 김인규‧길환영을 거치며 권력의 입맛에 맞게 난도질 돼왔다”고 비판한 뒤 “최근도 국정원 대선개입 무죄, 4대강 자원외교 등 다뤄볼 만한 대형 이슈들이 다뤄지고 있지 않다”며 “아이템‧패널 선정과 함께 MC문제도 반드시 정상화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KBS 심의실에 따르면 왕상한 씨는 ‘한미 FTA추가협상, 한국경제의 미래는?’ 주제의 <심야토론>에서 패널 발언을 차단하고 정부 측에 발언권을 주는 등 자연스런 토론의 흐름을 방해했다. ‘위험수위, 인터넷 문화의 현주소’란 주제 토론에선 청소년층을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한 발언이 이어져 진행자의 형평성 있는 진행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KBS심의실은 ‘북한 쌀 지원, 대화재개 신호탄인가?’ 주제 토론회에선 왕씨가 일정한 방향으로 토론을 끌고 가려 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야토론>의 최근 시청률은 지난 8일 1.8%, 11월 1일 2.1%, 지난달 25일 1.5%(닐슨코리아, 전국가구기준)였다. 공영방송의 간판토론프로그램 진행자가 시종일관 사회적 논점도 제대로 못 짚고 편파적인 결과 시청자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것 아니냐는 '요인' 분석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왕상한씨는 MBC라디오 <왕상한의 세계는 우리는> 진행자도 맡고 있다. MBC의 한 라디오PD는 “왕상한씨가 정치적으로 편향됐을 뿐만 아니라 진행에도 문제가 많다는 얘기가 사내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KBS사내외에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의 그의 자질이 의심받고 있다. KBS경영진이 세월호 참사보도 이후 신뢰도 회복 의지가 있다면 <심야토론> 진행자 교체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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