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민과 안전과 행복을 위해 경찰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낄낄 웃을 법하다. 세상 참 모른다는 비웃음이 쏟아지겠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언제부터인가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경찰이나 검사, 공무원은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고리타분하거나 위선자 같은 존재로 취급당한다. 주인공은 그런 인식을 처음 가졌어도 빨리 버리는 것이 성장하는 길이다. 이렇게 취급하는 이들은 세상을 다 아는 듯이 구는데, 그들의 머릿속에는 시민의 안전과 행복은 허위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오히려 그런 것을 강조하는 캐릭터들 가운데에 부패한 경찰과 공무원, 권력을 사유화하는 검사가 많고, 교사들은 자신의 기호와 취향을 우선한다. 

복수를 위해 공권력을 이용하다 못해 공적 신분과 공권력을 사적 복수에 이용하기 위해  그 분야에 도전한다. SBS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서 은대구(이승기)는 어머니의 죽음에 직접 연관된 서판석(차승원)에 대한 복수를 위해 경찰이 된다. 서판석이 정말 어머니의 죽음에 연관 되었는지는 은대구 자신의 판단에 따른다. 그 판단에 따라 죽여야 할 대상이 경찰 형사반 팀장이었다. 그렇게 사적 복수는 단지 공적 지위를 이용하는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 지위를 얻기 위한 강력한 모티브가 된다. 11년 동안 염원해온 주인공이 공적인 틀에서 몰두하는 것은 시민의 안전과 행복이 아니라 개인의 복수인 것이고, 수용자는 이에 더 집중한다.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1회 방송분에서 수습 검사로 첫 출근한 수습검사 한열무(백진희)와 수석 검사 구동치(최진혁)가 만나 검찰청 내부로 들어가면서 구동치는 한열무에게 “너 나 때문에 검사됐지?”라고 말하며 어이없다는 듯이 “복수 따위 때문에 청춘을 다 받쳐서 이 끔찍한 곳을 와?” 라고 말한다. 이렇게 여자주인공은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검사가 된 것이다. 한열무는 “어떤 사람한테는 공부가 제일 쉽거든. 그게 나야. 불타는 적개심도 갖췄는데. 청춘? 백번도 바치지”라고 했다. 사실 옛 애인에 대한 사랑의 복수가 아니라 한열무는 동생을 구동치가 죽였다고 믿으며 그에게 복수를 하려한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한 것은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법 기관의 제도와 가용자원을 사적 복수에 이용하려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없다. 

   
sbs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얼마나 고리타분한 생각인가. 고리타분한 생각은 또 있다.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에서 오구탁(김상중)과 남구현(강신일)은 범죄자에게 아들과 딸을 잃는다. 남구현은 아들이 범죄자에게 목숨을 잃자 오구탁에게 복직을 제안하며 범죄자를 통해 범죄자를 잡을 계획을 전달한다. 개인의 원한을 푸는데 공권력의 제도적 파워를 이용하는 셈이다. 남구현은 경찰청장의 신분이었으며 남구현은 사적 복수를 위해서 경찰청장의 직권을 남용한 셈이었다. 이런 설정들은 공권력을 사용해야 하는 이들도 결국 인간이며, 가족 구성원임을 강조하며 일반인들의 욕망을 건드린다. 평소에는 가까이 가기도 힘든 병력과 자원, 체계를 활용하여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내는 과정이 시청자들에게는 묘한 대리 만족감을 만들어준다. 

언론플레이를 통한 이중성도 단골로 등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드라마 <신의 선물>에서 김수현(이보영)은 자신의 딸이 대통령 김남준(강신일)이 사형제 부활을 위해 만든 납치한 정치적 쇼라고 결론 내린다. 자신의 정책욕망을 위해 한 시민의 딸을 납치한 셈이 된다. 겉으로 사형제의 당위성을 이야기했지만, 실제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행태는 빈번하게 등장하고, 이런 권력적 제도적 개인들은 자신의 사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제도적 틀에서 움직인다. 예컨대, 민주와 인권을 외치는 이들은 가짜이다. 제도적 권력을 차지하거나 과시하기 위해서 그들은 민주와 인권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예 자신의 이익을 드러내는 이들이 솔직하고 인간적이며 바람직하다고 항변하는 듯싶다.

다시금 이런 드라마들의 결과를 요약하면 △나라와 국가 그리고 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이 조롱받기 일쑤이다. 나라와 국가는 각 개인으로 치환된다. △개인들의 권리가 중요함은 분명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공적 제도를 활용하는 심리가 쉽게 용인된다. 거꾸로 각 개인,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행정서비스가 사적복수를 추구하는 개인 즉 주인공들 때문에 침해당한다는 사실은 간과한다. 무엇보다 본래 공적 직무 종사자들의 충실한 행위가 소멸되는 건 냉소주의와 무기력증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문화콘텐츠의 역할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적인 방향을 탐구하는 것 말이다. 현실의 반영도 그렇다. 사적인 감정이나 이익 추구행위가 없는 공적 복무자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그러내야 멋져 보이며 현실을 잘 다뤄내는 것일까. 

   
OCN드라마 <나쁜녀설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인권과 민주를 위해 투신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공권력을 사적으로 활용하려 하지 않으며, 시민의 안전과 항복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활동한다. 고리타분하고 답답해 보이지만 이런 이들 때문에 정책과 행정서비스가 그나마 유지된다.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면서 엄연히 존립하는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주인공들의 사적 이익추구행위를 금지할 강제 규정은 없다. 다만 식상할 뿐이고, 그 세계관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을 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