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으로 오늘 공청회는 마치겠습니다.”

20일 오후 2시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서울시민 인권헌장(안) 공청회가 동성애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30분만에 무산됐다.

이날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강당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다음 달 10일 반포될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이 삽입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왔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공청회에 참석한 목적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무산시키고 박원순 서울시장 퇴진을 외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이날 공청회 시작 전부터 사회를 맡은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본인을 서울시민이라 밝힌 유아무개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늘 사회자로 지정된 박 소장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한 전력이 있고 반국가행위를 계속해 왔다”며 “그는 시민들이 원하는 인권헌장을 만들 자격이 없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온 시민들이 사회자 교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를 개최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문경란 위원장)는 동성애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들과 30여 분간 언쟁과 물리적 충돌을 거듭하다가 결국 공청회 종료를 선언했다. 

동성애 반대단체 회원들을 진정시키려는 주최 측의 노력에도 일부 시민들은 고성과 욕설까지 하면서 공청회 진행을 방해했다. 한 시민은 박래군 소장이 발언하고 있던 마이크를 빼앗았고 일부 다른 시민들도 연단으로 몰려들어 주최 측과 몸싸움을 벌였다.

동성애반대운동연대와 청소년건강을위한시민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도 시청 서소문별관 앞 집회에서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은) 동성애의 길을 활짝 열어준 사건이 되고 말 것”이라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그런 악한 길로 접어들게 길을 닦아주고 있는 박원순 시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청회 토론자로 나오기로 했던 김형태 전 서울시의회 인권특별위원회 위원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4년 전 학생인권조례 제정할 때도 밖에서 반대단체들이 항의 집회와 기자회견을 했지만 장내에까지 난입해 토론회 자체를 못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인권헌장은 법을 만드는 것도 조례를 제정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식의 물리력을 동원해 방해하는 것은 민주적이지도, 성숙한 시민의 태도도 아니어서 답답하다”고 밝혔다.

   
20일 오후 2시에 열리기로 예정됐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 사진=강성원 기자
 

한편 이날 시청 서소문별관 앞에 경찰력이 배치됐지만 공청회장까지 들어와 주최 측의 토론회 진행을 방해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을 저지하지는 않았다. 공청회 종료가 선언된 후 후생동 건물 계단에서 만난 남대문경찰서 소속 경찰 관계자는 “물리적 충돌이 있나 확인하러 정보관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인권헌장 반포에 앞서 서울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한 공청회 자체가 무산된 것에 대해 정정길 서울시 인권정책팀장은 “공청회는 열리지 못했지만 인권헌장 제정은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라며 “(동성애 차별금지 조항 포함 여부는) 오는 28일 시민위원회 최종회의 때 논의해 봐야 하겠지만, 어떻게 결정이 날 것인지는 예측불허”라고 밝혔다.

서울시 인권헌장은 시민들이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과 서울시의 책무를 구체화하는 헌장으로, 시민참여 방식으로 작성해 다음달 10일 반포할 예정이다. 헌장 초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이 들어가 보수기독교 단체를 비롯한 동성애 반대 단체들이 지난 17일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여는 등 반발해 왔다.(관련기사 : 서울시 인권헌장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조항’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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