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86만 교직원 중 학교비정규직은 약 37만 명(43%)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들을 같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선생님’과 다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절반에 가까운 게 학교 현장의 현실이다. 정규직 교사에서부터 무기계약 회계직원, 초단시간 강사까지 학교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현대판 신분제의 실상을 미디어오늘이 들여다봤다.<편집자주>

[연속기획] - 학교 안 카스트, 우리 아이의 미래다
① 학교도서관 사서 “휴가 못가도 내년에 일할 수만 있다면”
② 연말이 두려운 학교 강사 “실업급여 받는 것도 어디에요”

지난 2007년 광주의 한 학교 급식실에서 학교급식 종사자가 조리 중 이동하다가 미끄러져 급식실 중앙 기둥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2009년 대구에서도 학교급식 종사자가 조리실에서 식재료를 옮기던 중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뇌출혈로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학교급식 종사자(조리사·조리원 등)들은 노동강도가 높을 뿐 아니라 낮은 급여 등 열악한 노동 조건에 처해있다. 이들은 몸이 아파도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연차나 병가를 쓰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호소한다.

서울의 A고등학교에서 만난 조리사 김현숙(가명)씨도 1명의 영양사, 5명의 조리원과 함께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점심과 저녁을 책임지고 있었다. 영양사를 제외하고 조리 인력 1명당 17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식사를 도맡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급식실에서 일하다 다쳐도 10명중 9명 자비로 치료

“원래 여사님(조리원) 7명에 나까지 8명이었는데 학생 수가 줄어드니까 인원수에 따라 조리원 수도 줄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얘기하는 게 한 명당 학생 150명이 기준이라는데, 고등학생은 초·중등학생들과는 달리 신체가 거의 성인이어서 준비할 양이 더 많아 힘들어요.”

김씨의 근무시간은 길게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에 이른다. 고등학교는 중식에 석식까지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영양사, 조리원들과 돌아가면서 석식을 담당하더라도 일주일에 3번은 12시간 근무를 한다. 조리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 뒤 교대로 추가 3시간씩 석식을 담당하는 식이다.

이처럼 업무시간이 길고 인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대체인원이 없으면 아파도 쉴 수가 없다. 한 사람이라도 쉬게 되면 남아있는 사람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9월 1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급식노동자들이 식중독 예방을 위해 급식 시설을 청소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에 언급된 학교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김씨는 “여사님들도 매일 식판을 닦으시니까 아프다고는 하는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게 되면 있는 사람들이 두 배로 힘들다. 1년 14일은 쉴 수 있다고 하지만 쉴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지난해 두 분이 병가를 썼는데 한 분은 이동하다가 다리를 삐걱했고, 또 한 분은 식판을 나르다가 손이 찢어져 14바늘을 꿰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급식 종사자들은 작업 여건상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일하다가 다쳐도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비율을 매우 낮다. 근골격계 질환은 산재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절차의 어려움이나 산재 신청과 관련한 학교 측의 불이익 등에 대한 우려로 학교와 노동자 모두 산재 신청을 꺼리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강원교육청이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학교급식종사자 근로여건 개선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나 재해를 경험한 학교급식 종사자 중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우는 59.1%로 나타났다. 치료비 마련 방법은 90.4%가 개인부담이었고 산재처리 비율은 5.4%에 불과했다.

임금체불도 방치…교육부 “학교에서 지급해야” 학교 “지급 예정” 

제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급식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인수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 제주지부장은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물에 젖은 타일 위에서 일하다 보니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손목을 잘못 짚기라도 하면 손목이 돌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한 사람당 배치인원이 많고 다들 자기 일이 있어 무거운 것도 혼자서 들다 보면 순간적으로 큰 힘을 쓰다가 허리나 어깨가 다칠 수밖에 없다. 처음에 모르다가도 누적되는 통증에 동료 중에는 퇴근 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거나 물리치료를 받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학교급식 조리사와 조리원(급식보조원)들이 겪는 고충은 육체적 노동 강도만은 아니다. 국가공휴일을 유급휴일로 하겠다고 해놓고선 임금도 지급하지 않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조리원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각종 수당에서 차별을 받는 급식보조원들도 많다. 

국립 제주사대부고에서 일하는 급식보조원들은 취업규칙에 나온 대로 국가공휴일은 당연히 유급휴일인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학교에서 유급휴일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어 수년째 임금이 체불된 상태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지방교육자치과 관계자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상 유급휴일이 명시돼 있다면 당연히 유급수당을 줘야 하는 게 맞고 해당 학교에도 그렇게 안내했다”며 “교육부가 학교운영비 명목으로 준 예산을 학교에서 자체 편성해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제주사대부고 행정실 관계자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급식보조원들이 지금까지 못 받은 임금은 소급해서 올해 안으로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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