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들이 개인정보가 포함된 식별번호를 의무적으로 발급받고 변경 조차 안 되는 나라는 선진국 가운데서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19일 공개한 해외 국민식별번호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와 미국, 호주, 독일, 헝가리,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식별번호에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사회 영역별로 식별번호를 이용하는 나라들도 많았다.

진보넷에 따르면 나라별로 국가식별번호와 함께 다양한 목적별 식별번호 활용 실태를 조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하나 이상의 식별번호를 운영하고 있지만 목적과 대상, 관리 체계와 상호 관계, 이용 범위 등이 다르기 때문에 국민식별번호(National Identification Number)를 단일하게 규정하기는 힘들다.

우선 호주와 필리핀, 일본 등은 보편적인 국민식별번호가 아예 없다. 1980년대에 국민식별번호를 도입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국민적 반발로 인해 무산됐고, 대신 의료보장 카드(medicare card)가 도입됐다. 통상적인 신원 확인은 운전면허증을 이용한다. 다양한 식별번호를 연계하기 위한 통일적 다목적번호(UMID)의 사용을 확대하고 있고, 일본은 2016년부터 공통번호제도(My Number)를 도입할 계획이다.

   
 
 

독일의 경우 16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ID 카드를 신청해야 하지만 목적에 따라 납세자번호와 건강보험카드번호, 사회보험신분카드번호 등이 활용되고 있다.

캐나다의 사회보험번호나 미국의 사회보장번호, 영국의 국가보험번호 등은 특정 목적의 번호를 국가식별번호처럼 사용하는 경우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사회보험번호의 수집, 이용 범위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미국의 사회보장번호는 그 사용범위가 넓은 편이다. 반면 영국은 미국에 비해 국가보험번호가 사용되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한국처럼 국민식별번호를 부여하고 범용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체코, 루마니아, 수단, 우간다,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이다.

한국을 비롯해 헝가리와 체코, 루마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단, 콜롬비아 등은 모든 국민들에게 출생과 함께 부여되고 말레이시아, 독일 등은 특정 연령이 되면 의무적으로 신청하도록 돼 있다. 캐나다와 캄보디아, 미국, 아르헨티나 등은 국민식별번호를 신청을 해서 부여 받는 방식이지만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발급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의무적인 국민식별번호로 사용이 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헝가리, 영국, 체코, 말레이시아, 루마니아, 우간다,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국민식별번호의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식별번호는 아니지만 독일도 납세자번호나 건강보험카드번호, 사회보험신분카드번호 등과 같은 목적별 번호도 변경할 수 없다. 캐나다와 미국의 경우, 신원도용을 당했을 때와 같이 특별한 경우에는 변경을 허용한다. 카메룬, 캄보디아, 독일 등은 카드를 분실했거나 재발급을 받을 경우 번호가 변경된다.

한편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을 발급할 때 신원 확인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민식별번호를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발급기관이 반드시 저장하는 건 아니다. 신원 확인과 국민식별번호의 수집, 이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호주, 독일 등은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발급기관이 국민식별번호를 수집하지 않는다.

캐나다의 경우, 여권을 발급받을 때 출생증명서나 이민증명서를 통해 신원 확인을 하지만, 국민식별번호로 이용되는 사회보험번호(SIN)를 수집하지는 않는다. 프라이버시법에서 수집을 금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호주는 국민식별번호가 없다. 여권발급 시에는 출생증명서, 거주증명(서비스 고지서 등을 활용),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 등을 통해 신원 확인을 한다.

독일의 경우에는 여권을 발급할 때 통상 구 여권이나 ID 카드를 통해 신원 확인을 하며, 여권 번호는 여권 발급기관에 저장되지만 ID 카드 번호는 저장되지 않는다.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때도, 통상 ID 카드나 여권으로 신원 확인을 하지만, ID 카드번호는 저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 헝가리, 미국, 말레이시아, 루마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단,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은 발급기관에서 국민식별번호를 수집하고 한국과 콜롬비아는 여권에 국민식별번호가 포함된다.

캄보디아와 헝가리, 호주, 독일, 필리핀 등에서는 국민식별번호와 분리된 납세자 번호를 부여한다. 한국과 같이 국민식별번호를 납세자번호로 사용하거나 납세자번호 자체가 국민식별번호의 역할을 하는 나라들로는 미국, 영국, 체코, 말레이시아, 루마니아 등이 있다. 한국을 비롯해 체코, 말레이시아, 남아공, 콜롬비아 등은 국민식별번호를 복지서비스에 사용한다.

체코, 말레이시아, 루마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 등은 국민식별번호를 건강보험번호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한국 같은 경우는 건강보험증번호가 있지만 이는 전 국민에게 부여되는 것은 아니며, 병원, 약국, 건강보험기관 등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 헝가리, 호주, 독일, 필리핀 등은 별개의 건강보험번호를 두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이 계좌를 개설할 때 신원 확인을 하지만 금융기관이 국민식별번호를 기록하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이동통신 서비스의 경우에도 한국을 비롯해 카메룬, 캄보디아, 캐나다, 헝가리, 일본,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단, 우간다,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 많은 나라에서 선후불제 관계없이 신원 확인을 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말레이시아, 남아공, 수단, 우간다,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에서는 신원 확인과 함께 이동통신사들이 국민식별번호를 수집하고 있다.

캐나다는 신원 확인을 하지만, 사회보장번호(SIN)을 수집하지는 않고 독일 역시 신분증 카드 제시를 요구하기는 하지만, ID 카드 번호를 기록하지는 않는다. 영국도 통신사에서 국가보험번호(NIN)를 수집하지 않는다. 호주도 신원 확인은 하지만, 후불제의 경우 신용카드 정보만 수집한다. 후불제의 경우에는 신원 확인을 하지만, 선불제 서비스의 경우에는 하지 않는 나라들도 많다.

진보네트워크는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는 무작위 일련번호로 개편돼야 하고 필요할 경우 새 번호로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고 있는 조세, 복지 등의 영역에서 목적별 번호를 도입하여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오병일씨는 “선진국에서는 국민식별번호의 수집 및 이용이 상당히 제한적이며, 특히 민간에서의 수집과 이용은 많은 나라에서 제한을 하고 있다”면서 “독일이나 헝가리와 같이 목적별 번호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를 비롯해 캐나다나 일본 등도 국민식별번호를 수집, 이용할 수 있는 영역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프라이버시권이 발전한 선진국에서는 국민식별번호를 보편적 식별자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영역별로 식별번호 체제가 상당히 발전했다”면서 “국민식별번호와 별개로 조세를 위한 납세자번호(혹은 조세식별번호)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도 상당히 많으며, 헝가리나 독일과 같이 국민식별번호와 아예 연동이 되지 않는 나라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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