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46)가 12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출장 중 돌연 사망했다. 현지 병원의 공식사망진단서에 따르면 구본준 기자의 사인은 무호흡증에 의한 질식사였다. 전날까지 다른 기자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렸던 건축전문기자의 황망한 죽음이었다. 많은 언론사 선후배 동료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동료 기자들에게 자신의 일로 다가왔다. 

기자의 돌연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주성 스포츠서울 기자는 1996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 부서 회식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와 기사 2건을 출고한 뒤 사우나에 갔다가 다음날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대법원은 그의 죽음을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로 인정했다.

2005년 9월 조승진 서울신문 기자는 출입처인 국방부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42살이었던 조 기자는 오전 6시에 출근해 1시간 동안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던 중 런닝머신에서 갑자기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1면에 들어갈 <군 병력 18만명 줄인다> 등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전날 밤늦게까지 과로하고 집에서 세 시간을 자고 나온 뒤 무리하게 운동 한 게 화근이었다.

기자들은 돌연사에 대한 공포감 속에 살고 있다. 2006년 한국기자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과로사를 어느 정도 걱정하느냐’는 질문에 응답한 기자의 16.7%가 ‘매우 걱정한다’, 48%가 ‘걱정한다’고 답했다. 소송에 대한 부담, 취재원과의 갈등, 상사와의 다툼에 만성적 스트레스를 겪으며 잦은 음주와 흡연, 불규칙한 출퇴근이 건강에 적신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종인 원광대학교 복지보건학부 교수팀이 1963년부터 2010년까지 48년간 언론에 보도된 3200개의 부음기사와 통계청 사망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명이 가장 짧은 직업군으로 언론인이 꼽혔다. 언론인은 67세 수준이었으며, 평균 82세인 종교인과 15년 차를 보였다.

2005년 한국언론재단이 2천 1백여 명의 부음기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직업별 평균수명 연구’에서도 11개 직업군 중 언론인의 평균 수명은 65세로 가장 짧았다.

한국기자협회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언론인 부고기사를 자체 취합한 결과에 따르면 기자 27명이 암 등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30대가 7명, 40대가 10명이었다. 위암·췌장암·대장암 등 소화기계통 질환(9명) 사망자가 많았고 폐암 등 폐질환 사망자(4명)가 뒤를 이었다. 과로사는 3명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기자에게 가장 큰 적이다. 올해로 해직 2년차인 이상호 MBC기자는 해직 이후 만성 스트레스와 과로로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수년간 YTN의 공정방송투쟁을 이끌어온 임장혁 YTN 기자도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주진우 시사IN기자는 지난 17일 ‘박근혜 5촌 살인사건’보도 선거법위반혐의 공판 자리에서 “소송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감옥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지상파의 한 시사교양PD는 “정신적 압박으로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PD들도 여럿 있다”고 전했다.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기자들의 황망한 죽음…업무상 재해 인식 부족

기자들의 황망한 죽음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경향신문에선 지난해 초 한 교열기자가 회식을 마치고 귀가한 뒤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SBS에선 5년 전 이아무개 보도국 부장이 자던 중 돌연 사망했다. 지난해에는 김아무개 SBS 조명감독이 야근 뒤 운전을 하다 심장에 통증을 느껴 병원에 갔다 사망했다. 김 감독의 경우 과로사로 인정됐다. SBS의 한 기자는 “기자로 일하다 은퇴한 사람 중에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경우도 꽤 있다”고 말했다.

배정현 연합뉴스 기자는 지난 4월 경, 전날 자정까지 야근을 한 뒤 다시 야간당직을 위해 출근을 준비하던 중 자택의 부엌 식탁 앞에서 돌연 사망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로 업무량이 급증한 상황에서 배 기자는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무려 5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업무상 재해를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연합뉴스에서 산업재해가 인정된 경우는 1995년~2013년까지 18년 동안 8건이었다.

미디어오늘이 17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기자 직군의 산업재해 승인 현황’에 따르면 직종 명 ‘기자’로 업무상 질병과 업무상 사고 등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는 2011년 27건, 2012년 22건, 2013년 21건으로 나타났다. 기자들은 여기저기서 다치고 있지만, 산재신청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시사저널의 한 기자는 업무 도중 눈이 안보여 수술을 받고 퇴사했다. 교열기자 출신으로 눈을 많이 사용했던 데다가 업무량도 많이 몰렸던 결과였다. 하지만 산재신청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의 한 기자는 “최근 한 분(50대 중반 데스크급)은 한 쪽 귀가 안 들리는 현상이 생겼다. 지나친 스트레스로 발생한 현상이라고 하는데 한 달 동안 치료를 받았는데 나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YTN에선 올해 40대 중반의 기자가 집에서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아직도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모두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다.

중앙일보에서도 2012년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김태성 기자가 그해 4월 취재장소로 이동하던 도중 서울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36살의 나이였다. 김 기자는 산업재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대신 중앙일보 노동조합 차원에서 모금운동을 벌여 마련한 위로금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김민아 노무사는 “뇌심혈관 질환이 진행되다 발현되는 게 돌연사다. 뇌심혈관 질환은 산재로 인정받기가 굉장히 어렵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말하는 과로의 기준은 형식적이고 수치적이어서 대부분 소송을 각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아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은 보통 근로시간이 얼마나 급격히 늘어났느냐 중심으로 산재여부를 많이 보는데 원래부터 일을 많이 하던 기자들은 더 늘어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민아 노무사는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의 경우도 의사와의 상담과정에서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며 기자들 스스로 본인들의 건강상황이 업무상 재해일 수 있음을 자각하고 적극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밝혔다.

   

▲ 18일 오전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구본준 기자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진=한겨레 신문, 촬영 이종근 기자

 

 

“여기자들, 유산도 빈번” 장기적으로 노동강도 줄여나가야 

조선미디어그룹 계열사인 조선비즈 기자였던 남아무개씨는 지난 10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남씨는 지난해 조선비즈에 입사한 2년차 기자로, 회사 적응에 어려움을 겪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씨는 근무태만‧지시불이행 등의 이유로 3개월 정직을 당한 뒤 복귀해 ‘온라인뉴스부’에서 발생이슈를 처리해오다 사표를 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국민일보에서도 지난 8월 최아무개 기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기자는 2011년부터 편집권독립과 조민제 사장퇴진 173일 파업에 참여한 뒤 징계를 받고 승진에서도 밀리며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기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해석에 따라 산업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주요 중앙일간지의 5년차 이하 여기자는 “술 많이 먹고 늦게까지 취재하며 겪는 육체적 어려움보다 힘든 건 마감과 발제 스트레스다. 퇴근해도 마음이 편했던 날이 하루도 없다. 일을 잊으려고 운동을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았다. 퇴근했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정신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여기자는 “동료들 중에는 생리를 몇 달간 못해 고생하다 결국 회사를 그만 둔 경우도 있었다. 선배들 중에는 유산도 빈번하다”고 전했다.

결국 기자들의 건강문제는 개인적인 관리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2000년 한 해에만 3명의 기자를 암으로 잃은 조선일보는 2001년부터 전 직원을 단체보험에 가입시켜 암으로 사망했을 때 1억 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3천만 원, 암 수술을 했을 때 6백만 원을 해당 기자나 유가족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2000년 이후 회사에서 엄격하게 건강검진을 시키고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쉬게 한다. 덕분인지 돌연사는 없다”고 전했다.

사후적 보상, 꾸준한 검진, 충분한 휴가제공과 함께 기자들의 노동강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취재와 기사작성이라는 업무 특성상 퇴근이 불명확하고 소송 스트레스가 많은 만큼, 데스크는 기자들의 휴가 사용에 눈치를 주지 않고, 기자들의 정신적 긴장 상태를 완화시켜 수 있는 업무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언론사 경영진부터 언론노동에 대한 인식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언론사 간부들도 건강 적신호를 피할 수는 없다. 김윤호 국민일보 전 편집국장은 지난해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최승진 CBS보도국 부장은 지난해 폐암으로 사망했다. 한국일보에서도 지난해 한 부장급 기자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담배도 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병명은 폐암이었다. 지난해 길환영 KBS사장 비서실장은 음주 후 귀가하던 중 돌연사했다. 문철호 부산MBC사장은 위암 선고를 받았다. 홍준호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장도 5년 전 협심증으로 큰 위기를 겪을 뻔 했다. 기자들이 죽어간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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