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4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맞서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렀던 고 장준하 선생의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잠정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장 선생의 긴급조치 위반 혐의는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유상재 부장판사)에서 열린 재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장 선생의 유족들이 인지대 등 소송비용이 없어 무죄 판결 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지난해 7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국민 모금이 진행됐다. 이에 힘입어 장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65)씨는 지난해 8월 국가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장 선생의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권정호 변호사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현재 해당 소송사건은 다른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이 있을 때까지 재판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이는 지난 3월 대법원에서 ‘동일방직’ 노조원 해고사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재판상의 화해가 성립된 것’이라며 청구인의 위자료 청구를 각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해 3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 장준하 선생 겨레장에 참석한 아들 장호권씨. 연합뉴스 @연합뉴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 2항에는 “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고 돼 있다. 장 선생의 유족 역시 이 법에 따라 생활지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민주화운동 보상관련 생활지원금은 많아 봐야 5000만 원을 넘지 않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도 일정 신고 소득 이하에 해당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어 장 선생의 미망인도 2000만 원 정도밖에 받지 못했다”며 “생활이 어려워 돈 받은 분들은 국가배상 청구도 못 하고, 생활이 여유가 돼 돈을 안 받은 분들은 손해배상을 할 수 있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이어 “민주화운동보상법 조항은 국가 손해배상과 관련 없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분들의 생활지원을 돕기 위한 돈이므로, 돈을 받았다고 ‘화해’로 간주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배호근)는 1970년대 민청학련 사건과 오적(五賊) 필화 사건으로 6년을 넘게 복역했다가 지난해 재심에서 일부 무죄 판결을 받은 김지하(73) 시인과 가족에 대해 국가가 15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지하 시인은 민주화운동보상법에서 정하는 보상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지난 6월 법원이 민주화운동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것에 대해 “지난 3월 대법원의 결정은 몇몇 형식적 문구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과거사 해결에 역행하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부인하는 판결에 다름없다”며 “헌재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 대한 정당한 배상과 예우가 있도록 위헌을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27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유신정권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이들에 대해 긴급조치를 근거로 수사·재판을 한 것 자체는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해 논란이 됐다. 

헌법재판소 홍보담당관실 관계자는 1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관련 위헌법률심판 사건은 지난 4월 16일에 청구가 됐고 현재 전원부에 회부돼 있다”면서 “안전행정부의 의견서가 왔고 청구인 측이 공개변론을 신청했는데 아직 변론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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