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의원 158명 중 155명이 KBS와 EBS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통제할 수 있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공영방송사의 경영 상황을 심사하고 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경우 해산할 수 있는 권한까지 정부에 부여했다. 

새누리당 이현재 의원 등 155명은 지난 13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김무성 당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서청원·이정현··이인제·김을동·김태호 등 최고위원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공공기관의 취약한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개정안을 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공영방송의 독립성 훼손을 막기 위한 조항이 삭제됐고, 독소조항이 추가돼 있다. 이 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아직 통과하지 않은 상태다. 

현행 공공기관 운영법 6조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는 기관으로 KBS와 EBS를 명시했다. 하지만 개정안에서는 이 조항을 삭제했다. 대신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 기관을 따로 명시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KBS와 EBS는 ‘그 밖에 자율·책임경영이 필요한 기관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에 해당돼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다.  

   
▲ 현행 공공기관운영법에는 KBS와 EBS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다고 명시했지만 새누리당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이 조항이 삭제돼 있다.
 

KBS와 EBS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시도는 노무현 정권 때부터 시작됐다. 2006년 12월 2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지만 언론인들의 반대 투쟁에 부딪혀 KBS와 EBS의 공공기관 지정을 유보했다. 2008년에는 공영방송사들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KBS와 EBS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정부는 해당 방송사들의 사장 및 이사장 선출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고, 재정 상태에 따라 해산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기관 기관장 임명은 필요에 따라 주무기관장이 복수로 추천, 공공기관혁신위원회(혁신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사람 중에 한 명을 대통령이 기관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 혁신위원회는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각각 추천한 공동위원장과 법조계·경제계·언론계·학계·노동계 인사들로 구성된다. 

사장 임면권을 가진 KBS 이사회는 여야 추천 7대4, EBS 이사회는 여야 추천 6대3 비율로 구성된다. 현재도 양 방송사 이사회는 사장 선출 뿐만 아니라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KBS·EBS 사장 후보를 대통령과 주무기관장이 추천할 수 있게 돼 정부가 좀 더 노골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개정안에는 나아가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의 경영실적 평가 결과에 따라 혁신위원회 심의 및 의결을 거쳐 해산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해당 공공기관이 △설립 후 3년이 지날 때까지 기관운영을 시작하지 못한 경우 △5년 이상 계속해 당기 순손실이 발생한 경우 △특별한 사유 없이 2년 이상 연속해 전년도 대비 수익이 2분의 1 이상 감소한 경우 등에 해당하면 해산될 수 있는 것이다. 

   
▲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영 재정 상태에 따라 공공기관혁신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공기관을 해산할 수 있다.
 

개정안은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비스 범위가 전국적이며 서비스 중단시 이를 대체할 별도의 대체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경우” 해산을 유예할 수 있다고 단서 조항을 달아놓았다. 하지만 단서 조항이 있더라도 공영방송사가 경영 실적을 이유로 해산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KBS와 EBS 구성원들은 이번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KBS본부)는 18일 성명을 내고 “만일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KBS는 예산통제는 물론이고 보도·프로그램 통제, 이사장·사장선출 개입까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 의해 무방비상태로 유린당할 수 있는 완전한 국영방송으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정안에 정치적 꼼수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미 KBS와 EBS는 국회, 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등으로부터 사실상 통제를 받고 있고 국회는 국정감사, 기금심사 등을 통해 경영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또 다른 ‘감시 체계’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KBS본부는 “158명 새누리당 전체 의원 중 155명이 이번 ‘공운법’ 발의에 참여했다는 것은 새누리당 김무성 지도부의 조직적 작업 하에 남은 19대 국회 임기 내내 KBS를 괴롭혀 정치적인 이득을 얻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술수에 다름 아니다”면서 “20대 총선이 치러지는 2016년까지 공공기관 지정여부를 놓고 KBS와 국회는 지루한 줄다리기를 할 것이고 KBS 경영진은 정권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송희 언론노조 EBS지부장도 17일 통화에서 “이미 정부가 소유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운영을 공영적으로 하고 있다.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공영성이 사라질 수밖에 없고, 저널리즘 기능 또한 약화될 것”이라며 “혁신위원회 등에 해체 권한을 준 조항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특히 EBS는 현재 일산 통합 사옥 신축으로 향후 4년간 479억원(EBS 자체 추산)에 달하는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우려가 나오고 있다. EBS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재정 문제로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에 적용돼 KBS와 통폐합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개정안에 대한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법안을 발의한 이현재 의원은 17일 통화에서 “개혁 차원에서 5년마다 공공기관의 기능을 점검하는 것을 일반 원칙으로 삼은 법안일 뿐 특정 기관에 대한 법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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