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신경외과 전문의 직함을 내려두고 ‘펜’을 잡았다. 조동찬 SBS 의학전문 기자는 기자 일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 10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조 기자는 “의사로서 사회적 기여를 한다거나 사명감 차원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어서 기자를 한다”고 말했다.  

의대를 가면 의사의 길을 걷는 게 다반사다. 조 기자 역시 그랬다. 하지만 살다 보면 전환점이 올 때가 있다. 조 기자에게는 군 입대가 그러했다. “한 달에 200만원 받는 군의관으로 가거나 군의관보다 상황이 좋은 공중보건의로 가거나, 두 가지 길이 있었다. 당연히 어디로 가려고 하겠나? 공중보건의 가려면 신체 등급이 낮아야 되니 저도 돈 들여 흠집을 찾으려고 했지만 없더라.(웃음) 결국 군의관으로 갔다.”

조 기자는 이기자 부대의 79연대 의무중대장으로 복무했다. 이때의 생활은 오히려 득이 됐다. 찌든 병원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군의관 시절 다닌 여행지에서 예전엔 몰랐던 자신의 모습도 발견했다.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해 의대에 합격해 의사가 되는 것이 너무 당연해 다른 것들에 대해선 눈을 돌리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봤다. 그러다 34살, SBS 전문기자 채용 공고를 보고 도전했다. 

시작은 사쓰마와리(경찰서 사건기자)였다. 첫 리포트는 아내를 토막살해한 남편이 검거된 사건이었다. 성동경찰서에 앉아 있는 남편을 인터뷰하는 게 관건이었다. 조 기자는 “의사로 환자를 면담할 때 환자의 말을 일단 인정하며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게 중요한데 이 사건의 남편을 취재할 때 이 면담 기법이 유용했다. 남편으로부터 아내를 토막살해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방송에 내보낼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의사 경험이 취재에 도움이 된 순간이었다.  

   
▲ 조동찬 SBS 의학 전문 기자 (사진=조수경 기자)
 

정반대의 경험도 있었다. 의사를 비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동종업계 종사자를 비판하는 건 ‘상도덕’이 아니라고 보는 문화 탓이었다. 조 기자는 지난 10월 31일 <故 신해철 진료 기록 입수…수술 합병증 상황서 대처는?>에서 “복부 전체에 염증이 퍼졌음을 알리는 신호였지만 신 씨에게는 마약성 진통제와 산소만 투여됐다”라며 해당 병원 측의 의료과실 가능성을 제기했다. 

조 기자는 “의사 면허를 등록해야만 회원이 될 수 있는 메디케이트란 사이트에 나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우리 가족의 신상을 모두 공개한 글이 올라왔다”면서 “막상 당해보면 무서운 일이다. 가족들은 의사를 비난하는 기사를 쓰지 말라고 하지만 난 의사의 의사답지 못한 행동을 지적하는 게 지극히 의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의료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의사로서의 성실성에 있다. “명의라고 해서 의료사고가 없겠나.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치료에는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의사가 태만했는지 여부를 중요하게 본다.”

신해철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 기자는 “신해철의 의무기록을 봤을 때 의사가 분명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검사하지 않고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과실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수술하다 보면 장이 뚫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고 싶지 않지만 그로 인한 문제를 신해철씨가 호소했음에도 그 사인을 놓쳤기 때문에 담당 의사가 태만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7년째다. 그동안 의지가 늘 충만한 건 아니었지만 기자의 일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주어졌다. 2009년 한국 사회에 존엄성 논쟁을 불러일으킨 김 할머니 사건이었다.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직검사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에 대해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병원에 요구했지만 병원은 거부했다. 재판까지 간 결과, 대법원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 기자는 “신경외과 전문의로 사망 진단서를 1년에 1,000통 이상 쓰면서 죽음에 가까이 있었지만 정작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존엄사를 인정한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결국 존엄한 삶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존엄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라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보도했지만 백 년 뒤 역사책에 나올 만큼 중요한 존엄사 판결에 대해 고민하고 보도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한글날을 맞이해 다문화 가정의 현실을 취재한 것도 또 하나의 계기로 다가왔다. “한양대와 서울대 공동 연구결과를 보면 다문화 가정의 여성과 자녀는 이런 (불편한 언어사용으로 인한)불안지수가 비다문화 가정보다 3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였다. 조 기자는 “이제까지 남들이 잘한 것들(의학적 성과)을 가져오면 감별해서 보도할 생각만 했지, 내가 먼저 (사회적 약자들의 상황을)들여다볼 생각은 못했다”면서 “말 못하는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자란 직업의 좋은 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 한국방송대상을 받는 조동찬 기자
 

조 기자는 올해 한국방송대상 보도기자 부문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조 기자는 ‘다시 의사로 돌아갈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 “난 늘 의사”라고 말했다. 조 기자는 “나를 ‘의사였다가 기자’라고 규정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의사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SBS가 날 뽑았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저보다 SBS에만 2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조 기자에게 ‘의사의 시각’이란 뭘까. “기자 4년차였을 때는 환자와 병원, 제약회사의 입장, 그 어딘가에 중간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철저하게 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의사이자 기자가 가져야 할 시각이라고 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