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백성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그 진상규명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주도권 다툼만 벌이는 당신들이 역도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역도란 말입니까!”

SBS드라마 <비밀의 문> 2회에서 사도세자(이제훈 분)는 이렇게 말한다.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좌포청이 증거를 조작하고, 이를 알게 된 사도세자가 분노한 상황에서 나온 대사다. 세월호 참사정국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비밀의 문>이 입소문을 타게 된 계기가 됐다.

<비밀의 문>은 방영 초기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1회 8.8%에서 4회 10.0%까지 올라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한다. 그러나 초반에 유입된 시청층을 유지하지 못해 4%대까지 떨어진다. 최근 방영된 16회의 시청률은 5.3%였다.

<비밀의 문>은 시청자를 몰입하게 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기에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 힘들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관계가 복잡하고 내용이 어렵기도 하다. 한 회만 빠뜨려도 전개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동시간대 방영된 MBC <야경꾼일지>와 그 후속작인 <오만과 편견>이 인기를 끈 것도 <비밀의 문> 부진의 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비밀의 문>은 이대로 외면 받기엔 아까운 드라마다. 이 작품은 오늘날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극 인물들의 대사는 끊임없이 현실정치의 문제를 고발하고 비판한다. 카카오톡 사찰논란 등으로 ‘표현의 자유’가 논란인 현실처럼 극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화두다. “민간의 출판은 물론 유통까지 전면 허할 것이니 세책에 대한 단속부터 전면 중단하도록 하시오” 1회에서 사도사제가 한 말이다. 극 11회에서 서균(권해효 분)은 영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백성들의 말할 자유를 이렇게 처참하게 짓밟고 만 것은 이건 임금이 할 일이 아닙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 칼 없이는 백성들 상대 못하는 것이 창피하지 않습니까”

   
▲ SBS 드라마 <비밀의 문> 속 사도세자(이제훈 분)
 

극 초반부가 국내정치를 은유했다면 극 중반부엔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 보인다. 15회부터 등장한 청나라 사신단이 조선을 압박한다. 이들은 조선에 방문한 청나라 백성들의 치외법권과 청나라 어민들이 조선바다에서 조업할 수 있는 조업권 전면허용을 요구한다. 이에 사도세자는 분노하며 이 같이 말한다. “청국백성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조선국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그게 어찌 주권국가라 할 수 있겠습니까?”

<비밀의 문>의 현실 은유는 대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도세자라는 인물을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좋은 리더상을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현재적 의미가 강한 요즘 사극에서 특정인물을 조명할 때는 꼭 필요하지만 현실에 부재한 영웅상과 리더십이 투영된다”며 “<비밀의 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극 중 사도세자는 민생을 위해 헌신하고 분권형 개혁을 추구하는 리더다. 이 같은 특성은 사도세자가 출판의 자유를 허용하려 하고, 백성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신료들을 다그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연달아 들어선 상황에서 <비밀의 문>이 묘사하는 사도세자의 리더상은 의미심장하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 작가 천성일이 드라마 <추노> 제작발표회 때 했던 말이다. <비밀의 문>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내고, 바람직한 리더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천성일 작가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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