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2심에서 이기고도 왜 대법원에서 졌을까. 해고노동자들의 법률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는 다투는 운동장이 기울어졌는데 심판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부가 갈수록 친기업적인 판단을 내리는 흐름 속에 있고, 회계조작과 관련한 정리해고에 있어서는 법관들의 전문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래 정리해고법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일 때 해고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장래 닥칠 위기’만으로도 해고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번 쌍용차 판결이 그러하다. 경영자의 재량의 지나치게 보장하는 판단도 이어지고 있다. “(인력운용은)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더 ‘똑똑하게’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쌍용차의 경우 회계조작이 논란이 됐다. 존재하지도, 일어나지도 않은 경영상의 위기를 조작했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회사가 소유한 부동산, 건물, 공장 설비 등의 ‘평가액’을 낮추는 방법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고등법원은 이를 인정해 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회계자료만 잘 만들면 얼마든지 경영진의 마음대로 해고가 가능하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이를 판단할 사법부는 회계에 그리 밝지 않다. 비전문가가 전문가들의 조작을 판단하고, 그 결과에 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줄이 달려 있는 셈이다. 김 변호사는 프랑스와 같은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50인 이상 정리해고를 할 경우 노동조합이 회계사를 선임해 기업경영을 분석할 수 있다. 정리해고를 할 만큼 경영이 어려운지 노동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고노동자들의 해고무효 소송은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대법원 지난 13일 쌍용차 해고무효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다.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경우는 드물다. 한 언론은 “사법부 구조상 파기환송심에서 결과를 뒤집을 가능성은 백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는 남아있다는 것이 해고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쌍용차 측의 주장이 바뀐 것과 그간 거론되지 않았던 고용안정협약 등을 추가로 거론할 예정이다. 특히 대법원 판단의 근거가 된 사실 관계가 바뀌면 파기환송심의 결과도 바뀔 수 있다. 김태욱 변호사를 14일 서울 정동 금속노조 법률원에서 만났다.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대법원 앞에서 날리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2심에서 이겼는데 대법원에서 왜 졌을까
“링 자체가 불리하다. 최근 판단이 법 기준에 안 맞게 너무 완화돼 있다. 98년 법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있을 때 해고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속해서 완화해서 해석을 하고 있다. 오지도 않은 위기로도 해고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고. 이번 대법 판결은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인력운용은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상당한 합리성이 아니라는 건 노동자가 어떻게 입증할 수 있나. 정리해고와 관련한 모든 자료는 회사가 가지고 있다.”

-쌍용차의 경우 회계조작을 통해 있지도 않은 위기를 만들었다는 논란이 있었다. 2심에서는 이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일반 정리해고의 경우 회계장부를 대부분 인정한다. 물론 잘 아는 법관도 일부 있겠지만 대개는 법관들이 회계를 잘 알기 어렵다. 반면 회계사는 전문가다. 회계사들도 일종의 권위를 독점하면서 지식권력이 됐다.”

-쌍용차 회계 문제는 뭔가
“쌍용차의 대량해고 근거는 유동성 부족에서 나아가 재무건전성에 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재무건전성 위기의 주요 원인은 유형자산 손상차손(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손실) 때문이었다. 쌍용차는 이를 실제보다 부풀렸다. 신차종 판매로 인한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구차종 7개 중 4개도 단종시켜 버린거다. 신차도 안 팔고 구차종도 안 팔겠다는 식이다. 5년간 65만대를 판매하겠다는 최초 계획은 순식간에 23만대로 줄었다. 이는 회계의 계속기업 가정을 위배한 것이다. 이런 쌍용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쌍용차의 부채비율은 561%에서 187%까지 떨어지게 된다.” (2008년 9월말, 쌍용차의 부채비율은 168%였다. 당시 기아차는 178%, GM대우는 184%였다.)

-회계조작이 쉽게 가능한 일인가
“우리나라 회계법인 시장을 보면 소위 4대 회계법인(삼일, 삼정, 안진, 한영)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기업은 거의 그 4대 회계법인이 돌아가면서 외부감사를 하고 있다. 독과점 체계를 구축하고 있어서 그만큼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도 있다고 본다. 또 한국 회계감사가 ‘자유수임’이라서 그런 측면도 있다. 기업이 회계법인을 정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기업이 갑이고 회계법인은 을이다.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대로 의견을 내지 않으면 일거리가 안 들어오게 된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것 등이 하나의 방법이다.”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이 대법원 판결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런 일이 많이 있나
“쌍용차 같은 경우는 재무재표 자체에 워낙 문제가 많았다. 대규모의 해고였기 때문에 이게 걸린거다. 사실상 회계조작을 하고도 안 걸리는 사업장이 많을 것이다. 결국 노동자가 이걸 입증해야 한다는 건데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럼 노동자는 가만히 앉아서 해고당하는 수밖에 없나
“법적인 보장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경우 50인 이상 대규모 정리해고를 할 경우 노동조합이 회계사를 선임할 수 있다. 심지어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 노동조합에 의해 선임된 회계사가 해고를 할 만큼 회사의 경영이 정말 어려운지를 감사하는 것이다. 이때 회계사의 법적 지위는 외부감사와 동일하다. 회사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으며 회사는 이를 거부하면 안 된다. 거부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노사 회계사의 평가가 달랐다 해도 법정 다툼 과정에서 중요한 자료로 쓰일 수 있다. 쌍용차의 경우 1심 재판 과정에서 회계조작을 알게 됐다. 만약 노사교섭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발견됐다면 국면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납득할 수 없다. 특히 대법원은 법률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심 법원(고등법원)이 인정한 사실과 정면으러 배치되는 사실을 인정했고 입증책임이 있는 쌍용차의 주장이 대법원 재판 과정에서도 일관성 없이 변경됐는데도 이를 간과했다.”

-쌍용차의 주장 변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구조조정 규모와 관련된 주장에서다. 원래 쌍용차는 모답스 기법(생산라인에서 근로자들이 취하는 행동을 세부적으로 분류해 각 동작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는지를 파악하는 기법)을 활용해 구조조정 규모를 산정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제출하지 못 했다. 그러다 쌍용차는 대법원에서는 주장을 바꾸었다. 모답스 기법이 아니라 교대조 감축(2교대에서 1교대로) 구조조정 규모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대법원이 이를 간과했다는 것인가
“고등법원은 회사의 주장인 모답스 기법으로는 구체적 산출 내역을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쌍용차가 주장을 바꾸었음에도 모답스 기법에 의한 구조조정 규모 산정을 구체적 사실로 인정했다. 주장이 바뀌는 것은 입증이 안 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를 간과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이 부분을 더 다룰 것이다.”

   
▲ 금속노조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허완 기자
 

-교대조 감축이 왜 중요한가
“해고회피노력과 구조조정규모와 관련이 있다. 2교대가 1교대로 줄면 일하는 사람이 절반으로 준다. 당시 노조는 교대조 감축이 아닌 일자리 나누기인 5+5를 제안했다. 인력을 그대로 유지하되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피할 수 있다. 당시 정부도 일자리 나누기를 권장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회사가 당분간 일자리 나누기로 버틸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해고 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해고회피노력을 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대조 감축 외에도 파기환송심에서 또 다툴 것이 있나
“고용안정협약이라는 게 있다. 회사에 큰 변동이 생기지 않는 한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는 거다. 쌍용차는 2005년과 2007년에 이를 약속했다. 그간 쌍용차는 법적 다툼에서 경영 위기는 2008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2005년 이후 지속적으로 있었다고 주장했다. 쌍용차의 논리대로라면 위기가 있는 상황에서 두 번이나 고용을 약속한 셈이다. 따라서 이는 고용안정협약에 어긋난다. 대법원은 고용안정 협약에 근거하여 2014년 포레시아 사업장의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확신 있게 말하지는 못 하겠지만 대법원 판단의 근거가 된 사실 관계가 바뀌면 파기환송심의 결과도 바뀔 수 있다. 다퉈볼 여지는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쌍용차 해고무효 소송은 소위 노동으로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맡았다. 증명을 잘 해서 사실심인 2심에서 이겼다. 그런데 법률심인 대법원에서는 패소했다. 대법원이 가지는 문제가 있다고 보나
“정리해고 사건은 하급심에서 승소하여 대법원에 가면 노동자 쪽이 지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이 근기법상 정해진 정리해고 요건을 근거없이 완화해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일종의 입법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인데 월권적 행위라고 본다. 이번에 쌍용차 대법원 사건의 주심 대법관들은 소수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법원 등 노동사건을 전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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