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 파업과 대량 해고 사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카트>가 고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3일 개봉한다. 

6년이 지난 시점에서 개봉하는 영화 <카트>를 ‘이랜드 투쟁’의 실제 당사자들은 어떤 심경으로 봤을까. 당시 홈에버 계산분회장이었던 고일미 홈플러스테스코노조 교육선전부장은 1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두 번이나 봤지만 우리가 예전에 겪었던 시간들이 생각나 참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고 부장은 “그때 같이 투쟁했던 조합원들에게 우리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카트> 시사회를 같이 보러 가자고 연락했을 때 좋은 반응을 보인 분도 있지만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는 반응을 보인 분도 있었다”며 “510일 동안 파업하면서 정말 힘들게 싸웠고, 아주머니들이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아직까지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 영화 ‘카트’ 스틸컷
 

고 부장도 당시 홈에버 계산점 영업부서에서 물건 진열 등의 업무를 하던 평범한 노동자였지만, 회사가 마트 계산원들을 아웃소싱(외주화)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고 부장은 “영화에서 나와 비슷한 배역을 꼽자면 문정희씨(혜미 역)에 가까울 것”이라며 “월드컵점 파업 참여 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얼떨결에 분회장으로 뽑혀서 월드컵점과 면목동점에 들어갈 때 노조 간부들과 함께 밤샘 회의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우리가 언제 유치장에 가봤겠어요. 처음에 파업 시작할 때 매출이 제일 잘 나오던 상암 월드컵점에 들어가 하루만 있다 나올 생각이었는데, 있다 보니까 조합원들이 나가지 말자고 해서 너무나 긴 싸움이 돼 버렸어요. 당사자로서 영화를 봤을 때 우리가 510일 동안 싸운 긴 시간을 짧은 시간에 담아 내다보니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더라고요.”

고 부장이 그토록 긴 싸움을 버텨낸 이유는 직장을 지켜내기 위함도 있었지만 다음 세대들에게 자신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도 있었다.

고 부장은 “내 자식들이 비정규직과 기간제 노동자로 일할 게 눈에 뻔히 보였는데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린다는 등 우려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현실이 되고 있다”며 “비정규직을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힘든 싸움을 했는데 점점 나아지는 게 아니라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비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랜드 파업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고 부장의 큰 딸은 어느덧 수능시험을 앞둔 고3이 됐다. 큰 딸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로계약서나 최저시급과 관련해 물어보기는 했지만, 치열했던 엄마의 투쟁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 고일미 홈플러스테스코노조 교육선전부장

 

 

“아이들이 영화를 안 보고 싶어 했어요. 염정아씨(선희 역) 아들로 나오는 엑소(EXO) 멤버 경수(태영 역)때문에라도 보려고는 하는데 그다지 영화에 대한 흥미는 없는 것 같아요. 엄마가 영화에 엑스트라 출연을 한다고 했을 때도 별로 보고 싶지 않다고 그랬어요. 내용적인 면은 아직 학생이다 보니까 실감 못 하는 것 같아요.”

고 부장은 현재 홈에버를 인수한 홈플러스테스코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동료 마트 비정규직·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과 고통은 6년 전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홈플러스 사업장에선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어도 여전히 정규직(선임)과 무기계약직(사원)을 구분해서 부른다”며 “같은 연차임에도 정규직과 임금과 수당 차이가 컸는데 노조에서 회사와 교섭하면서 그나마 많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고 부장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지적으로 납품업체 직원들이 매장에서 빠지면서 업무량과 강도가 늘었어도 인원 충원이 되지 않고 있다”며 “마트에는 나이 든 분들도 많은데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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