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리(가명.29)씨는 만성신부전 환자다. 신장은 몸에서 독소를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데, 신부전은 신장이 이 기능을 못 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상태를 말한다. 김씨가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은 건 2006년, 22살 때였다. 직후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등의 치료를 받았으나 몸이 견디질 못 했다. 2009년, 김씨는 아버지의 신장을 이식 받았다. 

“2009년에 아빠가 신장을 이식해주셨어요. 보통 이식 받은 신장은 1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거든요. 벌써 절반이 된 거니 불안해요. 뭘해서 다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불안감. 그리고 점점 야위어 가는 아빠의 모습에, 내가 나 살자고 아빠 목숨을 갉아먹었구나 하는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어요.”

2003년 8월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 김씨는 여기서 모든 일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는 졸업하기도 전에 천안공장에 입사해 만 3년을 일했다. 그리고 2006년 8월 일하던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원은 만성신부전이라고 진단했다. 가족 중 신장질환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김씨는 전했다. 

“삼성전자라는 큰 회사에 입사하게 됐을 때는 정말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좋지 않은 살림에 보탬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함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되돌리고 싶었던 순간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김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며 쓴 편지의 일부이다. 

지난 달 28일, 그를 포함해 19명의 전자산업 피해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이번 집단 산재 신청의 특징은 ‘다양한 회사’ ‘다양한 질병’ 이다. 그간 전자산업 피해자 문제는 ‘삼성반도체-백혈병’이 마치 공식처럼 여겨져왔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임자운 변호사는 “같은 화학물질을 사용해도 각각의 특성에 따라 다른 질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아리씨도 그런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하다 만성신부전에 걸린 김아리씨(29). 사진=이하늬 기자
 

“옷 위로만 흘렀는데 피부병이 생겼어요”

김씨는 LCD 액정 공정에서 일했다. 투명전극위에 얇은 고분자 필름이 씌워져(LCD 배향막) 오면 이를 검사하는 일을 주로 했다. 해당 공장에서는 폴리이미드(Polyimide)로 배향막을 만들었다. 폴리이미드 자체는 비교적 인체에 안전하다고 알려졌으나 합성 방법에 따라 조성이 다양하다. 그래서 아리씨가 취급한 폴리이미드가 무엇인지 특정할 수 없다. 이종란 노무사는 “그래서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씨는 폴리이미드 냄새는 기억했다. 그는 폴리이미드가 발라져있는 LCD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검사 했을 뿐 아니라 LCD에 발라질 폴리이미드가 떨어지면 수시로 설비에 폴리이미드를 채워넣었다. 김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폴리이미드 냄새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역했어요. 그래도 이물질 검사를 해야 하니 얼굴을 가까이 댈 수밖에 없었어요.”

세척 작업에 사용되는 공업용 아세톤과 IPA(이소프로필알코올)도 냄새가 독했다. LCD에 이물질이 발견되거나 LCD 인치를 바꿀 때면 세척을 해야했다. “설비 문을 열고 여사원 두명이 들어가서 IPA 용액을 거즈에 묻혀서 설비를 닦았어요. 설비를 아예 멈추면 아세톤까지 사용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독성정보를 보면 아세톤과 신장 질환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한 49세 남성은 작업장에서 아세톤 흡입과 피부 노출 이후 급성 신부전이 발생했다. 아세톤이 주용액인 유기용매에 노출된 55세 여성 또한 신 증후군 등 다양한 세뇨관 기능 이상이 나타났다. 

IPA도 비슷하다. 2009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서울북부지도원 자료에 따르면 인체에서 IPA에 의한 신장 기능 장애가 나타날 수 있으며 보통 일시적이나 심각한 신장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 또 다양한 동물 실험에서도 고농도의 IPA가 신질환의 악화와 같은 여러 독성 영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김씨 재해경위서에 나와있다. 

김씨도 아세톤과 IPA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옷 위로 IPA가 흐른 적이 있었어요. 혼날까봐 씻지 않고 계속 닦았죠. 나중에 보니 피부가 수포처럼 보글보글 올라왔더라고요. 피부에 직접 묻은 것도 아닌데. 약이 되게 독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세톤은 휘발성인데도 냄새가 무척 강했어요. 멀리서 아세톤을 사용해도 냄새가 났으니까요.”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3월 서울 곳곳에서 전자산업 피해자 추모주간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제공
 

“입사 1년차, 혈뇨가 검출됐지만…”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일단 업무량이 너무 많았다. 원래 두 명이 해야 할 전산업무와 검사 업무를 혼자 맡아 했다. 마음대로 화장실을 못 가는 건 당연했다. “사고만 안 나면 다행이었어요. 전산이 너무 밀릴 때는 검사를 PASS모드로 해놨어요. 그냥 통과되게. 그런데 이물질이 묻어있었던 거에요. 사고가 난거죠. 하나라도 이물질이 묻으면 LCD 전량을 폐기해야 해요. 과로와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어요.”

만성피로와 스트레스와 신장 질환의 관계는 좀 더 명확하다. 지금까지 법원은 과로 및 스트레스와 신질환의 발병 및 악화 사이의 상당관계를 지속적으로 인정해왔다. 대법원은 1990년 만성신부전에 걸린 이아무개씨에 대해 “누적된 과로로 인해 위 질병이 말기신장염, 말기신부전증으로 급속하게 악화되었다면 위 질병은 공무상질병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입사 1년차에 만성 두통을 얻었다. 2년차 부터는 두통약을 먹는 날이 먹지 않는 날보다 더 많았다고 했다. 주변에도 약을 먹는 동료들이 많았다고 김씨는 기억했다. 화장실을 못 가니 방광염도 생겼다. 그러다 1년차, 2년차 건강검진에서 혈뇨가 검출됐다. 하지만 생리 중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고 했다. 3년차 건강검진에서는 혈뇨와 단백질뇨가 검출됐다. 

병원은 사구체신염(IgA신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때 건강관리를 했으면 만성신부전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씨는 업무를 그만 두지 않았다. “원래 두 명이서 하던 업무를 혼자 맡고 있어서 제가 빠지면 그 일이 동료들에게 넘어가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돈 문제도 있었어요” 김씨 가족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사구체신염 진단을 받았는데 치료비가 있어야 하잖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 병원비를 벌고 나가자는 생각이었어요. 아빠가 외환위기 이후 안정적인 직장이 없으셨거든요. 그래서 삼성 들어간 것도 있어요. 고3때 삼성 입사한 이후로 동생한테 들어가는 돈은 제가 다 부담했고요.” 하지만 병원비를 벌기도 전에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3월 서울 곳곳에서 전자산업 피해자 추모주간 행사를 하고 있다. 사진=반올림 제공
 

“똥오줌 지리며 쓰러진 친구는 죽었어요”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100% 있지는 않아요.” 다만 그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게 위험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아팠을 때도 운이 나쁘다고만 생각했어요. 내가 몸이 약해서 이런 병에 걸렸구나. 그런데 그게 아닌거잖아요. 그 공장이 아예 잘못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외에도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제가 2년차 정도였을 때에요. 에쎄이 설비에서 일하던 1년도 안 된 신입사원이 갑자기 쓰러졌어요. 애들이 웃더라고요. 똥오줌을 지렸다고. 쟤 챙피해서 일 어떻게 다니냐. 그때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넘겼는데.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뉴스에도, 신문에도 안 나왔어요.”  

그래서 김씨는 “알리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많은 고3 학생들이 11년전 그와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 “삼성이든 다른 곳이든 전자산업 생산직에 가는 건 자기의 선택이에요. 그런데 알고 가는 거랑 모르고 가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만약 제가 이런 걸 알았다면 전 절대 안 갔을거예요. 돈이 중요하지만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을 거 같아요.” 

현재까지 반올림과 함께 산재를 신청한 피해자는 총 62명이다. 이 중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피해자가 3명, 법원에서 인정받은 피해자가 5명이다. 지난 6일까지만 해도 법원에서 인정받은 피해자는 3명이었으나, 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상덕 판사는 고 이윤정씨(뇌종양)과 유아무개(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해 산재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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