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에 종속되던 방송사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합동 계약’을 통해 플랫폼인 포털에게 처음으로 서비스 운영권과 광고영업권을 따낸 것이다. 방송사들은 포털과의 관계에서 ‘플랫폼 인 플랫폼(PIP)’이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고 자평했고, 업계는 방송사들의 도전에 주목하고 있다.

네이버(대표이사 사장 김상헌)와 스마트미디어렙(공동대표 이은우, 박종진·SMR)은 지난달 31일 지상파, 종편 등 7개 방송사의 하이라이트 영상(클립)을 ‘네이버 TV캐스트’에서 제공한다고 밝혔다. SMR은 SBS와 MBC가 합작해서 만든 온라인·모바일 광고 대행사다.

SMR에게 ‘영상 콘텐츠’ 계약을 위탁한 방송사는 MBC, SBS와 채널A, JTBC, MBN, TV조선 그리고 CJ E&M(엠넷·티비엔 등)이다. 네이버와 이미 개별 계약을 맺은 KBS, EBS는 빠졌다. 또 이들은 플랫폼 전략보다는 수신료 인상을 노리고 있는 공영방송이라는 점에서도 입장 차이가 있다.

   
▲ 네이버 TV캐스트 첫 화면.
 

이번 계약에서 방송사들은 네이버 TV캐스트에 향후 수년 간 드라마, 예능, 음악 등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했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2~5분 길이로 잘라 방송 후 24시간 안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방송사들은 이미 유튜브, 다음팟에 이런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TV캐스트는 네이버가 2012년 7월 만든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다. 네이버판 ‘유튜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가 국내 동영상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고, 곰TV, 판도라TV, 엠군 등 기존 경쟁사가 자리잡고 있어 네이버 TV캐스트의 점유율은 미미한 상황이다.

계약 내용의 핵심은 네이버는 공간만 제공하고, 방송사들이 영상으로 직접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진 방송사가 영상을 제공하면, 플랫폼사가 이를 가지고 광고주와 계약하고 얻은 수익을 일정비율로 방송사에 배분했다. 방송사의 역할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제공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 계약에서 방송사들은 네이버에게 서비스 운영권과 광고영업권을 얻어냈다. 네이버가 이 역할을 포기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은우 SMR 공동대표는 “쉽게 백화점을 예로 들면, 주문자상표부착(OEM)으로 납품하다가 우리가 직접 매대를 만들어서 장사를 하고, 백화점에 장소 사용료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네이버 TV캐스트에 나오는 드라마 '미생'의 일부.
 

네이버는 내년 상반기까지 TV캐스트 안에 이번 계약을 맺은 방송사들이 입점할 ‘브랜드관’을 만들 예정이다. 방송사들은 이곳에서 직접 영상 콘텐츠를 배치(운영권)하고, 영상 앞에 붙을 광고를 영업한다. 업계에 따르면 대신 방송사들은 네이버에 공간(플랫폼) 사용료 차원으로 수익의 10%를 배분한다. 지상파 관계자는 “우리가 서버도 운영하고, 네트워크 비용도 모두 떠안는 구조”라며 “단순하게 (방송사 몫 수익 배분율이) 기존 60, 70%에서 90%로 뛰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수익 배분율도 늘어났지만, 실제 방송사들이 네이버에게 가져온 건 영상 플랫폼 사업의 ‘주도권’이다. 이 계약으로 네이버는 정말 장소만 대여해주는 역할만 수행하게 된다. 방송사들은 지난 수개월 간 사활을 걸고 이번 계약에 임했다. 이 공동대표는 “지상파 수익 구조는 눈에 띄게 기울어지고 있다.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재생산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는 위기 의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형식의 계약은 네이버로서도 처음이다. 하지만 향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동영상 시장에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선 핵심 콘텐츠가 절실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방송사의 요구는 주도권을 넘겨달라는 얘기였고, 우리는 주도권을 넘겨주더라도 이용자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이대로 가면 유튜브 점유율이 90%를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네이버가 아닌 SMR이 광고 영업을 하는 것이라 내부에서 우려도 있긴 했다”고 말했다. 

   
▲ 유튜브에 올라가 있는 MBC '무한도전' 영상 클립.
 

방송사들은 다른 플랫폼과도 이 계약조건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다음카카오와의 협상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과제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유튜브다. 세계적인 플랫폼인 유튜브가 한국에서만 방송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약조건을 변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예측이다. 이에 대해 유튜브는 “계약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습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방송사들은 유튜브가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영상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방송사 쪽도 “유튜브는 글로벌 기준이 있으니 당분간은 계약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네이버가 기존 계약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임에도 이 계약을 맺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튜브가 방송사들의 요구를 거절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방송사 영상이 네이버에는 있지만 유튜브에서는 볼 수 없다. 

다만 방송사들은 ‘한류’를 위해 국외 유튜브에는 영상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방송사와 플랫폼사(유튜브)의 계약 갈등 때문에 국외 이용자들은 볼 수 있는 영상을 국내 이용자만 보지 못하는 것이다. 방송사가 내세울 변명은 있다. “네이버 TV캐스트에 가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방송사 입장에서도 이용자들이 네이버 TV캐스트로 모여줘야 광고영업이 가능해진다.

정리하면 동영상 시장에 기반을 마련하려는 네이버와, 이런 구조를 활용해 직접 영상 플랫폼 사업에 진출하려는 방송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은 것이다. 이제 네이버와 방송사들은 TV캐스트라는 한 배에 올라탔다. 다만 뉴스, 음악 시장처럼 수많은 콘텐츠 생산자 중 하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키는 놓치지 않겠다는 게 방송사들이 입장이다. 물론 앞으로의 과제는 유튜브라는 대형 유람선 이용자들이 과연 이쪽 배로 건너오느냐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