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민들 중에는 ‘통일비용 너무 많이 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집권 2년 차를 맞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묻는 질문에 ‘통일 대박론’을 펼치며 통일이 가져올 장밋빛 경제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튼튼한 안보태세를 잘 갖춰서 국민들이 어떤 경우에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평화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세밑을 바라보고 있는 현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연초에 했던 이 약속들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지난해 6개월간 가동이 중단됐다가 재가동이라는 홍역을 치렀던 개성공단은 여전히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30일 개성공단 가동 10주년을 맞이해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해 개성공단 가동중단으로 인해 입주기업의 67.9%는 매출감소와 자금사정 악화 등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입주기업들은 현재 개성공단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공단의 운영안정성 담보’(23.8%) 다음으로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22.6%)를 꼽았다.

   
지난 1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론’을 언급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YTN 방송 갈무리
 

지난 2007년 참여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주역들이 지적하는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통일을 누구와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의 부재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던 이승형 머니투데이 기자와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국장을 지냈던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이 ‘10·4 남북정상공동선언’ 7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쓴 <협상의 달인-다큐, 노무현과 김정일의 긴 하루>(한국미래발전연구원 펴냄)는 ‘통일’을 위한 준비가 ‘대박’이라는 ‘구호’만으로 결코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없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말하고 있지만 공허하기만 한 것은 그것이 구호에 그칠 뿐 실질적인 대북정책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동아시아의 격동하는 정세가 한반도에서 대결을 유지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통일대박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이유”라고 지적한다.

‘국민들이 어떤 경우에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평화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대통령은 최근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휴전선 인근 거주 주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아무런 언급도 없으면서,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 시설인 애기봉 등탑 철거에 대해서는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북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가치는 바로 ‘평화’였다.

노 전 대통령은 10·4 남북정상공동선언 1주년 기념 연설에서 “통일을 위해 평화를 희생할 수 있는 것인가요? 이 논리대로 가면 통일을 위해 전쟁이나 무력행사를 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아무리 통일을 위한다는 명분이라고 할지라도 평화를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평화가 통일에 우선하는 근본 가치라고 본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도 반북인권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북한에 대한 지원과 화해 의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북한이 이런 시민단체의 활동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 협상의 달인 / 이승형·김창수 /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펴냄
 

하지만 지난달 북한은 우리 민간단체가 대북전단을 실어 날리는 풍선에 고사총 사격을 가했고 이에 우리 군이 대응 사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해당 접경 지역 주민과 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를 놓고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다. 결국 대북 전단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의 남북 고위급 접촉은 무산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통일지상주의의 극한값은 전쟁이라고 생각했고, 평화의 극한값은 분단의 영구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통일이 중요하더라도 평화를 희생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 시절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회고하는 노 전 대통령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이 화두 속에서 박 대통령이 바라는 ‘통일 대박’이 왜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참여정부 시절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5·24 대북제재 조치로 상징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통일과도, 평화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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