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시행 한 달만에 암묵적 담합이 깨졌다. 애플의 새 스마트폰 단말기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가 판매를 시작한 지 하루 만인 1일 저녁 일부 판매점에서 최대 70만원 가까이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그야말로 아이폰6 대란이 벌어졌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판매점 ‘좌표’를 주고 받으면서 간밤에 택시로 이동하고 100미터 이상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른바 ‘아식스 대란’이 단통법의 실패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단통법은 출범부터 통신 3사들의 독과점 담합을 보장하는 법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당초 이용자들의 부당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요금제 담합을 방치하면서 마케팅 비용만 규제하는 단통법의 구조상 통신 3사의 폭리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실제로 지난 한 달 통신 3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마케팅 비용을 틀어쥐면서 시장을 관망해 왔다.

그리고 아이폰6가 출시되고 이틀 만에 대란이 터졌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2일 새벽 일부 대리점에는 100만원 이상 리베이트가 내려오기도 했다. 보조금은 아이폰6 16GB 모델에 집중됐다. 이 모델의 출고가는 78만9800원인데 보조금 15만원에 현금으로 돌려주는 페이백이 추가로 30만원, 그리고 중고 단말기 반환 보상금 34만원을 미리 할인받으면 사실상 공짜로 받을 수 있게 된다.

   
SBS 뉴스 캡춰.
 

그러나 아식스 대열에 합류한 소비자들이 엄청난 혜택을 봤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단말기 반환 보상금 34만원은 결국 1년 반 뒤에 부담해야 할 조삼모사 성격이 짙고 30만원을 추가 할인 받았다고 하지만 불필요한 고가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실제로 16GB 모델을 18만5000원에 판매하는 한 판매점에서는 기본요금이 8만9000원인 요금제 24개월 약정 가입을 요구했다.

애초에 16GB 모델이 용량이 작아 인기가 없는 모델인 데다 6만9000원 요금제를 쓰던 사람이 보조금을 받기 위해 8만9000원 요금제를 쓴다면 24개월 동안 24만원 가량 추가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30만원 싸게 사는 대신 2년 동안 월 2만원씩을 더 내고 결과적으로 6만원 정도 혜택을 보겠지만 역시 조삼모사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새벽에 발품을 팔았던 사람들도 역시 ‘호갱님’이 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번 ‘아식스’ 대란이 단통법 이후 주춤했던 마케팅 과열 경쟁이 재연되는 신호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불법 지원금을 강력히 제재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고 통신사들도 한 차례 아이폰 열풍이 지나가면 단통법의 우산 아래로 숨어들어 암묵적 담합 카르텔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언론이 아이폰이 공짜로 풀렸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고 있지만 단말기 보조금이 단통법 이전처럼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는 2일 저녁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1일 저녁부터 새벽 사이에 발생한 단말기 불법지원금 지급과 관련하여 이통3사를 불러 강력 경고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통신 3사가 공시지원금 상향 등의 합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유통점 장려금을 상승시킴으로써 불법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면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예고했다.

   
아이폰이 출시됐던 지난달 31일서울 중구 명동 프리스비 매장 앞에 구매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하루 뒤 일부 지역에서 아이폰이 할부원금 20만원 미만에 팔리면서 이들도 모두 '호갱님'이 됐다. ⓒ연합뉴스.
 

결국 단통법 이후에도 방통위와 통신사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은 달라질 게 없다. 기습적으로 편법 보조금 경쟁이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근본적으로 통신비 부담을 줄이려면 요금 인하 성격이 있는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할 게 아니라 요금 인하를 유도해야 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만 방통위가 요금제 인가를 하도록 돼 있는데 2005년 이후 미래부(방통위)가 SK텔레콤이 신청한 요금제를 반려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요금인가제는 선발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의 격차를 보완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지만 SK텔레콤이 은근슬쩍 인상된 요금제를 내놓으면 KT와 LG유플러스 등이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경쟁을 회피해 왔다. 한때 미래부가 요금인가제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지만 요금인가제 폐지가 아니라 요금인가제를 엄격히 시행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점 상태에서는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방통위는 경쟁을 유도해서 가격을 낮추기 보다 과점 사업자들이 경쟁을 자제하도록 돕고 사실상 가격 담합을 조장해 왔다. 결국 이번 아식스 대란에서 볼 수 있듯이 통신 3사의 담합 구조를 깨지 않는 이상 마케팅 비용을 규제하는 걸로는 이용자 차별은 물론이고 통신사들의 폭리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기 어렵다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졌다.

‘아식드 대란’ 덕분에 아이폰6를 제값 주고 샀던 사람들도 ‘호갱님’이 됐지만 이번에 고가 요금제를 걸고 아이폰6를 싸게 샀던 사람들도 결국 일시적인 마케팅 수단에 동원됐을 뿐이다. 단통법이 폐지되지 않는 이상 아이폰6를 20만원 미만에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단통법 이전과 같은 마케팅 과열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식스 대란’으로 단통법이 무력화됐다는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보도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

어차피 이미 무선 휴대전화 가입률이 100%가 넘는 상황에서 통신 3사는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라기 보다는 가입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주말 저녁의 ‘아식스 대란’은 단통법이 무력화됐다는 신호라기 보다는 아이폰을 처음 서비스하는 LG유플러스가 주도한 일시적인 마케팅 과열일 가능성이 크다. 많고 적은 보조금이 풀리겠지만 결국 단통법 폐지와 요금인가제 강화가 통신비 인하의 근본 대안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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