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 클럽’에 속했다가 지난 20일 돌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모뉴엘 사태가 금융권을 강타했다. 모뉴엘에 6000억원 이상을 대출해준 기업은행, 산업은행 등 시중은행은 물론 직원, 협력사, 투자자 모두 충격에 빠졌다. 

금융감독원은 모뉴엘에 대출한 10개 은행에 검사팀을 파견해 대출 현황을 확인하고 있으며, 관세청은 지난 31일 박홍석 모뉴엘 대표 등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전 직원들이 말하는 ‘모뉴엘 사기극’의 전말]

언론은 즉각 이 사태를 집중 보도했고, 금융당국과 은행이 모뉴엘의 수출사기를 철저히 검증하지 못했다는 점을 질타했다. 사설도 쏟아졌다. 매일경제 <모뉴엘 사태 은행은 물론 금감원 책임도 크다>, 서울경제 <'모뉴엘 쇼크' 수출금융 전면 재점검 필요하다>, 세계일보 <모뉴엘 ‘수상한 몰락’, 수출금융 허점 샅샅이 조사해야>, 조선일보 <또 한 번의 벤처 신화와 급작스러운 몰락>.

   
▲ 모뉴엘 로고.
 

하지만 언론의 책임은 없을까. 지금까지 모뉴엘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되돌아보자. 포털 ‘다음’에서 검색해보면, 모뉴엘 관련 보도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박홍석 대표가 회사를 인수하고, 모뉴엘로 개명한 후 수년 간은 특별한 보도가 없었다. 삼성 북미법인 출신인 박 대표의 영업망을 기반으로 수출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한 달 안에 70여건 이상의 기사가 집중 보도되기 시작한 건 2010년 8월 대기전력이 ‘0W’이라는 ‘소나무PC’를 출시하고 국내 사업을 본격화 하면서부터다. 이후 모뉴엘이 신제품을 출시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할 때마다 똑같은 기사가 약 100여개씩 나오는 것을 반복했다.

   
▲ 모뉴엘 언론보도 추이. 이미지='다음' 갈무리.
 

언론이 특히 주목한 건 모뉴엘이 미국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혁신상을 받은 이후다. 모뉴엘은 박 대표가 인수한 후 매년 CES에 참가했고, 2011년부터 3년 연속 10여개 이상의 상을 받았다. 언론은 세계가 인정한 ‘자랑스러운 한국 중소기업’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2012년 한 해 보도만 봐도 경제, 전자 전문매체가 모뉴엘에 얼마나 주목했는지 알 수 있다.

아시아경제 : [사설]CES에서 빛난 강소기업 '모뉴엘'
전자신문 : [이사람] 박홍석 모뉴엘 대표. 중견기업 최초 CES 최고 혁신상 수상
파이낸셜뉴스 : [우리회사 성공 DNA는] (41) 모뉴엘
한국경제 : 세계최대 가전쇼 '혁신賞' 휩쓸다…직원 266명 '모뉴엘'의 기적

하지만 CES도 미국 시장을 잘 아는 박 대표의 홍보전략이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모뉴엘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모뉴엘이 기술력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북미 시장에서 삼성전자 영업을 담당했던 박 대표는 어떻게 하면 CES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심사위원인지 등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뉴엘 전 직원 A씨는 “박 대표는 CES를 주최하는 미국가전협회 인사들을 잘 알고 있었고, 빌 게이츠가 CES에서 모뉴엘을 언급한 것도 이런 선을 통해서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CES 혁신상을 받은 것 중에 실제 양산한 제품은 많지 않다”며 “CES상을 받기 위한 콘셉트용 제품이었다”고 말했다. 모뉴엘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삼성, LG를 제외하고 CES에서 상 받으려는 한국 회사는 별로 없다”며 “전형적으로 ‘언론플레이’가 필요한 회사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공매출로 성장하려면 계속 이슈가 있어야 한다”며 CES는 언론플레이를 위한 하나의 소스였고, 언론은 이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계속 붐업해줬다”고 말했다.

   
▲ 모뉴엘 회사소개. 이미지=모뉴엘 웹사이트 갈무리.
 

이런 와중에 모뉴엘이 서류를 조작해 ‘매출 부풀리기’를 했다는 정황이 발혀지고 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건 모뉴엘 경영진이고, 그 다음은 금융당국이다. 하지만 수천억 원을 대출받은 대대적인 사기극에서 언론은 모뉴엘의 연출된 성과를 전파하는 ‘확성기 역할’만 수행했다. 

실제 수천 개가 넘는 모뉴엘 관련 보도에서 비판적인 내용은 찾기 어렵다. 대부분 보도자료를 복사한 내용이거나 박 대표를 인터뷰하며 ‘강소기업’이라고 띄어주는 내용 일색이다. 사기기업은 언론을 홍보도구로 활용했고, 언론은 아무런 의심이나 검증 없이 도구를 자처한 셈이다.

언론이 쏟아낸 모뉴엘의 ‘CES 수상’과 ‘강소기업 기사’ 등은 은행권 대출의 근거가 됐을 것이다. 또한 투자자뿐만 아니라 모뉴엘에 취업한 직원들도 언론 보도를 보고 의사결정을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들이 사기꾼의 거짓말을 믿게 하는 작업에 일조한 것이다.

그나마 한 언론사에서 ‘반성문’이 나왔다. 모뉴엘을 출입했던 한 기자는 “이들의 말과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재생산해낸 언론이야말로 지금의 사태를 키운 장본인 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며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밝혔다.

‘모뉴엘 사태’는 기업과 언론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인사는 “매출이 두 배씩 올라가는데 이를 검증하려고 하거나 좀 더 알아보려는 언론은 없었다”며 “기업의 일방적인 홍보를 받아쓰는 언론도 모뉴엘 신화를 뻥튀기하는데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공기’를 자임하는 언론이 기업의 충실한 홍보창구 역할만 수행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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