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대한레슬링협회(이하 ‘레슬링협회’) 회장과 집행부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보면 우리는 레슬링협회가 과연 정상적인 조직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레슬링’은 우리에게 엘리트스포츠 단체의 후진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군다나 요즘 한창 정부적 차원에서 엘리트스포츠 정상화의 한 방편으로 스포츠단체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는데, 레슬링협회 내부 분쟁은 과연 그러한 정부의 노력이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걱정을 하게 만든다.

레슬링협회장은 레슬링협회 집행부가 회장 출연금 5억 원을 개인 회사에 임시로 대여할 것을 요구하며 아시안게임 기부금 가운데서도 일부를 영수증 없이 사용하겠다고 하는 등 투명성이 의심스러워 취임 당시 약속한 출연금을 내놓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전무이사·사무국장 등 집행부의 비리를 거론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검·경 스포츠 4대악 비리신고센터와 검찰에 사무국장과 전무이사 등 협회 집행부를 고발하였다.

이에 집행부도 기자회견을 열어 회장이 밝힌 내용은 허위라며 회장이 취임 전 약속한 2억여 원을 내놓았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실제로 협회를 위해 사용한 돈은 4천여만 원에 불과하며 오히려 이런 저런 핑계로 출연금 기탁을 연기하면서 수시로 감사를 실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하였다. 회장의 경력과 재정 능력 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레슬링협회는 최근 회장에 대해 직무정지의 징계를 내렸고 내년 대의원총회에서 해임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레슬링협회 내부 분쟁에서 대한체육회(회장 김정행)는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엘리트스포츠를 대표하는 기구로서 대한체육회 정관 제42조에 의해 레슬링협회와 같은 가맹경기단체의 조직운영, 사업 및 회계업무 전반에 대하여 조사․감사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를 갖는 대한체육회가 레슬링협회 사안에 대하여 공식적인 의견을 내놓거나 해결을 위한 적극적 모습을 보였다는 뉴스를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안 하는 것인가? 못 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대한체육회 ‘가맹경기단체규정’ 제6조에 의해 가맹경기단체가 정상적인 조직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당해 가맹경기단체를 관리단체로 지정할 수 있고, ‘관리단체 운영규정’을 통하여 해당 가맹경기단체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적극 시행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한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가맹경기단체규정’ 제6조 제2항에는 관리단체 지정 사유로 “5. 경기단체와 관련한 각종 분쟁 6. 재정악화 등 기타 사유로 원만한 사업수행 불가”가 있는데 레슬링협회 분쟁은 위 사유에 해당한다고 충분히 볼 수 있음에도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트스포츠와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는 소송 등 사법절차를 통하는 길도 있지만, 가능한 한 엘리트스포츠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엘리트스포츠 내부의 문제를 조사하고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내리는 것도 되도록 엘리트스포츠 자체에서 엄중하게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엘리트스포츠가 그러한 분쟁 조정해결 및 문제 해결의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엘리트스포츠에서 그러한 역할과 기능을 할 곳은 대한체육회이다. 그러나 대한체육회가 이처럼 무능과 무력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면 이를 대체할 기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스포츠계 일부에서 얘기하는 스포츠분쟁 조정중재 기구 설립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분쟁을 조정중재하고 스포츠계를 둘러싼 각종 비리 부패 부조리를 조사하고 관련자에 대해서는 이에 상응한 엄중한 제재를 가하고 형사처벌까지도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형사고발을 할 수 있는 권한과 기능을 수행할 기구를 말한다. 이 기구는 스포츠계로부터 재정적으로 행정적으로 독립적인 기구이어야 한다. 

몇 년 전 대한체육회 산하에 스포츠분쟁 중재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설립하였는데, 실적이 없어 슬며시 사라진 사례가 있다. 이러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재정적, 조직적으로 대한체육회 산하에 있었던 점과 이를 활용하려는 엘리트체육계의 노력과 의지가 부족한 점이 가장 컸다. 

이러한 사례를 거울 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체육회 및 가맹경기단체는 행정적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스포츠분쟁 조정중재부터 부정비리 감시감독과 대한체육회 및 가맹경기단체의 징계 재심의 사법기능을 담당할 법정 기구가 필요하다. 가능하면 프로스포츠계도 이러한 시스템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젠 엘리트스포츠계의 문제를 엘리트스포츠계에 맡겨 놓을 수 없는 사정이다. 엘리트스포츠가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정부와 국민이 나설 수 밖에 없다. ‘자업자득’이다.  

<필/자/소/개>
필자는 중학교 시절까지 운동선수였는데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의 인생을 살고 있다.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을 공부하였고 개인적‧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따른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그런 바람을 칼럼에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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