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가 되라는 지적을 받았던 한국 천주교회의 주교단이 지금까지 깨어있지 못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반성했다. 이들은 향후 소통과 연대에 나설 것이며, 진상규명을 위해 눈물과 탄식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연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제주도 한림읍 소재 엠마오 연수원에서 개최한 2014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이같이 의견을 모으고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30일 담화문을 통해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종은 한국을 방문해 우리 모두에게 큰 은총과 축복을 나누어 주셨다”며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총체적 불의와 모순을 드러내고 온 나라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었을 때, 교종께서는 아파하는 이들을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우리 모두가 좌절을 딛고 복음적 회심으로 나아가도록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밝혔다.

강 의장은 “그동안 교회 안팎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번 정기총회에서 교종방한 이후의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진지하게 숙고하고 논의했다”고 전했다.

   
강우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주교-제주교구장). 사진=교황방한준비위원회
 

강 의장은 교황이 한국 교회에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기를 촉구한 사실을 상기하며 “교종(교황)님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깨어있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반성했다.

강 의장은 “오늘날 물질주의, 경제제일주의에 짓눌려 어깨를 펴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그들과 연대할 것을 다짐하고자 한다”며 “복음의 기쁨을 우리 자신부터 느끼고 실천하기 위하여 그늘진 구석구석을 찾아보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교회의 대사회적 가르침을 꾸준히 모든 이들에게 펼쳐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특히 강 의장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세월호 사태 이후 반년이 경과하였음에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이러한 참사를 낳게 한 구조적 비리와 사회적 죄악에 아무런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유가족들만 여전히 한 맺힌 눈물과 탄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우리는 이들과 함께 하고 연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우리 자신의 생활에 변화와 쇄신이 선행되어야 함을 함께 자각하고 서로 힘을 모아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주교회의는 △우리가 먼저 찾아 나서면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노력 △스스로 사치한 생활의 청산 △주교단으로서 함께 지속적으로 자신의 가진 바를 나누고 ‘프란치스코 통장’에 기금 마련 및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용 △여러 지역 교회의 쇄신의 여정에서 종합되는 열매를 통해 새로운 도약의 기반 마련 등을 제시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지난 27~30일 제주도에서 개최한 추계 정기총회. 사진=주교회의
 

다음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30일 내놓은 담화문 전문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14년 추계 정기총회를 마치며’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종은 한국을 방문하시어 우리 모두에게 큰 은총과 축복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총체적 불의와 모순을 드러내고 온 나라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었을 때, 교종께서는 아파하는 이들을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하시며, 우리 모두가 그 좌절을 딛고 복음적 회심으로 나아가도록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분의 이러한 복음적 행보에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언자적 징표가 가득히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교들은 그동안 교회 안팎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번 정기총회에서 교종방한 이후의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진지하게 숙고하고 논의하였습니다.

교종께서는 여러 장소의 메시지를 통하여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기를 촉구하셨습니다. 우리 주교들에게는 특히 우리가 중산층의 공동체가 되고 번영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커다란 교회가 되었으며,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지는 않아도, 가난한 이들이 감히 교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또 제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없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음을 지적하셨고 이는 분명히 유혹임을 주의하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종님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깨어있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물질주의, 경제제일주의에 짓눌려 어깨를 펴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그들과 연대할 것을 다짐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찾아 나섬과 연대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첫걸음을 떼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기쁨을 우리 자신부터 느끼고 실천하기 위하여 그늘진 구석구석을 찾아보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교회의 대사회적 가르침을 꾸준히 모든 이들에게 펼쳐나갈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반년이 경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이러한 참사를 낳게 한 구조적 비리와 사회적 죄악에 아무런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유가족들만 여전히 한 맺힌 눈물과 탄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며 우리는 이들과 함께 하고 연대할 것입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과 방한하여 들려주신 메시지를 다시 되새기며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여러 지역 교회에서 성직자, 수도자, 신자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는 여정을 시작할 것을 권고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추계 주교회의 총회를 통하여 우리 주교들은 이 땅에 복음의 기쁨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의 생활에 변화와 쇄신이 선행되어야 함을 함께 자각하고 서로 힘을 모아갈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첫째, 우리가 먼저 찾아 나서면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둘째, 우리는 스스로 사치한 생활을 청산하고자 합니다.
셋째, 우리는 주교단으로서 함께 지속적으로 자신의 가진 바를 나누고 ‘프란치스코 통장’에 기금을 마련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넷째, 여러 지역 교회의 쇄신의 여정에서 종합되는 열매를 수합하여 새로운 도약의 기반을 마련할 것입니다.

2014년 10월 30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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