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시행 한 달, 통신사 보조금이 줄어들면서 단말기 구입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는 30일, 시장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법 시행을 통해 이용자 차별이 사라지고 이용자들의 통신소비가 합리적이고 알뜰하게 바뀌고 있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단통법 시행으로 부당한 차별 없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부글부글 끓는 시장의 민심과는 전혀 동떨어진 자화자찬이다.

방통위와 미래부 조사는 이달 1일부터 28일까지 통신3사 가입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하루 평균 가입자는 5만700명으로 9월 평균 6만6900명보다 24.2%나 줄어들었다. 유형을 구분해 보면 신규 가입은 3만3300명에서 1만9100명으로 무려 42.7%나 줄어들었고 번호이동 가입도 1만7100명에서 1만3500명으로 21.9% 줄어들었다. 기기 변경만 1만6500명에서 1만8000명으로 9.5% 늘어났다.

미래부는 “월말로 오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 10월 첫째 주에 33.5%나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넷째 주에 19.4% 줄어든 건 소비 심리가 회복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요금제별 가입 비중을 보면 월 2만5000원에서 4만5000원 사이의 저가 요금제의 경우 19.4%나 늘어났는데 월 8만5000원 이상 고가 요금제는 21.3%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부는 “기기변경 가입자와 함께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 비중이 늘고 있는 것은 지원금 지급에 있어 이용자 차별이 사라지고 있는 결과”라며 “지금까지 기기변경은 신규·번호이동에 비해, 중저가 요금제는 고가 요금제에 비해 지원금을 적게 받았으나, 단통법 시행으로 부당한 차별 없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원금 지급을 조건으로 일정기간 고가 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행위가 금지된 결과”라는 이야기다.

중고폰 가입자도 늘어났다. 9월에는 2916건이었는데 10월 들어 5631건으로 93.1%나 늘어났다. 미래부는 “중고폰 가입자가 늘어난 것도 중고폰으로 서비스에 가입하는 경우,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을 12% 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 시행으로 소비자들이 자신의 통신소비 패턴에 맞는 합리적이고 알뜰한 소비를 선택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야말로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이다.

   
 
 

일단 차별이 없어졌다는 말은 결국 차별 없이 모두가 비싸게 사게 됐다는 말이다. 신규 가입과 번호이동 가입이 줄어드는데 기기 변경과 중고폰 가입이 늘고 있다는 말은 단통법 때문에 단말기 구입을 꺼리거나 관망하고 있다는 의미다. 저가 요금제로 몰리는 현상은 차라리 보조금을 포기하고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수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얼마 안 되는 보조금을 받으려고 고가 요금제를 선택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단통법은 보조금을 투명하게 지급하도록 규제해 단말기 출고가를 낮추도록 하고 보조금 경쟁 보다는 요금제 경쟁을 유도하자는 취지해서 만든 법이다. 그런데 정작 단말기 출고가는 낮아지지 않았고 요금제 경쟁도 벌어지지 않고 있다. 유일한 변화는 음성적인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소비자들 부담이 늘어났고 그 결과 구매가 줄어든 것 뿐이다. 과연 이런 상황을 알뜰한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10월 넷째 주에 들어서면서 가입자가 일부 회복되고 있는 현상은 보조금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살아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성적인 보조금이 늘어나면서 단통법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벌써부터 일부 판매점에서는 방통위 기준을 초과해 페이백을 지급하는 사례도 확인된 바 있다. 결국 단통법이 통신사들 폭리 구조를 보장하면서 이용자 차별을 막는데도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 백설영 사무관은 “저가 요금제 비중이 늘어나고 기기 변경과 중고폰 가입이 늘어나는 건 단말기 보조금이 줄어든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 단통법 시행 때 의도했던 바”라면서 “통신사들이 그동안 번호이동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면서 기기변경 가입자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본 측면이 있는데 단통법 시행 이후 이런 부분이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사무관은 “일부 판매점에서 페이백이 부활하는 조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단통법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볼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통신사 뿐만 아니라 판매점까지 처벌 조항이 생겼기 때문에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사무관은 “일부에게 많이 지급하던 보조금을 조금씩 모두에게 나눠주게 됐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래부 김주한 통신정책국장은 “법 시행 초기 시장이 위축돼 제조사와 유통점의 어려움이 컸으나 시장이 서서히 회복되어 정상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단기적인 성장통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방통위와 미래부는 통신사 폭리 구조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백 사무관은 “자세한 건 4분기 실적이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국장은 “단통법 시행으로 요금과 단말기 가격, 서비스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통신사들이 가입비 완전 폐지(SK텔레콤)나 약정과 위약금을 없앤 순액요금제 출시(KT), 아이폰6 출고가 인하(LG유플러스) 등 요금·서비스 경쟁 방안들을 경쟁적으로 발표했고 중고폰과 해외 중저가폰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제조사들도 출고가 인하에 이어 중저가폰 출시 등을 통해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방통위와 미래부는 정작 단통법 시행 이후 통신사들이 엄청난 폭리를 챙기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가입비 폐지는 내년 9월로 예정돼 있던 걸 앞당기는 것 뿐이고 순액요금제는 약정 할인 대신 기본료를 낮췄을 뿐 결국 기본료+단말기 할부금은 달라진 게 없다. LG유플러스의 제로클럽 역시 미리 받은 보조금을 분할 납부하는 것이라 역시 조삼모사 마케팅 구호일 뿐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장인 조형수 변호사는 “단통법의 문제는 보조금이 줄어들었지만 그 돈을 다시 소비자들에게 돌려 주도록 할 적절한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면서 “통신사들이 요금 인하에 대한 생색만 낸 채 보조금 감소로 발생하는 이익을 대부분 가져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변호사는 “분리 고시 도입과 함께 통신요금의 기본요금을 없애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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