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와 동양사·서양사 등을 망라한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소속 16개 역사학회가 최근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는 30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통해 “역사교육이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란 헌법정신에 따라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주도하에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의 부당한 개입과 간섭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윤병남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의장 겸 역사학회 회장은 “전체 20개 소속 학회 가운데 사정상 참여하지 못한 일부 학회를 제외하고 16개 학회가 공동 성명에 참여한 것은 역사학계로서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며 “이번 성명서는 역사학계의 대다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의회는 성명서에서 “협의회 소속 16개 학회는 물론 한국사회나 국제사회 모두 교과서 국정제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는 데 공감하고 있던 터에,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부실 검정과 발행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하는 현실을 지켜보며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 회원들은 지난 8월 26일 교육부가 개최한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 개선 토론회’가 열린 경기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전환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강성원 기자
 

협의회는 이어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는 5년마다 교체되는 정권의 개입과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도”라며 “역사교육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고 국민에게 통일적 역사의식을 심어준다는 취지와 달리 교과서 서술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협의회는 또 “한국사 국정화는 역사교육의 획일화와 암기 위주의 역사 학습 풍토를 초래한다”며 “21세기 민주·지식정보화·세계화시대가 필요로 하는 폭넓고 다양한 시민의식과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갖춘 인재의 양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소속 16개 학회 공동성명서 전문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중단을 엄숙히 촉구한다.

전국역사학대회협의회 소속 16개 학회는 2014년 제57회 전국역사학대회를 준비하면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부실 검정과 발행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현실을 지켜보며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와 유사한 갈등의 학문적 의미와 역사적 연원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소모적인 갈등을 완화시킬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57회 전국역사학대회의 공동 주제를 <국가 권력과 역사 서술>로 정한 바 있다. 

이런 시점에서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또 다시 큰 충격을 받았다. 본 협의회 소속 16개 학회는 물론 한국사회나 국제사회 모두 교과서 국정제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는 데 공감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는 1974년에 처음으로 도입, 시행되다가 2007년에 이르러 검정제로 전면 전환됐다. 세계적으로도 국정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사상 통제가 심한 북한이나 베트남 등 일부 국가뿐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가의 간섭과 통제가 없거나 최소화된 자유발행제나 인정제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도 무역규모 세계 10위권에 들어선 OECD 국가 대한민국이 국정제로 되돌아간다면 나라 위신의 추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교육의 획일화, 암기 위주의 역사 학습 풍토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21세기 민주사회, 지식정보화사회, 세계화시대가 필요로 하는 폭넓고 다양한 시민의식과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갖춘 인재의 양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는 5년마다 교체되는 정권의 개입과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제도이다. 이런 까닭에 역사교육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고 국민에게 통일적 역사의식을 심어준다는 취지와 달리 교과서 서술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는 이상과 같은 점 등을 고려해 1992년에 이미 교과서 국정제가 위헌은 아니나 바람직한 제도도 아니란 점을 판결한 바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한국사회에는 한층 성숙된 국민의식과 더욱 높아진 나라의 위상을 반영하듯 국정화에 반대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광범하게 형성되어 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대다수 언론들이 국정화에 대해 반대 혹은 우려를 표명했고, 한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국정화 반대 성명서를 연이어 발표했다.

이에 본 협의회 소속 16개 학회는 지난 8월 28일 한국사 분야 7개 대표 학회가 발표한 성명서((「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중단하라」)의 취지를 기본적으로 지지하면서 아래와 같이 교육부에 요구한다.

1. 역사학계·역사교육계의 중론과 국민적 공감대를 존중하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1. 역사교육이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란 헌법정신에 따라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주도하에 안정적,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외부의 부당한 개입과 간섭을 차단하라.

1. 역사교과서의 개편·검정 주기를 정례화하여 역사교과서 집필·검정의 내실화를 기하라.

2014년 10월 30일 

<전국역사학대회 협의회 소속 16개 학회>

경제사학회, 도시사학회, 동양사학회, 부산경남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역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과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미술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사학사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호남사학회, 호서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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