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훼리호가 침몰헌 진짜 이유가 뭐라고들 생각허십니까? 왜 무고헌 수십 명의 위도 주민허고 수백 명의 외지인들이 차가운 바다에 빠져서 목숨을 잃었다고들 생각허십니까? 저는요, 무능허고 무책임허고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대한민국 정부허구요. 돈 밖에 모르고, 출세 밖에 모르는 정신이 썩어빠진 우리네 국민성 탓이라고 생각헙니다. 씨발 사고 발생 나흘째인 오늘까지도요, 승선자가 멫 명이고, 실종자가 멫 명인지도 모르고 있고요. 방금 전에 대관이 동생이 했던 말마따나 지금 시신인양 작업은 물론이고 선체 인양작업도 개판오분전 입니다. 그런데 경찰허고 검찰은 엠헌 최 선장허고 영범이 아버지 등 승무원들이 살아서 도망쳤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지들 잘못을 감출라고 엠헌 승무원들헌테 덤터기를 씌워놓고 천하에 몹쓸 범죄자로 매도허고 있는 것인데, 이 나라 언론은 말도 안 되고 현실성도 없는 정부 발표나 대책만 그대로 받아서 앵무새마냥 조잘대고 있고, 일부 국민은 허위 제볼 혀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승무원 가족들은 참말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흐으윽, 아버지!… 엉어어어!…”

임영범의 곡소리가 커지자 잠시 입을 닫고 숨을 고르던 김만수가 다시 열변을 토해냈다. 

“이런 개판오분전인 나라를 어떻게든 뜯어 고쳐야 될텐데, 국가를 바로 세우고, 썩어빠진 국민성을 바꾸는 일이 무명잡초나 다름없는 우리 위도인 멫 사람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이 나라 국민 수 만명, 수백만 명이 나서도 쉽지 않은 일이고, 상황에 따라서는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내놓고 덤벼도 될똥말똥헌 일인데요. 그렇게 어려운 일이니 큰 욕심들 버리고 우선 우리 위도인들이 헐 수 있는 쬐깐헌 일부터 하나하나 시작을 혀봅시다. 요새 우리 위도 사람들 중엔 사람으 탈을 쓰고 혀서는 안 될 일들을 겁대가리 없이 허는 놈들이 적지 않습니다. 내 핏줄이, 내 동네 사람이 참변을 당했는데도 이런 난리 통에 지 혼자만 살것다고 꼴값을 떠는 놈이 한둘이 아닙디다. 정칠 허는 놈은 정칠 허는 놈대로, 사업을 허는 놈은 사업을 허는 놈대로, 지들 눈앞에 보이는 쥐꼬리만헌 이익에 눈이 멀어 벨의벨 육갑을 다 떨고 있는데요. 씨부랄, 이 동네 저 동네서 오늘도 줄초상을 치르고 있는데도 그러고들 있으니 참말로, 흐으윽!… 엉어어어!…”

김만수는 다시 또 울부짖었다.

“정치허는 놈은 이리저리 낯짝을 들이밀며 표밭을 다지고 있고요, 돈에 눈이 먼 놈은 푼돈이라도 나올만헌 구멍이 보이면 죽자 살자 달려듭디다. 저는 이런 우리 위도 사람들 의식부터 뜯어 고쳐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허는 말인데, 위도활빈당은요, 위도 주민들의 잘못된 의식을 뜯어 고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해봅시다. 그러면서 서해훼리호 참사가 지대로 수습될 수 있도록 앞장을 서서 유가족들을 도웁시다. 그러고 추운 날씨에 사고 현장에서 생고생을 허고 있는 군인들, 민간 잠수사 등 외지인들에게 따뜻헌 커피 한 잔이라도 끓여 주면서 진한 위도의 인정을 보여 줍시다. 그렇게해서 서해훼리호 참사의 수습을 잘 마무리헌 다음에요. 위도의 현안 중에 현안인 새만금 방조제를 쌓는 국책사업에 뭐가 잘못됐는지 공부도 좀 해보구요. 위도 주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해야 옳은 건지 연구도 좀 해봅시다… 여러분들 중에 제 처갓집이 부안 백산이라는 걸 아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처갓집이 백산이라서 저는 그간 동학의 성지라는 백산성에 수십 번 올라갔습니다. 그러면서 깊이는 없지만 동학이 뭔지도 알았고요. 전봉준 장군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방에 있는 두 분 형님허고 동생들도 기회가 되면 지금으로부터 99년 전에 봉기했던 동학 농민군들의 혼백이 서려 있는 백산성에서 올라가서 우리네 인생살이도 한번 성찰 해보구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내 고향과 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될지 고민도 한번 해보셨으면 헙니다. 내 목숨, 내 가족이 소중허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총칼 앞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나라가 위태로우면 너나 할 것 없이 떨치고 일어나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됩니다. 위도활빈당 구성원들은 제폭구민이나 보국안민의 구호를 외치며 목숨을 걸고 나섰던 그 옛날 동학 농민군들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이핼 해볼려고 노력을 하고, 올바르게 계승해 보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된 사람들로 짜봤으면 헙니다. 제가 비록 학력을 보잘 것 없습니다만 주워들은 풍월은 좀 있습니다. 동학의 여러 가지 구호 중엔 이런 구호도 있다고 헙디다. ‘권귀진멸’이라고! 그렇지요, 세상을 어지럽히는 권세가와 탐관오리들을 모두 없앤다는 뜻인데요. 아까 희오 말마따나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국민의 공적 칠백명을 몰아내는 일은 서해훼리호 참사를 겪다 보니 정말 필요해 보입니다. 근데 이 일은 결코 간단헌 일이 아닙니다.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상상을 할 수 없는 희생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제가 나서서 한 번 시도해 볼랍니다. 제가 전국적인 규모의 활빈당을 한 번 만들어 볼 테니, 위도에서는 활빈당 부활의 불씨만 좀 지펴 주시죠. 순신이 형님은 여기 있는 선후배님들과 위도활빈당을 잘 이끌어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위도 주민들 의식을 바로잡고, 위도의 당면 과제들을 하나하나 처리해가면서 위도를 망치고 있는 놈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는데 앞장을 서주십시오. 저는 위도활빈당 출신으로 이 나라의 권귀 칠백명을 타도허러 나설테니 말입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동학농민혁명군 제1차 봉기의 표어였던 ‘권귀진멸(權貴盡滅)’을 소개하면서 김만수는 전국적인 규모의 활빈당을 만들어 보겠다고 천명했다. 그의 비장한 눈빛을 바라보면서 좌중은 아무런 말들이 없다. 이순신은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엉겁결에 위도활빈당의 대표를 맡은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는 고향 후배들 앞에서 이미 수락한 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면 좌중의 맏형으로서 꼴이 참 우습게 될 성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격포에 있는 아내 강신자는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나이 어린 자식들이 아버지인 자신을 어떻게 이해를 해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또한 현재 방안에 있는 여러 동생들과 친구 오세팔의 진짜 의중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려 좋다. 내가 앞장을 서마! 모임의 이름을 위도활빈당으로 허자! 죽는 그날까지 벤치 말고 우리 한번 내 고향 위도를 위해 단 한 가지 일이라도 지대로 히볼 수 있는 모임을 한 번 멩글어보자! 자, 건배!…”

짧은 순간이지만 긴 고민 끝에 드디어 결단을 내린 이순신이 이렇게 건배 제의를 했다. 모두들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이순신의 술잔에 갖다 댔다. 그런데 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의 손은 저마다 조금씩 떨리고 있는 듯 했다. 김만수는 전국적인 규모의 활빈당 창립을 준비한다고 해서 위도활빈당엔 일반회원으로만 가입하기로 했다. 조희오는 위도활빈당의 사무국장을, 박문수는 간사를 맡기로 했다. 현재 방안에 없는 인물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영입을 해나가기로 합의를 했는데, 우선 신궁자의 남편 장영길을 고문으로 위촉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 써글놈이 시방 무신 소리를 허는 것여 잉! 혹시 너 머리가 헤까닥헌 것 아녀? 순신이 너 고런 미친 소릴 헐꺼믄 언능 우리 집이서 나가라!…”

장영길을 위도활빈당 고문으로 위촉하려고 나선 이순신과 김만수 앞에서 신궁자가 목청을 높였다. 그미는 남편 장영길은 죽어도 고문을 시킬 수 없다며 성깔을 있는 대로 다 부렸다.  

“아니 누나, 누가 영길이 형님을 잡어 쥑일까봐서 이러요?”

“야, 부안갱찰서로 끌려가가꼬 다행히 이틀 만에 풀려났응께 망정이지 하마트먼 멫 달간 콩밥을 먹을 뻔 힜잖여! 그맀으믄 인자 정신들을 챙겨야지 이것이 무신 뻘짓이여?… 김동필이허고 김두길이 이 냥반들이 여객선 사고 대책위원횐가 무신가를 맹글었응께 고 단첼 믿고 거그다 위도일을 멭기믄 되는 것이지 너그들이 무시 잘났다고 네락읎이들 나서가꼬 모임을 또 맹근다는 것여? 비싼 밥 처묵고 씨잘데기 읎는 소릴 헐꺼믄 언능 우리집이서 나가랑께!… 순신이 너 객포 방파지서 에편네 좌판 장사 시켜가꼬 돈 꽤나 벌었다고 허던디, 고런 일을 헐라믄 너 같이 처묵고 살만헌 사람들이 혀야지 허고만은 사람 중으 묻허러 똥줄 찢어지기 가난헌 우리 두성이 아빨 끌어들이는 것이여, 잉?…”

장영길은 입술을 깨물며 이순신과 신궁자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다. 아내 신궁자가 쌍수를 들고 반대하고 있는데다 만 이틀 동안 부안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많은 터라 그의 고심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어이 순신이!” 

“네, 형님!”

“미허네만 난 그 모임서 빼주소, 내가 헐 일은 아닌갑네!…”

장영길이 이렇게 일언지하에 위도활빈당의 고문직 수락을 거부하자 이순신은 매우 실망이 큰 듯 잠시 멍한 허탈감 속에 빠진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장영길에게 고문을 수락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신궁자네 집에서 나왔다. 고개를 떨구고 터벅터벅 윗집 이윤복네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이순신의 발자국을 김만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따르고 있다.     

“사돈 안에 지시오?”

이순신이 집주인인 이윤복이 집안에 있냐고 물었다. 안주인인 박양란이 마루로 나왔다.

“종찬이 아빤 아침 일찍 사고 현장에 나가가꼬 아직까장 안들어 왔는디요. 그나지나 사돈 갱찰서 끌려가서 고생 많었지라우?”

“아녀라우, 편이 푹 쉬다 나왔고만요.”

“오늘 정심 먹음서 아랫집 영길이 아자씨 야글 들어본께 갱찰서 유치장서 고생 많이 허고 왔다고 허던디, 사돈, 참 든든허요!”

“아니 사돈댁, 지가 무시 든든히라우?”

“이런 난리통으 나서서 객선 선사는 물론이고 정부를 향해 참말로 위도사람들 본때를 보여 준 사람이 바로 사돈아니우. 사람들이 대놓고 말은 안 히도 위도에 사돈 만헌 인물이 없다고들 생각허고 있응께 먼일을 허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되 지발족족 몸은 조심허시오, 잉!”

이순신은 눈물을 글썽였다. 방금 전 신궁자네 집에서 느꼈던 좌절감이 봄눈 녹듯 녹아내리는 듯 했다.   

“사돈댁, 윤복이 사돈헌티 헐말이 있어서 지가 이렇기 찾어왔는디요. 만수 야허고 삼복횟집 가서 쏘주나 한 잔 허고 있을턴게 만약으 다섯시 안에 집이 들어오믄 글로 쪼까 오시라고 전해 주시오, 잉!”

이순신은 안사돈 박양란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고 이윤복의 집을 나섰다.  

“아니 저 개새끼들이 최 선장허고 영범이 아부질 찾는다고 정금까지 뒤지러 가는 모양이네 잉!”

황혼녘에 조금치 쪽 정금다리를 건너고 있는 5명의 경찰을 보며 이순신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씨부럴 새끼들이요, 승무원들을 찾는다고 동이 트기 전부터 위도 구석구석을 뒤지고 있던디요. 아침 식전엔 딴치도 문수네 집에 가택수색을 허러 왔더랑께요!”

“무시라고야? 갱찰이 어저끄 장례를 치른 초상집까지 뒤지러 찾어 왔다고? 그것도 새복부텀?”

“네, 그래서 저 허고 한판 붙었는데요. 형님, 저 새끼들을 위도에서 하루라도 빨리 쫓아낼 방법이 없을까요?”

“대그빡 뚜껑이 열리고 배창시가 뒤틀려도 참어야제, 우덜이 어찌끼 허것어!…”

“그렇긴헙니다만 경찰허고 검찰 이 개새끼들, 참 해도해도 너무허는 것 같어서 그러네요.”

미간을 잔뜩 찡그린 김만수는 이순신을 따라 벌금리 아랫거티의 맨 끝집인 삼복횟집으로 향했다. 

“아니 저 새끼들은 또 으딜갔다 기어오는 것여?”

삼복횟집 좌편 고샅길에서 빠져 나오는 4명의 경찰을 보고 이순신이 하는 말이었다.  

“암만해도요, 저 새끼들이 도장금 해수욕장에 다녀오는 것 같은데요. 형님, 저 맨 앞에 서 있는 저 새끼 잘 아시오?”

“김 순경 저 새끼말이냐?”

“네, 듣자허니 저 새끼가 격포어선신고소 있다가 위도로 들어 온지가 얼마 안 된다고 허던데요?”

“저 개새끼, 격포 있을 때 선주들 꽁술 무진장 처먹었다. 객포선주들은 말헐 것도 읎고, 여그 위도 선주들 중에도 저 새끼헌티 돈 뜯긴 사람이 수두룩헐 것인디, 저 도독놈으 새낄 언진가는 꼭 멕아지를 따야 헐턴디, 허이구 참말로!…”

3명의 전경을 이끌고 삼복횟집 대문 앞을 지나고 있는 김 순경은 이순신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삼복횟집 우측으로 나 있는 벌금초소 쪽 비탈길을 오르고 있는 그는 아무래도 도피 중인 승무원들의 은신처를 찾으려고 오잠에 가는 모양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냐, 순신이허고 만수 아니냐? 호랭이도 지말허믄 온다뎅 꼭 그짝이네, 잉!”

삼복횟집 마당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평상 위에서 김동필과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심사곤이 이순신과 김만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병어회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김동필과 심사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너그들 술 한 잔 허게 열로 올라와 앉어 보니라!”

김동필이 명령조로 이순신과 김만수에게 술자리에 동석하자고 권했다. 이에 이순신과 김만수는 마지못해 평상 끝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야 이놈들아, 그렇기 삐딱허니 펭상 끝에 걸터 앉지 말고 후딱 여리 올라와서 술상 앞에 지대로들 앉어 보랑께!…”

김동필이 이렇게 호통을 치자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잠시 고심을 하던 이순신이 일어났다.

“야, 만수야, 고만 나가자!”

굳은 안색으로 평상 끝에 살짝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던 김만수가 이순신을 따라 슬며시 일어서는 참인데, 심사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으따 이런 호리아들놈들이 있나, 으디 으른 앞으서 버르장머리 읎이 이러는 것이여, 잉?”

난데없이 쌍욕을 퍼붓던 심사곤이 눈알을 곤두세우고 씩씩거리며 이순신과 김만수를 노려보았다.

“지도 나일 처먹을 만큼 처먹었응께요, 얼라 취급 고만허시고, 으른 대접들 받고 싶으믄 지발 으른들답게 행동을 허시오, 잉!”

이순신도 눈알을 곤두세우고 심사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심사곤이 잽싸게 달려들어 이순신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야 이 X만 새꺄, 니가 시방 날 훈계허는 것이여? 이런 학십읎는 놈으 새낄 봤나! 이 새끼가 객포서 돈 좀 벌었다뎅 간뎅이가 부어가꼬 배 밖으로 튀어 나온 모양이네 잉?”

심사곤이 평상 밑에 선 이순신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윽박질렀다. 하지만 이순신은 눈을 딱 감고 죽이려면 죽이라는 식으로 심사곤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야 이 X만 새꺄, 니가 위도활빈당 대표람서?”

심사곤의 입에서 ‘위도활빈당’이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자 이순신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놀란 토끼눈이었다. 

“에라이 X이나 건빵이다 새꺄! 위도 살지도 않는 새끼가 무신 자격으로 단첼 멩글어, 엉?”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있는 이순신을 향한 심사곤의 악담은 계속 쏟아졌다.

“아직 마빡에 피도 안 마른 희오허고 문수 그 새끼들, 그라고 승객들을 내펭게치고 도망친 천하으 호리아들놈 임사공이 아들 임영범이, 너그들이 위도 주민이냐? 너그들이 새끼들아, 위도가 싫다고 육지로 주솔 옮긴지가 언진디!… 그라고 야 이 돌대가리들아, 양대관이 고 새끼가 위도놈인 줄 아냐? 고놈도 임마,  위도놈이 아녀. 전주다 대궐 같은 집을 읃어 놓고 지 에편네 보내서 새끼들 겔치고 있다고 새끼들아!…”

이순신은 할 말이 없었다. 우선은 대리 조희진네 집에서 비밀리에 결성한 위도활빈당 얘기가 언제 누구를 통해 김동필과 심사곤의 귀로 흘러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애가 탔다. 그 다음은 약 1시간 전에 창립된 위도활빈당의 창립 멤버 7인 중 오세팔 외에는 모두가 주소지를 육지에 두고 있다는 점이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심사곤은 김만수의 현 주소지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어이 조카, 얼른 그 손 놓으시게!”

30대 중반의 김만수가 60대인 심사곤에게 존대도 아니고 하대도 아닌 어투로 명령을 했다. 작은딴치도 출신인 심사곤은 김만수 보다 24세가 많은 올해 나이 60세다. 이렇게 심사곤은 나이가  위지만 집안 족보 상 김만수의 조카뻘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순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을 어서 놓으라’는 김만수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씨팔, 순신이 형님 목에서 당신 손을 얼른 떼란 말여!”

김만수가 더욱 강경한 어투로 다그치자 이순신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심사곤의 오른손은 심하게 떨었다. 이때 김동필이 끼어들었다.

“어따 씨발, 콩 가루 집안서 무신 개족볼 따지고 그릿싼다냐?”

김동필의 취중진담에 김만수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뭐라구요? 콩가루 집안서 무슨 개족볼 따지냐구요?”

“그려 이눔아, 너그 아부지가 살아 생전에 우리집서 머슴을 살다피시험서러 배를 탔다. 그리서 임마 내가 에러서부텀 너그 집구석으 내력을 속속들이 다 꿰고 있는디, 니눔도 잘 알것지만 너그 집안은 대대로 쌍놈으 집안아녀! 씨발 그런디 시방 무신 개족볼 따지고 지랄이여?…”

이렇게 막말을 내뱉은 뒤 김동필이 평상에서 일어섰다. 술이 취한 그는 몸을 약간 비틀거리며 평상 아래에 있는 김만수의 멱살을 잡으려고 팔을 쑥 내밀었다. 이때 장골(壯骨)인 김만수가 김동필의 오른손 팔목을 낚아채더니 꽉 틀어쥐었다. 그러자 김동필은 움쩍달싹도 못했다.   

“아니 이 빙신 새끼가 광주서 사람을 총으로 수도읎이 쏴 쥑였다뎅 인자는 씨발 고향 으른들까지 쥑일라고 이러는 것여 뭣여 시방?”

이순신의 멱살을 잡고 있던 심사곤이 이번엔 김만수의 멱살을 틀어쥐며 고약스럽기 짝이 없는 악담을 뱉어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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