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소격동’은 음악만이 아니라 뮤직비디오까지, 그것도 아이유가 부르는 버전과 서태지가 부르는 버전을 같이 보면서 들을 때 더 많이, 더 깊이 느껴지도록 세심하게 짜여진 곡이다. 거기에다 ‘크리스말로윈’까지. 이 두 곡의 뮤직비디오는 모두 ‘실종’에 대한 영상 텍스트이다. 첫사랑, 할머니, 그리고 어린 시절 안에서 불현듯 사라져 버린 것은 무엇일까?

‘소격동’도 두 가지 버전이듯 ‘크리스말로윈’도 밴드 버전과 시네마 버전 두 편으로 만든 까닭은 음악만큼 영상에도 메시지를 눌러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격동’도 ‘크리스말로윈’도 모두 억압과 통제가 지배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추억 앨범처럼, 하나는 잔혹동화처럼.

‘소격동’ 뮤직비디오는 그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는 세대들에게는 그저 기성세대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보일 것이다. 마치 <건축학개론>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첫사랑 이야기처럼. 또는 <응답하라 1994>에서 어마어마한 팬덤으로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던 아이돌이 스타가 되기 전의 추억 앨범처럼.

라디오에서 올림픽이며 녹화사업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온다. 소년과 소녀가 그 방송을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에서 함께 듣고 있다. 교련복 차림의 소년은 독서실에 들어가려다 돌아서서 나와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다 넘어져 다친 모습으로 소년이 탄 택시에 다급하게 올라탔다. 4:3 비율의 화면도 그렇고, 골목 분위기도 그렇고, 차림새도 그렇고, 이 장면은 과거의 한 때, 정확히는 80년대 후반의 풍경이다.

그러니까 1992년 <난 알아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3인조 댄싱 아이돌로 등장하기 전, 록그룹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기 전, 서태지가 아직은 교복 입은 학생이었던 시절 어름쯤이랄까.

   
 
 

서태지는 자신이 이 노래를 만들 때 정치를 논하려고 해서는 아니지만 80년대의 서슬 퍼런 시대를 설명하지 않고는 이 소격동이라는 노래를 표현하기 힘들다보니, 뮤직비디오에 약간 이야기들이 들어갔을 뿐 실제로 노래 자체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정말 예쁜 마을에 대한 추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약간’이 하나도 아니고 두 편의 뮤직비디오에, 그것도 각각 아주 정교하게 편집과 시점, 화면비율까지 염두에 두고 살짝살짝 다르게 편집된 영상에 담긴 ‘이야기’는 그 시대를 현재로 소환하고, 고운 추억이 아니라 저릿한 회한으로 욱신거리게 만든다.

먼저 공개되었던 아이유 버전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이던 것이 나중에 공개된 서태지 버전의 뮤직비디오에는 보이지 않기도 하고, 같은 장면이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도 하는 건 그저 좀 다른 변주라기보다는 둘 사이에 숨어있는 퍼즐을 맞추어야 온전해지는 과거, 그 과거를 제대로 기억해낼 때 새삼 의미를 찾게 되는 현재와도 같다.

교련복을 입은 소년, 모든 고등학생이 학생회가 아니라 ‘학도호국단’이라는 군대식 조직으로 묶여 있던 그 시절의 그 복장으로 독서실 문을 나서서 만난 소녀는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다. 바람개비를 들고서. 그러나 신나게 노는 것이 아니라 불안한 모습으로 택시에 올라탄 소녀의 무릎에 난 상처는 자유롭기 위해서는 쫓기고, 넘어지고, 다쳐야만 했던 저항의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

가정폭력 때문이라면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집이 아닌 바깥에서 다쳤고, 그 바깥세상에서 무언가 두려운 것을 피해 소년이 탄 택시에 탔다. ‘저 앞까지만 태워주세요’라는 말은 ‘누군가로부터 저 좀 숨겨주세요’라는 말과도 같다.

아이유 버전의 뮤직비디오에서는 그 누군가 대신 소독차가 뿜어대는 하얀 연기가 택시 앞을 달리고 있다. 옷차림으로 짐작하건데 여름도 아닌 계절에 거리에 퍼져나가는 하얀 연기는 가두시위를 하는 학생들을 괴롭히던 최루탄과 페퍼포그를 떠올리게 한다.

   
 
 

잠든 가족 몰래 라디오를 꺼내 듣는 소녀의 비밀스런 모습, 그 방송을 함께 듣는 소년과 만나는 골목길에 붙어있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라는 영화 포스터는 영상 안의 소격동을 암울한 시대였던 80년대 전체로 넓힌다. 그 동네 어딘가에는 기무사가 있고, 자유를 노래하는 사람들이 쫓기고, 잡혀가고, 다치고, 갑자기 사라져 버리던 시대.

교련복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소녀가 난간 너머로 늘어뜨린 종이는 사람들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고 그 끝에는 종이학이 달려있다. 서로서로 팔이 이어진 사람들 모양으로 오려진 종이는 스크럼을 짜고 거리에 나서던 시위대의 모습처럼도 보인다. 소녀는 그 끝에 달린 종이학에 감춰진 메시지를 누군가 받아주길 기다리지만, 다들 무심히 지나가는데 소년은 돌아서서 그 학을, 진심을, 메시지를 받아든다.

‘야간등화관제훈련’이라는 통제를 벗어나 불빛이 모두 사라지는 밤에 만나자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 밤, 서태지 버전의 뮤직비디오에는 사람들 띠를 드리우고 소년을 기다리는 소녀가 있는 골목길에 헬멧을 쓰고 우르르 몰려가는 진압대, ‘백골단’들이 보이고, 소녀가 있던 자리에는 사람들 모양의 띠만 남아있다.

사이렌이 울리고, 불이 꺼지고, 소녀의 집은 난장판이 되었고, 소녀는 사라졌다. 그리고 2014년, 그 빈집에서 서태지가, 아이유가 그 시절을 되짚어 본다.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다. 과거의 장면은 4:3으로, 현재의 연주 장면은 16:9로 비춰보이던 영상이 온 도시에 사이렌이 울리며 불이 꺼지는 장면에서는 16:9로 확장된다. 그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하듯이.

물론 ‘소격동’ 영상을 꼭 이렇게 보아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발신자가 그 시대에 학교를 뛰쳐나가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던 소년이었고, 거리가 아닌 무대에서 ‘시대유감’을 노래하며 제도와 체제의 틀을 비판해온 서태지이기에, 앨범 하나 뮤직비디오 하나 마다 의미를 꾹꾹 눌러 담아온 아티스트이기에 음악과 영상에 담긴 메시지를 찬찬히 새겨보게 될 수밖에.

그러니 사이렌이 울려퍼지고 불이 꺼진 세상에서 ‘크리스말로윈’의 경고를 가벼이 듣지 말자. “긴장해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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