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국가안보를 내세워 정부 부처가 다루는 개인정보를 당사자에게는 통보하지 않은 채 열람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정보위 소속 신경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정원이 지난 4년 동안 국가안보 관련 수사를 목적으로 해서 국민 동의 필요 없이 주민등록등초본 8만 3000건을 열람했다고 밝혔다.

신 의원은 28일 비공개로 진행된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관련 문제를 제기하면서 국정원이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개인 정보를 열람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의원에 따르면 안전행정부는 주민등록등초본, 지방세 납세 증명 등의 개인 정보를 다루는데 국정원이 국가 안보를 목적으로 자료 열람을 요청하면 안전행정부가 승인을 해주고 행정정보 공유시스템을 통해 열람했다. 일례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녀 정보를 캐기 위해 이 같은 정보를 활용했을 것이라는 게 신 의원의 주장이다. 

안전행정부 행정정보공유과 관계자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정원이 관련 사무 정보(주민등록등초본)를 전자정보법과 국정원법 등 법률적 근거를 바탕으로 열람을 요청하면 행정적인 절차를 통해 승인을 해준 것”이라며 “안전행정부가 국정원에 주민등록등본 정보 열람을 승인해 준 것은 맞지만 법률적 근거를 가지고 있어서 무단 열람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 각 부처에 대한 국정원의 개인 정보 열람이 무서운 이유는 개인정보 제공 당사자도 모르게 국정원 수사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안전행정부는 주민등록등초본 등의 자료 열람을 승인해줬는데 교육부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증명서, 외교부는 여권 정보, 법무부는 출입국 관련 서류, 국토부는 자동차 등록증, 병무청은 병적증명서 등의 개인정보를 다루고 있어 국정원이 국가안보를 내세워 이 같은 자료 열람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의 출생지, 해외 행적, 병역 여부 등 민감한 정보를 국정원이 수사를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하면 마음먹기에 따라 열람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카카오톡 압수수색 사건도 사후 당사자에게 통지를 하지 않아 논란이 커졌는데 국정원은 국정원법 등을 근거로 국가 안보라고 둘러대면 당사자에게 통지할 의무도 없이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정원이 어떤 정보를 열람하고 이를 활용해 수사했는지는 국정원만이 알고 있다. 안전행정부가 국정원에 자료 열람을 승인해준 주민등록등초본은 8만 건이 넘었는데 8만 명에 이르는 개인 정보가 과연 국가 안보 수사에 활용됐는지도 의문이다. 대선 당시 선거 개입 의혹을 받았던 국정원의 행태로 봤을 때 정권에 유리한 개인정보를 열람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국정원 전경
 

행정정보공유시스템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국가 정보기관이 손쉽게 개인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제도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행정정보공유시스템 시작 추진 단계에서 손형길 행정정보공유추진단 부단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보기관이나 경찰 수사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열람할 경우에도 영장 청구 등 법에 근거해서 처리되기 때문에 과거나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행정정보공유시스템은 국정원의 손쉬운 정보 제공 창구로 전락했다. 

신경민 의원실 관계자는 "행정공유시스템을 통해 국정원은 개인정보 제공자의 사전 동의 필요없이 정보를 들여다보고, 시민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열람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3년 동안 국정원의 직무 수행으로 인한 국가배상급 지급액은 791억 원에 달한 것으로 나왔다. 모두 18건에 515명 원고에 해당되는 액수다. 위장간첩 이수근 간첩사건은 손해배상액이 42억여 원에 달했다.

신 의원은 "최근 2심까지 무죄판결 받은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에서 보듯이 또 새로운 배상이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과연 과거에 비해 국정원이 국민 앞에 얼마만큼 당당하고 떳떳한가 반문해보게 된다. 적어도 피해를 가한 국가기관이 피해자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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