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자회견에는 기자가 얼마나 올까?’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기자회견문을 쓰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다. 기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려가며 꼭 와달라는 읍소도 해봤고, 기자회견에 기자가 오지 않아 참여자들이 시민 기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카카오톡 압수수색 기자회견은 달랐다. 자료를 미리 주면 단독으로 크게 다루겠다는 언론사도 있었고, 기자회견 현장은 기자와 카메라로 가득 찼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는 뉴욕타임즈 인터뷰를 비롯하여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TV에서만 봤던 열띤 취재경쟁을 몸으로 느끼며 사이버 사찰에 대한 관심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의 “도를 넘었다”는 한마디에서 시작된 사이버사찰은 검찰과 다음카카오가 거짓말을 하며 문제를 키웠다.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는 잔다르크라도 되겠다는 것인지 “감청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실정법 위반으로 문제가 된다면 … 벌은 제가 받을 것”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내내 정보주체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에 둘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난 10월 9일 정진우 부대표는 다음카카오와 검찰에 “압수수색 집행에 협조한 과정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밝힐 것을” 요구했다. 카톡은 권리침해신고센터가 홈페이지 구석 찾기도 어려운 곳에 있어 질의하는데 적잖은 고생을 했으나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제대로 밝힐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런데 사이버사찰을 항의하기 위해 다음카카오 본사에 항의하러 간 시민들에게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정진우씨에게 다 알려드렸다”며 거짓말을 했다.

이석우 대표의 ‘벌을 받겠다’는 발언 이후 쟁점은 흐려지고 있다. 검찰총장이 “열쇠공을 불러서 직접 문을 따는 것처럼” 감청을 감행하겠다고 밝힌 뒤, 감청이 더 시급하고 본질적인 문제인 양 공이 감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10월 1일 기자회견에서 제기한 문제는 ‘압수수색’이지, ‘통신제한조치(감청)’가 아니었다. 메시지를 송수신이 완료되기 전에 감청하는지, 송수신이 완료된 후에 압수수색 하는지에 대한 기술적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핵심은 압수수색이건 감청이건 대화내용 자체를 검찰이 요구하면 받아볼 수 있고, 이를 악용해 무분별한 사찰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통계를 봐도 압수수색 문제는 감청보다 심각하다. 다음카카오는 2014년 상반기 요청받은 감청영장이 61건, 압수수색 영장은 2,131건이라고 밝혔다.

사태를 악화시켜 온 수사기관의 태도는 적반하장이다. 검찰은 사이버사찰 문제를 쟁점화한 정진우 부대표에게 괘씸죄를 적용해 ‘보석취소 청구 신속결정 촉구 의견서’를 제출했다. “정당한 과학 수사에 대해 근거 없는 비난으로 국가적 혼란이 야기되고 선량한 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검찰은 정진우의 카톡 내용을 보수언론에 따로 공개하기까지 했다. 정보주체들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메신저의 모든 대화내용을 과도하게 압수수색해 온 것에 대한 반성,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프라이버시권 및 통신비밀보호를 내팽개쳐 온 것에 대한 사과는 없다. 오히려 개인의 대화내용을 본인 동의 없이 언론에 공개하면서 자신들이 정보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제 정진우 부대표는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과 메신저 대화를 주고 받은 게 후회스럽다”는 한탄을 듣는 메신저 대화 기피대상이 돼버렸다.

사이버망명이 300만명을 넘었다. 자국 브랜드 선호도가 유난히 높아 가전제품, 자동차,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외국산이 끼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 이례적인 현상이다. 많은 이들이 카카오톡과 작별하고 싶지만 이미 수 십 개의 단체카톡방과,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관계망 때문에 결국 양다리를 걸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도 부지기수다. 이 혼란을 멈추기 위해서는 정보주체인 시민들이 자신의 정보가 광범위하게 수집되고 남용되는 것을 스스로 알고 통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 제도적 대안과 이를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에 대한 압수수색은 형사소송법, 감청과 ‘통신사실확인자료제공’은 통신비밀보호법, ‘통신자료제공’은 전기통신사업법의 적용을 받는다. 디지털시대에 법이 뒤쳐지면서 통일적으로 규율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메일, 메신저에 일반적인 압수수색과 동일한 요건과 절차가 적용되면서 정보인권은 심각하게 침해받는다. 수사권 남용에 맞서 수사기관의 사이버 사찰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수사기관의 정보취득을 엄격하게 제한된 범위에서만 허용되도록 통제하는 '사이버사찰금지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오랜 기간 정보인권 운동을 해왔던 단체들과 시민사회가 마음을 모아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을 꾸렸고, ‘1만인선언’ 등 변화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 오진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사이버사찰은 메신저만이 아닌 네비게이션이나 어플 등 스마트폰을 둘러싼 모든 공간을 둘러싼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정보기술 발전에 비해 정보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더디다. 쟁점과 대안을 고민하기보단 특정인과의 메신저 대화 단절과 망명을 선택하고,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소환장은 내용도 확인되지 않은 채 찢겨진다. 그 속에 카카오톡 압수수색 사실관계 확인서가 섞여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애인과 나눈 내밀한 대화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단체카톡방에서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 죄처럼 여겨질 필요가 없는 세상, 감시받지 않는 세상은 망명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이버사찰긴급행동(antigamsi.jinbo.net)에서 진행하는 1만인 선언은 망명을 넘어 감시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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