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행학습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실행된 지 거의 두 달 정도가 지났다(법률 원문 보기). 이 특별법은 특별한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정책평가와 함께 이 법의 존폐 여부가 함께 결정되어야 한다. 만약 이 법이 원래 목표하고 있는 법익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규제로 폐지되어야 하며, 도움이 되고 있으나 방해받고 있다면 추가 입법을 통해 보강해야 한다.

이 특별법은 1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 목적을 달성하고 학생의 건강한 심신 발달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교육기본법’에서 정한 교육 목적은 무엇일까? 인격의 도야,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 인간다운 삶의 영위,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이바지 하는 것이다(교육기본법 2조). 그리고 특별히 학교 교육의 경우는 학생의 창의력 계발,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8조)

   
학교 정규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원행 버스에 타기 위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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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규정된 교육과정보다 앞서서 배우거나 가르치는 선행교육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만약 이를 지나치게 고집하면 교육과정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모두 선행교육으로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행교육은 사실 상대적 개념이다. 탁월한 학생이 정규교육과정을 한 두 학년 정도 앞서서 학습한다고 이를 선행교육이라 할 수 없다. 이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불과하다.

문제가 되는 선행교육은 교육과정이 아니라 학생의 발달수준, 학습 수용능력을 앞선 교육이다. 이런 선행교육은 학생의 수용능력을 벗어나 심신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왜곡된 형태로 학습되어 이후의 발달과정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또 자기 수준을 넘어선 선행교육을 감당하기 위해 학생들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학습에 투여해야 하며, 이로 인해 창의력 계발, 인성 함양 등 전인적 발달이 저해되어 교육기본법 상의 교육목적 달성에 실패하게 된다. 이런 과도한 선행교육의 원인이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출발점에 자녀를 세우려는 학부모의 이기심과 이를 이용해 고객을 끌어 모으려는 사교육업체의 불행한 만남이라는 것은 전 국민의 상식이다.

학교의 경우는 입시 압박을 받는 일부 고등학교(특히 자사고) 정도에서 문제가 될 뿐, 초중학교에서 선행교육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발달단계상 성인이나 다름없는 고등학생은 한두 학기 정도의 선행교육이 발달과정에 해악을 끼친다고 보기 어렵다. 진짜 심각한 선행교육은 사교육 업체가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학을 강요하고, 유학 준비반이라는 명복으로 과도한 영문 독서를 강요하는 행태들이라는 것은 이 법을 입법한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특별법은 적용 대상인 ‘교육관련 기관’을 사실상 학교로 한정지어, 선행교육의 주범인 사교육업체에게 면죄부를 찍어주었다. 사교육 업체는 선행교육을 내세운 광고만 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제한없이 선행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특별법은 선행교육의 기준을 학생의 발달수준이나 학업능력이 아니라 ‘교육과정’보다 앞서서 실시하는 교육이나 학습이라고 규정하면서 갑자기 교사에게 문서상의 교육과정을 강요하는 악법으로 돌변했다. 더 나아가서 학교에게 지필평가, 수행평가 등 학교 시험뿐 아니라 각종 교내 대회, 심지어 방과후 학교에서도 학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다루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그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다. 각 지역교육청은 학교로부터 진도표와 고사출제원안을 수합하여 ‘선행 여부’를 가리는 번잡하기 짝이 없는 업무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교육계에 내려진 또 다른 계엄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실시된 이래 교육청이 이렇게 교사의 지도안 하나하나, 출제 고사 원안 하나하나까지 검열한 경우는 서슬이 시퍼렇던 유신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더구나 이 법에도, 시행령에도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나는’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관료들은 이를 문자 그대로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은 교육과정과 조금만 다르면 모조리 ‘선행’ 딱지를 붙일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에 ‘불순, 불온’ 딱지로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검열했던 교육 관료들에게 ‘선행’이라는 신무기로 사실상 검열을 부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더 나쁜 것은 지도·감독권의 관할이 불명료하여 교육부장관 또는 교육감의 지도·감독이라고 되어 있어, 교육감 뿐 아니라 교육부장관도 학교에 선행 조사를 하고, 이를 근거로 시정이나 변경을 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육감, 교육부장관 중 어느 한쪽이라도 원하면 교사들의 지도안 한 줄 한 줄, 시험문제 하나하나 검열한 뒤 교과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선행’으로 규정하여 삭제 및 변경까지 ‘명령’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수업은 교과서 밖에서 소재를 가져오고 정규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요소들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선행’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렇게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이 특별법은 실제 학생들의 심신에 해악을 끼치는 선행교육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능하다. 심지어 실제 문제가 되는 사교육업체의 선행교육을 이 법의 적용 범위 바깥에 두고 있기 때문에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부작용이 우려되는 반면 당초의 목적은 전혀 달성하지 못하는 정책은 한시라도 빨리 중단하는 것이 옳다.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바라는 교사, 교원단체, 교육운동 단체는 지금이라도 이 법의 폐지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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