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드라마의 고전 혹은 명작의 반열에 올라와 있는 드라마가 MBC <전원일기>(1980-2002)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무려 20여 년간 장수를 누렸다는 사실 자체에서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물론 KBS <대추나무사랑 걸렸네>(1990~2007)도 대표적인 농촌드라마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다만, <전원일기>의 선점 효과 때문에 빛이 바랜 감이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드라마를 농촌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지, 의문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유형의 드라마들은 항상 농촌 사람들의 처지나 농촌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이른바 리얼리즘 관점의 제작방향 입장에 서 있는 비판이다.

하지만, 시청자 관점에서는 다른 평가가 있을 수도 있다. 농촌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농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농촌에서 이미 그곳을 떠난 도시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출향민들에게 농촌 드라마의 배경과 공간은 그저 예전의 모습을 담고 있어야 했다. 따라서 농촌드라마의 모습은 실제 농촌 현실의 변화된 점들과는 사뭇 달랐고, 이 때문에 비판의 도마에 자주 올랐다. 현실 반영의 미비 때문에 비판을 받은 KBS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도 결국 지역 주민이 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렇기에 지역의 특산물 소개나 관광 홍보가 자주 등장한다.

   
tvN <삼시세끼>
 

그런데 농촌드라마도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폐지된 이유이기도 하다. 대신 <산너머 남촌에>(KBS)와 같은 유형의 드라마가 등장했다. 2006년 10% 초중반의 시청률을 보인 윤은혜 오만석 주연의 <포도밭 그 사나이>(KBS)처럼 로맨스만 부각된 드라마와 달리 이런 유형의 드라마는 다문화 차원의 설정이나 전원 회귀 혹은 귀농한 사람들까지 끌어안았다. 농촌드라마가 아니라 전원 드라마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됐다. 변화된 농촌의 현실을 좀 더 반영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트렌디 드라마들과 시청률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고, 고전을 했지만 디지털과 다매체 환경은 이런 드라마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 때문에 시즌제 전원 드라마 <산넘어 남촌에는 2>(KBS)가 탄생할 수 있었다. 많은 제작비와 스타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한 자릿수 시청률의 드라마가 비일비재한 마당에 적은 제작비와 무난한 제작 방식으로 고비용 쪽박 드라마들과 달리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오히려 케이블을 중심으로 농촌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전과 좀 다른 점은 도시민들이 직접 농촌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KBS <고향극장>이 폐지됐다. 이는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징후일지 모른다. 평균 7~8%대의 시청률을 보였던 이 프로그램은 한때 1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 웬만한 예능프로그램을 능가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실제 농촌을 배경으로 농촌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라마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공간도 농촌마을이요, 등장인물도 농촌 주민이었으며, 소재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농촌에 참여한 예능인들의 활약은 빛이 바랬다. 지난 5월 종영된 tvN <삼촌(村)로망스>에서는 출연예능인들이 농업벤처대학에 입학하고, 농촌현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여행이나 농촌탐방 경험이 아니라 농촌을 살리는 재생프로젝트를 표방한 ‘농사’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그들의 참여는 농산물의 수확과 판매에 연결되어 결국 경제적인 문제와 결부되었다. 다만, 주민을 돕는 예능인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5월초에 종연된 MBC <사남일녀>는 예능인들이 4박 5일 동안 농촌에서 노부모와 가상의 가족을 이룬 상황을 관찰예능방식으로 구성한 프로였다.

도시인 출신 주인공이 중심인 농촌드라마나 ‘애그리테인먼트’ 예능이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농촌 주민의 관점이나 세계관이 중요하지 않게 된 상황에 착안한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거의 대다수가 도시에 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2013 도시계획현황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 사는 인구는 4683만7578명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 5114만여 명 가운데 91.58%를 차지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약 92%가 도시에 산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도시에서 농촌으로 뛰어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라마나 예능에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KBS <1박2일>에서는 멤버들이 농촌에서 일을 도우며 미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런 소재는 MBC <무한도전>, <일밤-아빠! 어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것이었고, 결국 캐릭터와 설정의 힘이 빛을 발했다. 단지 전인구가 도시에 살게 된 것만 아니라 농촌에 대한 경험은커녕 기억도 없는 인구가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으로 향하는 인구도 젊다.

tvN 드라마 <황금거탑>은 도시 생활에 찌든 젊은 주인공이 1억 원 영농대출에 대한 흑심을 갖고 귀농하는 설정을 보였다. 마니아적 기호를 반영하려는 듯 독특하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과 패러디와 관점의 융합 등 실험성이 강한 연출을 선보였는데, 귀농한 사람들이 전면에 나섰고 그들의 연령대가 상당히 내려갔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30대 이하의 귀농·귀촌 가구는 3년 동안 8.3배 증가했다는 통계자료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 농촌이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본격적인 창업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일정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새롭게 선보인 SBS <모던 파머>이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뛰어든 농촌이이라는 점에서 경제적인 요인이 귀농의 동기가 되지만, 제작진은 도시에서 입은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 성장하는 내용을 담는다고 했다.

tvN <삼시세끼>는 예능프로그램 포맷차원에서 이런 농촌공간을 다루려 한다. 이 때문에 제작진은 ‘애그리테인먼트’ 프로그램이라는 명칭을 내세우고 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농촌 예능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시골생활 적응기를 다룬다고 보는 것이 더 맞아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 즉 경제적인 측면의 동기를 충족하려는 면은 앞선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런 프로그램들 때문인지 농촌드라마나 농촌 예능이 뜨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농촌예능이 아니라 농가의 예능이 뜨고 있다는 말이 정확한 게 아닐까. 농촌은 이미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村은 마을을 의미한다. 대체적으로 농촌 배경임을 내세우는 프로그램은 ‘마을’보다는 ‘農家’에 더 함몰되어 버린다. 농촌이 등장한다고 항변하면 이는 거짓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귀농을 꿈꾼다. 그 歸農은 농사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귀농촌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말이 길어 두자로 귀농이라고 하는 것일까. 적어도 귀촌이라고 한다면 마을로 돌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컨대 농촌드라마이건 농촌예능이건 마을은 없고, 농사일과 영농 그리고 시골체험전부일 것이다.

마을에는 농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리더가 있고 조직이 있다. 예컨대 부녀회가 있고 청년회가 있다. 요즘에는 청년회보다는 노인회가 있다. 청소년회는 아예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리더라고 하면 이장만을 떠올리기 쉽다. 이장도 있고 반장도 있으며 부녀회장도 있다. 전임이장들도 있다. 무엇보다 마을 회관은 먹고 노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마을의 중요사안에 대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공간이다. 마을을 위한 정책결정의 장이기도 하다. 많은 농촌관련 콘텐츠는 이러한 맥락보다는 개인들에 초점을 맞추거나 지역주민이라는 관념적인 대상을 설정하여 개별적인 공간에서 제작된다. 그것은 행복하고 전원적인 공간이 아니라 갈등과 분란 그리고 모순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도시인을 위한 농촌 방송프로그램의 환타지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농촌의 공동체성은 사라지고, 각 개인들의 경제적인 이윤동기가 농촌 생활에 밀려들고 있다. 어쨌든 의욕적으로 농촌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안의 주체들의 재구성을 통해 방송프로그램으로 적극 제작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으려는 노력들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 인식 속에 농촌은 정적이고 공동체적인 잔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새로운 포맷이나 소재, 연출이 익숙해질만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농촌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솔루션 프로그램의 제작이 필요하다.

1993년 초연되었던 창작무용극 <두레>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11월 1일까지 공연된다. 농민과 농촌을 주목한 공연이다. 이 작품은 20여년 전 당시 UR(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등 쌀시장 개방 등에 맞물리면서 해외 공연도 다수했다. 그런 작품이 다시 선을 보이고 있으니 요즘 같은 트렌드에서는 드문 일이고 반가운 일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자연에 순응하고 땀을 흘려 열심히 살아온 농민들의 애환, 그들의 신명을 춤사위로 표현한 작품”이고 “수입개방을 비롯한 기후변화, 구제역, 조류독감 등 많은 위기를 안고 있는 농촌의 현실과 민족적 정서를 환기했다”고 했다. 더 이상 농민의 고민은 화두가 안 되는 현실, 정치에서도 유권자의 힘을 발휘 못하는 상황에서 이 공연이 주는 함의는 충분하다. 어디 그것이 농촌과 농민만의 문제이겠는가. 그런 보편적 코드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노력이 방송미디어에서도 여전히 중요할 뿐이겠다. 농촌을 가두지 않고 도시와 소통시켜야할 이유는 언제나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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