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인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정면으로 맞서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했다. 검열을 거부하고 올곧은 언론인의 양심에 따라 보도할 것을 천명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은 당시 한국정치의 야만성을 폭로하고 더 이상 박정희 정권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언론인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박정희는 곧바로 기업을 압박해 동아일보의 광고를 끊는 것으로 응수했고 광고주들은 “이유를 묻지 말아 달라”며 예약된 광고를 해약했다. 무더기 광고 해약사태가 빚어지고 동아일보가 백지광고로 버티자 동아일보를 살리자는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75년 1월1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동아일보 1면에 “권력에 의해 압제 받는 언론을 국민이 도와주자”는 호소문을 싣고 국민이 나서서 구독운동, 광고운동, 상품 불매운동을 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정당, 교회, 사회단체는 물론, 회사원, 상인, 농부, 교수, 군인 등 각계각층의 국민들과 심지어는 어린 학생들까지도 동아일보 돕기에 나섰다. 동아일보 광고 면에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다채로운 의견들이 넘쳐났다. 작가는 동아방송에 무상으로 글을 써주었고 출연자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박정희는 폭도들을 동원해 저항 언론인들을 무력으로 제압했다. 동아일보 사주 김상만은 마침내 박정희에 굴복하고 113명의 언론인들을 해고함으로써 사태를 일단락 시켰다. 

언론자유를 실천하려했던 40년 전의 치열했던 투쟁사를 되새기면서 오늘의 언론현실을 곱씹어 볼 때 언론통제의 현실은 폭력을 동반한 초법적 통제만 사라졌을 뿐 40년 전 상황에서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는 권력자의 기분에 따라 매체의 성격에 따라 한계선이 분명 존재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은 더욱 교활하고 치밀해졌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검찰의 즉시적인 사이버 검열이 시작되었듯이, 권력자의 말은 곧 법의 기준이 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영혼을 팔아먹은 좀비언론 종편이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누리면서 온갖 불의와 억압과 부조리와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을 한낱 선전홍보의 대상으로 여기고 막말과 말초적인 의제설정을 일삼는다. 근거도 미약한 보수와 진보의 편 가르기로 국민들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카더라 정보가 버젓이 토론의 의제가 되고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거짓정보를 흘린다. 오보는 다반사가 되었고 신뢰는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형태만 언론일 뿐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사명을 내팽개친 좀비언론은 사회의 거울이요 목탁은커녕 사회를 혼탁하게 하는 쓰레기일 뿐이다. 

이들 좀비언론을 잉태한 조폭신문들은 점잖게 제4부, 제4의 권력을 누린다. 그들을 보수신문이라고 칭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종편에 비해 다소 세련되었을 뿐 좀비언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동료 언론인들이 부당하게 해고돼도,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천박한 경쟁의식만 남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검찰이 개인의 사생활을 마구잡이로 짓밟아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비판기능이 마비된 지 오래다. 세월호 침몰은 언론의 ‘전원구조’ 오보로 대형 참사가 되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진지하게 느끼는 언론도, 제대로 반성하는 언론인도 보이지 않는다. 그 조폭언론들은 세월호특별법 때문에 민생이 망가지고 있다고 훈계하고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점잖게 나무란다. 

그렇게 해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으로 조롱하는 후안무치한 행태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그것이 오히려 언론의 흥미로운 소재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영혼 없는 좀비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좀비언론을 통해 젊은 영혼들은 죽어가고 일베와 가학적인 인터넷 댓글들을 통해 자행되는 언어폭력은 이제 일상적인 여론이 되고 그것이 사회풍토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무런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느끼지 못하는 야만의 정글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자유언론실천의 날에, 한편에서는 사이버 검열을 자행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레기언론, 좀비언론에 무한대의 자유가 부여된 이 혼란스런 언론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시급하다. 언론의 자유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회복하는 일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현실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언론자유를 위한 싸움이며 좀 더 치열한 운동의 의미를 깊이 느끼게 하는 다시없는 기회이다.

이제 언론운동은 40년 전 동아투위의 자유언론실천의 정신으로 거듭나야 한다. 87년 민주화운동에 편승해 잠시 제한적 자유를 누렸던 언론노동자들은 재무장하여 이 혼란스런 전쟁터에 나와야 한다. 조폭신문에도 양심적인 언론인들이 있고 좀비언론 종편에도 인간의 모습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산해 내는 기사에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으며 자랑스럽게 여기지도 않을 터이다. 정치권력에 완전히 복속된 지상파방송의 언론노동자들이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침묵하고 있지만, 앞서 외치는 백발의 동아투위 언론인들이 지금이 때라고 생각해서 거리에 나서는 것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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